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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울타리를 헐 때는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하라 (레23:33~44)

540호 · 2010-07-02

지난 6월 25일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 유독 많은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기념식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 6·25 피난 당시의 먹거리를 시민들에게 제공함으로 그 날을 상기하도록 했고, 정부차원에서는 6·25 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군인들을 초청하여 감사를 전하고, 서울관광을 시켜줌으로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이 헛되지 않았음을 목도하게 했습니다.

왜 생각하기도 언짢은 6·25를 이렇듯 매년 기념할까요? 이는 민족상잔의 아픔을 잊지 말라는 것이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 같이 노력하자는 의미이며, 또 하나, 이 땅에서 희생한 많은 나라의 군인들과 우리나라의 학도병을 비롯한 군인들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해마다 지켜야할 3대 절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곧 무교절과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대략 이를 설명하자면, 무교절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은 것을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으며 기념하는 날이고, 맥추절은 한 해의 첫 수확한 것을 감사 기념하는 절기이며, 수장절은 한 해의 마지막 수확을 하고 다음 추수 때까지 저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관건은 왜 하나님이 이런 절기를 매년 지키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과 13장을 읽어보면 그 답이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서도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시면서, 훗날 자손들이 왜 이 절기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거든 이렇게 대답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쌔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찌니라”(출13:14~16).

즉 바로의 손에서 너희를 구원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3절에도 초막절을 왜 기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같은 의미입니다.

즉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과거에 하나님에 의해 구원되었고, 현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장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절기를 지키라고 한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로 이런 절기들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왕하23:22, 대하30:5, 느8:17).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으니 교만해져서 산당을 짓고 우상을 섬기는 일을 일삼았고, 이방여인들과 결혼했고, 왕을 세워달라는 등 하나님을 배역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교만방자해지는 줄 압니까?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잊어서 그런 겁니다. 과거의 내가 어떤 구덩이에서 나온 지를 잊었기에 엉덩이에 뿔이 나는 것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는 것을 두고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면서 모세를 비방합니다.

하나님이 이 소리를 들으시고 강림하사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고 진노하십니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민12:8).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미리암은 문둥병이 걸리게 되지요.

왜 아론과 미리암이 감히 하나님의 종 모세를 비방한 줄 압니까? 그들이 과거의 자신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바로와 담판을 짓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기 전까지 그들은 애굽의 종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세우시고, 그가 애굽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들이 종의 신분에서 놓임을 받은 것인데, 어느 새 아론과 미리암이 그것을 잊은 것입니다. 민수기 16장에 나오는 고라와 족장 250명이 모세에게 대항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노예였던 신분을 까맣게 잊었기에,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구원받은 것을 잊었기에, 모세를 향하여 감히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사울도 그랬습니다. 그는 처음에 참으로 겸손한 자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자 그는 말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삼상9:21). 그러던 그가 어느 때부턴가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과거 미약했던 자신을 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을 어기는 일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별 볼일 없이 양이나 치던 자임을 왕이 된 후에도 잊지 않았습니다.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이 너무 기뻐 춤을 추다가 옷이 흘러내리는 것을 그의 아내 미갈이 보고는 체통 운운하며 비아냥거리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6:21). 다윗은 과거의 자기를 늘 가슴에 새기고 있었기에 겸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교만해지고,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왜? 선줄로 생각하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고전10:12).

울타리를 헐 때는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해 자꾸 불평이 나옵니까?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하십시오. 처음 성령을 받고 모든 것이 감사했던 때를 기억하십시오. 살만하니까 자꾸 세상으로 나가려 합니까? 당신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건강케 하신 하나님, 축복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언제부터 목사요, 장로였습니까? 당신이 어디서 나왔는지, 과거의 당신이 어떠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불평하던 입을 다물게 될 것이고, 꼿꼿했던 머리가 숙여질 것입니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사51:1).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키라고 했는지 오늘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신분에서 인도하신 하나님, 광야에서 지키시고 입히신 하나님, 그리고 풍족하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이고, 과거의 너희 신분과 모습을 기억함으로 늘 감사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think’(생각하다)와 ‘thank’(감사하다)는 원래 어원(語原)이 같답니다.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럼요, 과거의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을 충분히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나를 잊지 않아서입니다. 농사꾼의 자녀인 저를 하나님이 택하셨으니, 죄 많은 저를 택해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셨으니 힘든들, 어려운들, 고독한들, 억울한들 불평이 나오겠습니까?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간혹 잊었더라도 절기를 통해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할렐루야!

골이 깊으면 산이 높고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불평은 성난 파도와 같고 감사는 잔잔한 호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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