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행복한 자가 누구냐? (삿9:8~15)
얼마 전에 한 집사가 골프를 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면서, “그놈의 골프채 때문에.” 하며 툴툴거리기에 제가 그 집사더러 한 마디 했습니다. “아니, 왜 죄 없는 골프채를 탓해? 자네가 욕심을 부려서 그런 거 아냐? 자네 나름대로의 폼과 스윙 폭이 있는데, 젊은 애들처럼 쳐보려고 욕심내서 따라하다가 그런 거 아닌가? 자네의 폼과 스윙 폭대로 치라고.”
이 집사처럼 자기 것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것을 탐내고, 남의 것을 부러워하다가 삐끗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자기 것이 아니면 탈나게 되어 있거든요. 제가 60여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감나무에서는 절대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이 있고, 자기가 잘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에는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9:20~2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장독으로 만든 자가 있고, 종지로 만든 자가 있다는 것이고, 밥그릇으로 만든 자가 있고, 국그릇으로 만든 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장독이 장독대가 춥고 덥다고 종지하겠다고 하면 어찌 됩니까? 또 종지가 밖이 좋다고 장독이 되겠다고 하면요? 안 될 말입니다. 혹 국그릇이 밥을 담고 상에 오르는 경우를 봤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어울립니까? 격식 차린 상에 그럴 수 있답니까? 국 대접에 국, 밥그릇에 밥을 담아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그렇습니다. 본래 타고난 게 있습니다. 그걸 달란트라고 하고, 재능이라고 하지요. 또 자기에게 잘 맞는 것, 세상말로 궁합이 맞는 게 있습니다. 그걸 찾는 자가 제일 행복한 자입니다. 안 맞으면 사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좀 오래된 이야기인데요, 캐나다 집회를 마치고 귀국하기까지 하루 동안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캐나다에 거주하는 성도들이 골프를 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회하러 갔지 골프하러 간 게 아니잖습니까? 당연히 골프클럽도 운동화도 없었지요. 그러자 성도들은 저를 골프용품 파는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신발 중에서 편하다 싶은 운동화를 하나 골랐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성도들이 “목사님, 돈 걱정 마시고 제일 좋은 걸로 신으세요.” 하며 제가 고른 운동화를 거의 빼앗다시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난 제일 좋은 걸로 고른 거야. 비싼 거라고 좋은 것이 아니야. 내게 맞아야지.” 라며 일본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제가 일본 집회에 갈 때, 장애우인 우리 성도가 구두를 하나 사줬습니다. 그가 “일본에 꼭 신고 가세요. 내일 공항에 가서 확인해 볼 거예요.” 라고 하기에, 어려운 처지에 사 준 것도 고맙고, 또 안 신으면 마음 상할까봐 그 신발을 신고 일본에 갔는데, 이게 제게 안 맞는 겁니다. 일본 우에노 공원 집회 사전답사 차 공원을 도는데, 얼마나 발이 아픈지 나중에는 머리까지 지끈거리는 겁니다.
신발을 벗어보니 뒤꿈치가 다 까졌지 뭡니까.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신발을 벗어 들고 일본 거리를 걸어 다녔답니다. 그 이야기를 캐나다 성도들에게 해주었더니 성도들이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제야 제가 고른 운동화를 건네주더군요. 저는 그들에게 “자기에게 맞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야.”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날 그 운동화 덕분인지 공이 잘 맞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내게 맞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래 등 같은 집도 내게 안 맞으면 집에 눌리게 되어 있고, 아무리 미스코리아 출신 여자라도 내게 안 맞으면 사는 게 지옥 되는 겁니다. 박사라고, 의사라고, 검사라고 좋은 직업이 아닙니다. 내 적성에 맞아야 좋은 직업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기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이게 내 달란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있다마다요. 내가 그 일을 할 때 신바람이 나면 내게 맞는 겁니다. 내가 그 일을 할 때 스트레스가 쌓이고, 일에 진척이 없으면 절대 안 맞는 것이고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편안하고, 오래 같이 있고 싶으면 그 사람이 나와 맞는 겁니다. 좋은데 왠지 부담스러운 사람은 나와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교회가 참 많지요? 교회도 나와 맞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한 교회가 좋고, 어떤 사람은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기도하는 교회가 좋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찾으면 되는 겁니다. 안 맞는데 아내 때문에, 남편 때문에 다니면 신앙이 성장하기는커녕 그나마 있던 신앙조차 떨어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 하는 게 없어.”, “나는 아무리 봐도 재주가 없어.” 그러시는 분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고, 자기가 낳은 알 하나 책임지지 못하는 타조도 달리는 재주만은 탁월하다고 욥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에게 달란트가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지으실 때 아무 생각 없이 만드셨을까요?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인 모세도 처음 자신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몰라 갈등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 그러나 결국 자기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는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로 초등학교 동창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행색이 80대 노인처럼 보이자 우리 장로님들이 설마 동창이겠나 싶어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꼭 저를 만나야 한다고 해서 데리고 왔는데, 처음에는 저도 그 사람을 몰라봤습니다. 그런데 지난 이야기를 하니 그 사람이 동창이 맞더라고요.
제가 “잘 나가던 네가 왜 이렇게 됐냐?”고 했더니,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재산 다 날리고 맘고생이 심해서 그리 됐다는 겁니다. 그 친구가 강남 일대에서 사업으로 잘 나가던 친구였거든요. 근데 맞지도 않는 정치판에 들어갔다가 홀랑 다 날린 겁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넌 태생이 정치할 사람은 아니었어. 사업이나 하지 그랬냐?”
망둥이가 뛴다고 꼴뚜기가 뛰면 안 되는 겁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 먹다가는 배탈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것을 찾으세요.
한 집에 개와 닭이 살았습니다. 개는 매일 밤 주인집을 지키느라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우건만, 닭은 푹 자다 동틀 무렵에나 일어나 ‘꼬끼오’ 하고 한 번 울뿐인데 주인은 늘 닭에게만 고맙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는 은근히 부아도 나고, 칭찬받는 닭이 부러워 하루는 동이 트기가 무섭게 지붕 위로 올라가 힘겹게 닭소리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저 개가 돌았나? 이건 흉조야.’ 하고는 하인들에게 “저 미친개를 당장 없애” 라고 명령했지요. 결국 그 개는 그 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남의 것을 탐내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에 충분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면서 이방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 두 눈이 뽑히고 맙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신앙관도, 국가관도, 인생관도 흔들리게 되어 있고, 결국 인생 자체를 실패하게 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큰 고래라도 물을 떠나는 순간에 날벌레의 밥이 되고, 침이 우리 몸에 유익한 것이지만, 침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면 더럽고 추잡한 것이 되고 마는 것처럼, 자기 자리, 자기 직분, 자기 직업을 떠나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왕을 뽑으려고 했습니다. 먼저 감람나무가 천거되었으나 그는 거절했습니다. 이유인즉 기름 짜는 일이 자기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이를 고사했고, 포도나무도 자기 일이 있기에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면 요동한다고 했습니다. 곧 휘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것이 뭔지도 모르는 가시나무가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욕심 부리지 말고 자기 것을 찾으십시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