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투자다 (엡6:1~4)
불신자들은 가끔 기독교인들을 향해 “교회 다니는 것들은 부모, 아비도 없고, 조상도 없어.” 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을 비꼬아서 하는 말일 것이고, 성경을 조금 아는 자들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는 말씀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효(孝)가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를 대보겠습니다. 신구약에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 있는 계명이 무려 613계명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계명 중 첫째 계명이 바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6:2)”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 4계명까지는 수직 관계, 즉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수평 관계, 곧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신 것인데, 그 중 첫 번째인 제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는가 하면, 바로 이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나를 낳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할진대, 우리 하나님은 효도하는 자에게 장수와 축복과 형통의 복을 쏟아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제발 효도해라, 꼭 효도해라.’는 말씀입니다.
오래 살고 싶습니까? 이 땅에서 잘 되고 복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부모님을 잘 공경하십시오. 이렇게 좋은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처럼 틀림없고, 보장된 투자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님만 잘 공경하면 내 일이 두루두루 잘 되고, 내 자녀가 잘 되고, 내 사업이 잘 되고, 손대는 것마다 잘 되는 복이 올 뿐 아니라 오래오래 이 땅에 산다니 정말 수지맞는 일이 아닙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거기에 이런 축복까지 온다는데도 효도를 못합니까? 그런데도 부모를 공경 못합니까?
얼마 전에 사우나를 갔더니, 항상 뵙는 분들이 함께 모여서 무슨 일에 대해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물어보았더니, 소위 일류대학에 다니는 최고의 지성인들에게 ‘당신의 부모가 몇 살까지 사는 게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그들은 부모가 65세에 돌아가시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아프지 않고 추해지기 전에 가는 것이 낫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랍니다. 그 말을 듣는데 저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죽일 놈들 같으니라고, 지 놈들 일류대학에 보내느라 못 쓰고, 못 입으면서 학원비며 과외비 갖다 바쳤더니 65세에 죽으라고? 지 놈들도 65세까지만 살 건가?” 하고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분이 “가짜 통장이라도 만들어놔야지, 안 그러면 자식들 눈치나 보는 천덕꾸러기 되겠어.”라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문득 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혼자 자식을 키운 할머니가 늙고 병이 들었는데 자식들이 나 몰라라 하자, 먼 친척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할머니에게 와서는 무조건 어디를 가든 베개를 끼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할머니 자식들을 불러 모아 “너희 어머니가 늘 베개를 끼고 살지? 왜 그런 줄 아니? 그 안에 땅문서가 있기 때문이란다. 젊어서 사둔 땅인데 제법 큰 땅덩어리지. 너희 어머니는 그걸 가장 효도한 자식에게 주려고 마음먹고 있으시더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자식들이 서로 모셔가서 최고로 대접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할머니가 행복하게 살다 돌아가자 자식들이 베개를 열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뭐가 나오겠습니까? 자식들이 속았다며 난리를 치자 친척이 그 때 한 마디 했습니다. “네놈들이 하도 불효하기에 내가 머리 좀 썼다.”고요.
생각해볼 이야기입니다. 사실 효도가 어려워서 못합니까? 아닙니다. 마음이 없어서 못하는 겁니다. 자식은 학원 서너 개씩 보내고, 유명 브랜드 운동화만 신기면서 부모님에게 몇 푼 드리는 것은 아깝지요? 자기는 할 거 다하면서, 자기는 명품 핸드백에, 명품 옷을 줄줄이 사면서 부모님께는 시장에서 옷 하나 사다드리면서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효도 혼자 다 한 거처럼 엄청 생색 내지 않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자식에게 하는 거 10분지 1만이라도 부모님에게 해보세요.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이는 마가복음 7장 9~14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하면,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고르반’이라는 명목으로 부모공양의 책임을 면제받았습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헌납을 서약한 것으로, 재산을 성전에 바치겠다고 서약하면 그 재산을 언제 바치든지 관계없이 부모 공양을 면제받았습니다. 이 유전을 미끼로 랍비들이 부모 공양에 소홀한 것을 예수님은 나무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 칭하시고,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라고 통탄해 하셨습니다.
요즘 ‘신종 고르반’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 한다고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옳지 않은 처사입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자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사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일만큼 부모님을 섬기는 일이 중요함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는 자들이 “니네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쳤냐?”고 우리 하나님을 욕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보이는 부모도 공경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나를 공경할 수 있느냐고 가르쳤는데 말입니다(요일4:20).
“내게 해준 게 없는데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데요?” 하시는 분들, 물론 더러는 부모가 자식에게 제대로 해준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 ‘너에게 잘해준 부모만 공경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어떻게 했든지, 심지어 당신을 힘들게 했더라도 당신을 낳아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도 그 분들은 공경받기에 충분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예수님은 어머니인 마리아를 그의 제자 요한에게 부탁합니다(요19:27). 그 후로 요한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여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제자 중 가장 오래 살았고, 밧모 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삭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잡고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 할 때,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힘과 기회가 있었지만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수양을 준비하사 이삭을 건져줬을 뿐 아니라 어디를 가나 백배나 더 좋은 것으로 주셔서 그의 생애를 순탄케 하셨고, 리브가 같은 좋은 아내도 주셨습니다. 또 이방여인으로 유다지파인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한 룻도 남편이 죽자 나오미를 따라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와서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보아스라는 남편을 주었고, 다윗의 선조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자신의 뜻을 접고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거든 그리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어릴 때는 산이 나무를 위해 존재하지만, 나무가 장성하면 나무가 산을 위해 존재하듯, 어릴 때는 부모님께 의지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살았지만, 장성하면 부모님의 힘이 되고, 의지가 되고, 배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하실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합시다.
할렐루야!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지만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