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자(마5:13~24)
어느 목사님이 심방을 가느라 급히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지라 택시비가 3천원 나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5천원 권을 기사에게 주었는데, 기사가 거스름돈으로 7천원을 목사님께 건네줬습니다. 7천원을 받아든 목사님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내가 만원을 냈다고 생각하는구나. 이왕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 챙길까?’ 택시에서 한 발을 내리고 목사님은 갈등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도 내가 명색이 목산데….’ 하고는 “기사님, 난 5천원을 드렸는데, 7천원을 주셨네요.”라며 5천원을 돌려줬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 왈, “압니다. 5천원 내신 거. 일부러 그랬습니다.” 그러는 거 아닙니까? 목사님은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런데 왜 7천원을 준 겁니까?” 했더니, 기사가 말하길 “사실 지난주에 목사님 교회에 처음 출석했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까 목사님이 택시 문을 열고 타시는 순간, 제가 목사님을 알아봤죠. 그래서 목사님은 정직하신가 하고 한 번 시험해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계속 목사님 교회에 나갈 겁니다.”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교회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택시에서 내린 목사님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그럼요. 정말 하마터면 대형사고 칠 뻔 했습니다. 만일 5천원을 챙겼더라면 그 기사가 “목사들도 거짓말하더라. 목사도 거짓말하는데 그런 교횔 왜 다녀?”고 자기 가족과 택시에 탄 승객들에게 말했을 거고….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라는 것이고, 썩어가는 세상에 방부제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정말 이 역할을 잘 감당해주기 바라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받잡기가 부담스럽습니까? 하나님께서 너무 엄청난 것을 요구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부담 가질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더 테레사나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거인이 되어야만, 큰일을 해야만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데서는 반딧불도 밝은 법, 깜깜한 곳에서 휴대폰의 빛도 유용할 터, 어두운 세상에서는 우리의 작은 행위도, 우리의 작은 사랑도 빛과 소금으로서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바른 언행심사가, 우리의 작은 배려가 세상에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길에 장애인이 구걸하고 있을 때 저만치 돌아가지 않고 천 원짜리 하나라도 건네주는 것, 구세군 자선냄비에 작은 물질이지만 기부하는 것, 눈이 내린 골목길을 쓰는 것,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 아무데나 주차하지 않는 것, 작은 일에도 거짓말하지 않는 것…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제 아들들이 어릴 적에 같이 길을 가는데, 술 취한 사람이 길에 누워있기에 제가 아이들더러 그 사람을 일으켜 깨우라고 하자 애들이 “아휴, 아빠. 그냥 가요. 남들도 그냥 가는데 왜 우리가 해요?”라고 해서 제가 야단을 쳤습니다. “이 사람이 길에서 자다가 차에 치면 어떡할래? 자다가 얼어 죽으면 어떡할래? 남들이 안하니까 우리가 해야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잖아.”라고 깨우쳐줬습니다. 아이들은 제 말에 그 취객을 일으켰고, 112에 전화해서 그 사람을 인계했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선(善)이라도 미루지 않고 하는 것, 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미루지 않고 버리는 것이 바로 빛과 소금으로서 할 일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안 보는 것 같지요? 아니요, 다 보고 있습니다. 가끔 매스컴에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부정행위에 대해 기사를 다루면 빠뜨리지 않고 꼭 하는 말이 ‘어느 교회 집사’, ‘어느 교회 장로’ 입니다. 다 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잘 할 때는 암말 없다가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은 드러나게 되어 있거든요. 어두운 데 있는 사람들은 환한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이거든요. 그러니 걸고넘어지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게 없습니다. 우리 믿는 자가 세상에 본(本)이 되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옳고 바르게 행동할 때, 우리가 선한 일을 도모할 때 우리가 말로 전하지 않아도 그들은 우리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요셉은 어디를 가나 본이 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고, 부정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즉 빛과 소금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도, 옥관장까지도 “역시 요셉은 달라. 하나님의 사람이야.” 하고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런 요셉에게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함으로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주셨습니다.
올해 저는 ‘잃어버린 것과 빼앗긴 것을 찾는 한 해가 되자’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반듯해야 합니다.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예수중심교회 장로래. 뭔가 달라.”, “저 사람은 예수중심교회 집사래. 아무도 모르게 선한 일을 그렇게 많이 한다네.”, “저 사람은 교회 다니는데 일을 맡겨도 돼. 진짜 정직하거든.” 안 믿는 자들이 이렇게 인정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사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려주실 것입니다.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세상이야 지름길이다 싶으면 남도 밟고 가고, 편한 길이다 싶으면 불법도 감행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꼭 정도로 가야 합니다. 거짓과 꾀를 버리고, 편법을 멀리하고, 정해진 룰대로, 정해진 길로 가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썩어가는 세상에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어리석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누가 시대에 뒤떨어졌다 하면 어떻습니까? 남의 시선이나 남의 생각이 나와 무슨 상관있답니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눈에 합당하고, 하나님의 생각에 합당하면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실 것이고, 그 하나님이 내가 잃은 것과 빼앗긴 것을 다 찾아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가 됩시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라는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면 절대 나쁜 짓 안합니다. 남에게 해로운 짓 안하고, 비굴한 짓 못하고, 부정직한 짓 못합니다. 하나님이 안 보신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겁니다.
저는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걸음걸이부터 행동거지 하나까지 반듯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물며 요셉처럼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하는 심정으로 산다면 충분히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아무도 안 보는 줄 알고 전봇대에 실례를 했는데 누군가 ‘이놈’하더랍니다. 그래서 위를 쳐다봤더니 전봇대 위에서 전기공사하던 사람이 다 처다보고 있더랍니다.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온전한 자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신년 벽두에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지 말며, 불쌍한 이웃을 돌아보고 구제하라고 설교했습니다. 모두 153구제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세상에 빛이 되자는 것입니다. 예수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영혼의 빛이 되고, 가난하고 불쌍한 자에게 구제함으로 사회의 빛이 되자는 것입니다.
불쌍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꾸이는 것이니 올해가 우리 일생일대에 최고의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친히 나서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과 빼앗긴 모든 것들을 찾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됩시다. 할렐루야!
작은 선이라도 미루지 말고 행하고 작은 악이라도 미루지 말고 버려라
정도(正道)가 가장 빠른 길이다 정도는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