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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목차 › 붕우칼럼

보여주는 목회

534호 · 2010-05-21

언젠가 나는 신문을 만드는 집사에게 문제를 낸 적이 있다. 다음 세 가지 사건이 공통적으로 의미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보고서를 써내라고 했었다.

그 세 가지 사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님의 오병이어(五餠二魚) 사건과 둘째 바디매오가 눈을 뜬 사건, 그리고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가신 사건이었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아내라고 했다.

이틀 후, 그 집사는 보고서를 써서 내 차에 실어 놨다. 거기에는 아주 짧은 답이 쓰여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시각적인 감동이 청각적인 감동보다 크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나는 그 답을 보고는 바로 전화를 걸어 그 집사에게 말했다. “백 점이야, 백 점. 이게 정답이야.”

나는 보여주는 목회를 한다.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심을 현장에서 보여준다. 과거에만 역사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예수 이름을 통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직접 보여주는 목회를 한다. 그 집사의 말대로 청각적인 감동보다 시각적인 감동의 훨씬 크고,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의사 말은 잘 듣고, 과학자 말은 잘 믿는다. 그런데 목사 말은 잘 안 믿는다. 왜냐? 의사는 병을 낫게 하는 것으로 보여주고, 과학자도 과학을 입증해주는데, 목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면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여주는 목회 때문에 지탄도 받는다. 그러나 나는 계속 보여주는 목회, 생생한 목회를 지향하련다. 그것이 분명 복음의 대로를 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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