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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더 좋은 때를 계획하고 계신 하나님 (창40:21~41:16)

534호 · 2010-05-21

맹자의 공손추장(公孫丑章)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농부가 모를 냈는데, 벼가 더디 자라는 것이 안타까워 논에 가서 볏대를 뽑아 늘린 다음 다시 꽂아놓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아들 앞에서 “오늘 싹이 자라는 일을 도와 줬더니 피곤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아들이 논으로 단걸음에 달려 나갔지만 벼는 이미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조장(助長)’이라는 말인데, 이는 ‘부추기다, 선동하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벼가 자라는 때가 있고, 벼가 익는 때가 있습니다. 억지로 볏대를 뽑는다고 벼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야 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조급하여 자기 때에 맞추려고 하면 오히려 해를 자초할 뿐입니다.

전도서 3장 1절에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한과 때’는 바로 하나님의 기한이요, 때를 말합니다. 자연도, 인생도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데, 그 결과는 11절에 있는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즉 하나님의 때를 따라야 가장 아름다운 결과가 이루어 진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꿈의 사람,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시기하던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린 요셉은 우여곡절 끝에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보디발의 신임을 얻어 가정총무로 집의 모든 것을 관할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청년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유혹을 뿌리칩니다. 하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손에는 요셉의 옷이 있었고, 이 옷이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겁탈하려했다는 물증이 되어 결국 그는 보디발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옥에 있던 어느 날, 요셉이 갇혀있는 감옥에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죄목이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아마 전제군주의 노여움을 사서 옥에 들어온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들을 수종 들던 요셉이 보니 두 관원장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이 아닙니까? 이에 요셉이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하고 물었더니, 그들이 어지간히도 다급했던 모양입니다. 수종 들던 히브리 노예에게 꿈 꾼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요.

아무튼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에게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창40:9~11)고.

이 꿈을 들은 요셉은 해몽을 해줍니다.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창40:12 ~13). 그리고 요셉이 술관장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창40:14~15).

감옥에서 나가 권위가 회복되면 자기 좀 꺼내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물론 술 관장은 ‘알았다. 걱정마라. 내가 꼭 꺼내 줄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떡 관장도 요셉에게 꿈 이야기를 했고, 요셉은 이렇게 해몽해줍니다.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창40:18~19).

사흘 후는 바로의 탄일이었습니다. 이 날 요셉의 해몽대로 술 관장은 전직이 회복되었고, 떡 관장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술 관장은 요셉의 부탁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무려 2년 동안이나. 23절에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고 쓰여 있습니다. 요셉은 오늘일까, 내일일까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데 술 관장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저 살기 바빠 히브리 청년을 아예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가 한 꿈을 꾸었는데, 이를 해몽하지 못하자 그 때서야 술 관장이 지난날 자기 꿈을 해몽해준 요셉을 기억하고는 그를 왕 앞에 세웁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해줌은 물론 해결방안까지 알려줌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만일 술 관장이 복직되자마자 요셉의 말을 기억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도 기껏해야 요셉은 감옥에서 나와 술 관장 밑에서 일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지긋지긋한 애굽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겠지요. 엄감생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꿈이나 꾸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술 관장이 요셉을 잊게 하셨고, 가장 적기에 다시 기억나게 하사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쉽게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것입니다. 지금 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응답이 안온다고 해서 낙담하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일을 이루시고, 가장 좋은 때에 응답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옥에서 나오게 하는 정도로 끝이 아니라 우리를 원수의 목전에서 총리대신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잠시 응답을 유보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은 내 때에 하려는 것이고, 내가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고통당하게 되고,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를 봅시다. 모세가 40세에 자기 민족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커녕 사람만 죽이고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나이인 80세가 바로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그 때가 되니 모세는 40대의 왕성한 기력으로 회복되어 200만 이스라엘 민족을 넉넉히 출애굽 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비록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그 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요, 가장 적기입니다. 모르드개의 일이 그것을 입증해줍니다.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의 왕 때의 궁의 문지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만에게 부복하지 않았습니다. 재상이 된 하만은 이런 모르드개를 없애고 이참에 유대인을 멸절하려고 계획했습니다.

이를 안 모르드개가 왕후인 에스더를 움직여 이를 대처하게 합니다. 한편 그 밤에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지난 역대일기를 읽게 했습니다. 그러다 그 속에 기록된 모르드개의 업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두 내시가 왕을 모살하려던 사실을 문지기였던 모르드개가 고발하여 왕의 목숨을 건진 일이었습니다. 이 일에 아무런 포상이 없었음을 알고는 왕은 그것도 하만을 들어 모르드개를 높였습니다.

만일 말입니다. 모르드개에게 즉각적으로 포상이 있었다면 감히 왕의 다음 자리에까지 오르지는 못했을 겁니다. 땅을 받았든지, 몇 단계 높은 관직을 얻었겠지요. 물론 하만에게 멋진 역전승을 거두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즉시 포상이 없게 하신 것도, 그날 밤 왕을 잠 못 들게 한 것도 다 하나님의 때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이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는 우리로서는 어쩌면 연단의 과정일 수 있고, 인내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넘기면 하나님의 때에 이를 수 있으며,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소망으로 나타날 것입니다(롬5:2~4). 그러니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그 기간이 비록 암흑 같아도 하나님은 나의 갈 길을 아시고, 때가 되면 내 앞에 나타나시어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8~10). 할렐루야!

바람이 불 때 연을 날리고

물결을 보고 노를 저어라

스타가 되고 싶으면

감독의 말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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