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숙한 여인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잠31:10~31)
예쁜데 좀 게으른 여자와 인물은 그저 봐 줄 정도인데 부지런한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당신이 아내감을 고른다면 어떤 여자를 택할 겁니까? 며느릿감을 고른다면요? ‘천지가 개벽을 해도 여자는 예뻐야 돼.’ 이럴 겁니까? 그런 자에게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잠31:30).
저는 당연히 부지런한 여자를 택할 것입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보니까 아름다운 것도, 고운 것도 다 헛된 것임이 느껴집디다. ‘미인 소박은 있어도 부지런한 여자의 소박은 없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디다.
사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도 매일 보면 사실 이쁜 줄 모르는 겁니다. 늘 말하지만 연애는 환상이지만, 결혼은 현실이거든요. 매일 인물 뜯어먹고 사는 것이 아닐진대 결혼 상대는 부지런하고 요리 잘하는 여자가 낫다는 겁니다. 뭐 거기에 인물까지 따라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정자 좋고 경치 좋기가 쉬워야지요.
부지런한 아내를 둔 남자는 어디서나 빛이 납니다. 와이셔츠도 잘 다려 입었고, 바지에도 줄이 딱 서있습니다. 손수건도 잘 접어 다리미로 다려서 넣고 다니지요. 부지런한 엄마를 둔 아이들 역시 다릅니다. 아주 깨끗하지요.
오늘 본문은 현숙한 아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읽어보면 현숙한 여자는 역동적인 여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모양처(賢母良妻)라고 하면 정적인 여자를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성경은 동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한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자식을 잘 간수함은 물론이고, 외부활동까지도 능동적으로 잘 하는 여인을 지칭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B.C. 7~800년의 현숙한 여인상이나 21세기 현숙한 여인상이나 동일한가 봅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웠던 대처 수상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대처 여사가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 다우닝가 10번지 수상관저의 하루 일과는 언제나 오전 6시 30분께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일찍 일어나 손수 남편의 아침상을 차리는 등, 보통 주부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상관저에 일하는 직원을 하나도 두지 않았을 정도로 부지런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저로 나가 정치인으로서,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일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씨가 좋아도 밭이 가시밭이면 씨가 자랄 수 없는 법입니다. 여자가 게으르면 집안 꼴은 물론이고, 자식 농사까지 엉망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자만 부지런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럼 다시 여자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물려받은 돈은 좀 있는데 게으른 남자와 가진 건 별로 없지만 부지런한 남자가 있다면 배필감으로 어느 쪽을 택할 겁니까? 사윗감으로는요? 당연히 부지런한 남자를 택해야 합니다. 부지런함은 최고의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경우를 볼까요? 그가 외삼촌 집으로 도망갈 때 가지고 간 것이 없었습니다. 빈손이었어요. 그러나 그가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부지런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남자가 게으르면 그 집안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회사일인들 잘하겠습니까? 그러니 만년 그 자리지요. 안 잘리고 회사 다니면 다행일 겁니다. 쉬는 날에 소파에 누워서 자다가 텔레비전 보다 하는 남자, 안 됩니다. 아내도 도와주고, 아이들하고 대화도 하고, 가족 모두와 운동도 하고, 외식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절로 가정이 화목하게 될 겁니다. 안 그러니까 아내들이 ‘웬수!’ 이러는 겁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현대 신화를 쓴 정주영 회장의 성공 비결은 누구보다 부지런한 데 있었습니다. 쌀가게 시절부터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점포를 정리했던 정주영은 기업을 이룬 시절에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는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역정을 낼 정도로 일찍 일어나 7시면 회사로 출근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자의 것이라고 잠언 12장 27절에 말씀하고 있으니 정주영 회장이 일군 부귀는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인지 모릅니다.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부지런한 직원을 써야 합니다. 직원이 게으르면 그 기업의 앞날은 없습니다. 문 닫을 날 받아놓은 겁니다. 잠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6)고. 이빨을 초에 담가 놓아보세요. 다 삭아버릴 것이고, 눈에 연기를 쏘면 눈물만 펑펑 쏟고 앞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게으른 자를 쓰면 손해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업과 단체가 잘 될 리 없다는 것입니다. 모 그룹에 전무로 있던 장로에게 물었더니 아침 8시면 임원회의가 시작된다고 하더군요. 평사원이 출근하기 전에 임원회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빨리 출근하는 겁니다.
대업은 부지런한 자가 이룹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부지런히 일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이 일에 몰두하여 그들의 원수조차도 놀랄만한 기간 내에 일을 마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이 기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지런함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전2:9).
목사가 게으르면 절대 교회가 부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이유를 성도들에게서 찾으면 안 됩니다. 게으른 자신을 자책해야 옳을 것입니다. 목사에게도 철밥통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랑이 아니라 저는 정말 부지런한 스타일입니다. 우리 어머니 말씀대로 하면 무척 바지런합니다. 목회를 하기 전에도 아무리 전날 늦게 들어가도 새벽 4시면 테니스 채를 들고 나갔고, 7시면 출근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기도하고, 결재할 것 다 해주고, 아침에 영어공부까지 다 하고 나면 8시 정도 됩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만날 사람 만나고, 해결할 일 하고 그럽니다.
저는 정말 게으른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어떤 줄 압니까? 잠언에는 게으른 자들에게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것을 좋아하고(잠6:9),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도 싫어하고(잠12:27), 식사마저 일로 생각하며(잠19:24), 헛된 정욕에는 강하고(잠21:25), 부질없는 핑계가 많으며(잠22:13), 폄론을 하는 자(딤전5:13)로 그 결과는 가난하게 되고(잠10:4),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잠10:26), 남의 부림을 당할 것이고(잠12:24), 어려움이 많을 것이며(잠15:19), 그리고 구걸해도 얻지 못할 것(잠20:4)이고, 또 패가망신을 할 것이며(잠18:9), 굶주릴 것이고(잠19:15), 쇠퇴할 뿐 더러(전10:18),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마25:26~30)고요. 그러나 반대로 부지런한 자에 대해서는 부자가 되고(잠10:4), 사람을 다스리게 되며(잠12:24), 마음의 풍족함을 얻고(잠13:4),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게 된다(히6: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절대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인생, 길어야 80입니다. 죽으면 평생 잘 잠, 썩을 육신, 뭐 그렇게 아낍니까? 너무 아끼면 썩는 법입니다.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찾으면 찾고, 구하면 얻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지런한 자들이 찾고, 얻고, 열고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부지런한 자가 되십시오. 나태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게으름을 떨쳐버리세요. 그런 자가 성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2010년, 대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 한 해가 되자’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먼저 부지런해야 할 것입니다. 부지런한 자에게 행복과 부귀와 건강이 찾아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조잡한 변명과 핑계는 게으른 자의 전유물이다
개미가 될 것인가 베짱이가 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