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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자유는 자유를 누려본 자만이 안다 (마1:18~25)

566호 · 2010-12-31

고기를 먹어본 자만이 고기의 맛을 알고, 전자제품을 써본 자만이 그 편리함을 알며, 돈을 써 본 자만이 돈의 힘을 알고, 영어로 대화해 본 자만이 영어의 위력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자만이 영·혼·육의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예수중심으로 산다’는 말씀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진정 만왕의 왕이요, 창조주라면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천하에 제일 어리석은 자가 누구입니까? 이는 만든 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입니다. 전자제품을 110V에 꽂으라면 꽂아야지 거기에 무슨 이론이 필요합니까? 220V에 꽂다가는 파괴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청산하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를 치르고 우리가 죄에서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죄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3:4~7).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인생이요, 성령으로 새롭게 된 인생입니다. 고로 아무도 우리를 향해 죄를 운운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어느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고 로마서 8장 1절을 통하여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이는 우리의 행위가 옳고 반듯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과거와 미래의 죄까지 다 청산해서 우리가 의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3~34).

그러나 악한 마귀는 자꾸 참소하고, 우리를 정죄하려고 합니다. 스가랴 3장 1절에서 5절을 보면 사단이 여호와 앞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송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거듭 책망하시면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죄를 사하시고 아름다운 옷과 깨끗한 관을 씌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깨끗했기에 송사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선포하시고 그를 깨끗케 하셨기에 사단의 송사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서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악한 마귀는 자꾸 우리에게 율법을 들이대며 “율법을 좀 봐라. 여기에도 걸리고 저기에도 걸리고…, 그러니 너는 죄인이지.” 하며 우리를 정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귀란 놈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떻게요? 사랑으로….

사실 율법은 그 자체가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것이지만, 그 율법으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줄 뿐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율법을 늘, 완벽하게, 모두 이룰 수 없기에 “결국 나는 죄인이구나.” 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아담으로 말미암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율법이 죄의 잣대가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로 인해 정죄 대신에 오히려 의롭다하시는 생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8).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 얻음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정죄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마귀의 궤계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을 하다 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옳다구나’ 하고 잡아온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8:4~5).

그러자 예수님이 어찌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허리를 굽히고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셔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추측컨대 예수님은 땅에 율법에 관해 쓰셨을 것입니다. 율법으로 인해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는데, 하물며 율법 앞에서야….

그러니 누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다들 슬며시 돌을 놓고 물러날 수밖에요. 누구도 돌을 든 군중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 간음한 여인의 자리에 서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간음한 여인의 자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돌을 든 군중으로 변하면 어찌 하나님이 이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저는 일평생 남을 정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죄인 중의 괴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아니었다면, 저는 도저히 하나님의 자녀는 물론 주의 종이 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남을 정죄하지 맙시다. 그럴 자격이 우리에게 없음은 물론이고, 이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을 정죄하는 자는 자신이 어두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보면 아주 잘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향해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은 어두운 곳에 있기 때문에 밝은 곳에 있는 우리가 잘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밝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에 그들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인격화하면 마귀입니다. 어두움에 있다는 것은 곧 마귀에 속해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남을 정죄하려는 생각이 들거든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남을 손가락질하려고 검지를 펴면 나머지 네 손가락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이는 법입니다.

또한 ‘나는 죄 때문에 병들었어.’, ‘나는 죄 때문에 안 돼.’, 하며 자학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당신의 무지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당신의 죄를 이미 사했습니다. 그러니 죄의 억압 아래 눌리면 안 됩니다. 누군가 당신의 죄를 정죄한다면 “그래? 맞아. 그러나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 죄는 사함을 받았어.” 하고 당당히 맞서십시오. 우리 죄가 없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이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돈이 많다고 은행에만 넣어두면 생활하는데 자유가 없습니다. 돈을 써야 자유함이 있지요. 동일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로 치부한다면, 당신 영혼의 자유함은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보혈을 믿고 의지하여 영혼의 자유함은 물론이고, 평안한 신앙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정죄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할렐루야!

일제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제 똥 구린 줄은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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