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이 일본 동북부를 강타했다. 강력한 지진과 함께 해안가 마을들을 덮친 쓰나미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파괴했다. 차량도 빌딩도, 논과 밭도….
소중한 삶의 터전과 함께 귀중한 인명 모두를 모조리 휩쓸고 가 버렸다. 이로 인해 최소 수 만 명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이번 쓰나미로 미야기현 게센누마시(市) 전체가 물속에 잠기는 데엔 불과 5분 30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던 일본도 대자연의 용트림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이렇게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 앞에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3·11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다시금 일본 국민들의 놀랍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나보다 모두를 위해 나 한사람의 수고로움은 개의치 않는 ‘메이와쿠(迷惑; 폐 끼치지 않기)문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사태 초반에 보여준 일본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이번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인해 모두가 패닉(공황) 상태에 빠져 버린 때문이었을까?
각국에서 쏟아지던 지원의 손길을 그들은 너무도 쉽게 거절해 버렸다. 후쿠시마 원전의 조기 복구를 위한 각국의 지원 의사에 그들은 짐짓 손사래를 쳤다. 안전상의 이유로 그들은 구호용 식료품마저도 거절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전략적 오판은 사태를 초기에 진화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이 때문에 복구 작업의 진척이 더뎌지고, 붕괴된 후쿠시마 원전에선 하루가 다르게 방사능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더구나 수십만의 이재민들은 지금까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문제가 심각해질 즈음에서야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결정을 번복했다. 시쳇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때문이다. 애초에 주변의 도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애초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겸허하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를 구했다면 어떠했을까?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앞바다를 지켰던 이순신 장군의 연승 신화는 결코 천운(天運)이나 우수한 병기, 혹은 장군의 지략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머리를 숙여 백성들의 지혜와 경험을 수용했던 장군의 그 겸허함에 있다.
장군이 전라 좌수영에 부임했을 당시 이미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왜적들의 발호(跋扈)가 탐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육전(陸戰)에 능한 왜적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오직 바다에서 그들을 저지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장군은 바다를 알지 못했다. 전장의 이점과 허점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승리의 비책을 강구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유속의 흐름과 지형, 암초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그 무엇보다 절실했다. 이때 장군은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체면은 나중 일이었다.
조선 후기 학자인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따르면, 장군은 매일 저녁 백성들을 좌수영의 한 뜰에 불러들였다고 한다. 자신 또한 평복(平服)을 한 채, 날마다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짚신도 삼고 길쌈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했다. 지엄한 좌수사의 신분이지만, ‘천한 상것’이라 칭하는 이들에게까지 기꺼이 조언을 구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도가 엄격하고, 고하(高下)가 분명하던 시절이기에 이러한 처사는 분명 파격이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2등은 존재치 않는다. 국운(國運)을 건 대의(大義) 앞에 스스로의 몸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살필 줄 아는 현명함과 그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 그리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주위의 도움을 과감히 수용할 수 있었던 이러한 장군의 넉넉한 마음이 곧 무패의 전설, 24연승 신화의 바탕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삶의 현장은 살아 있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예측한 대로, 매뉴얼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불확실성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비결이 무엇일까? 바로 널리 지혜를 구하는 경청하는 겸허한 마음가짐, 포용력과 수용정신이 아니겠는가! 자고로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정보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은 더더욱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