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거룩한 고집이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는 상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친구 사이의 우정도, 시간의 깊이에 따라 서로 검증하고 확인하며 그 두께가 더해간다. 마음을 먼저 주는 자가, 더 많이 주는 자가 그 관계를 포용해간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양보함으로써 관계를 성숙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이라도 서로의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거나 소통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의 사랑이나 신의를 물을 필요가 있다. 상대의 진실을 확인할 필요 없이 주는 마음도 사랑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관계(relationship)”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마음을 서로 주고 받을 때 우리는 그것을 “관계(relationship)” 라고 부르며, 이와 같이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헌신(commitment)이 필요하다. 마음의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는 상대가 나를 진실로 사랑한다고 믿을 때, 혹은 상대의 신의를 발견하거나 검증하게 될 때, 더욱 마음이 열리고 사랑하게 된다. 관계는 차츰 성장하고 숙성하는 것으로서, 하루아침에 돈독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는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다림” 으로써 나의 진정이나 신의를 그분께 보여드렸을까? 이삭을 제단에 순종함으로 바친 아브라함에 비한다면, 과연 나의 절대적 순종이나 절대적 믿음은 어느 정도나 될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는가? 나는 성령 안에서 성장해 왔는가?
“믿음”의 다른 이름은 “기다림”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조차도 자녀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긴 기다림 속에서, 사라의 여종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으니,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붙잡고 있는다는 것이 녹록하지는 않다. 그래서 사랑이 함께 필요하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와 같은 절대적 사랑 말이다. 우리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나, 혹은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릴 때, 때로는 그 기다림이 너무도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너의 하나님이 도와 줄 걸” 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주변의 멸시나 비웃음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아니면, 아무리 기다려도 자식을 잉태하지 않았던 사라처럼, 자신이 정한 시간의 한계 속에서 이제 응답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한 스스로의 결론”에 도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무너지고 말아버리면, 그 동안의 믿음을 지켜왔던 나의 순결과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을 곳이 없다. 그러니 한번 뜻을 세웠으면 그 뜻을 굽히지 않는 대장부의 기개처럼, 한번 믿었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설령 친구가 배신하더라도 나만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믿음의 절개가 필요하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공짜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당신은 왜 쉽게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포기하려 하는가? 당신의 꿈은 왜 이렇게 작은가? 왜 좀 더 원대한 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가? 그분을 경배하는 가장 큰 방법은 그분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그 분을 믿고, 요동하지 말라. 다만, 어떻게 당신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일지를 생각하라. 그리고 날마다, 매 순간마다 자신의 믿음을 새롭게 하라. 당신의 기도의 응답은 당신이 바라는 때보다 더 완벽한 하나님의 때에, 당신이 기대하는 방법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도 멋진 방법으로 그대의 품에 안겨질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