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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514호 · 2010-01-01

더 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시대 목사야, 잘하려 하지 말고 더 잘 하려 해라. 잘하려 하지 말고 더 잘하려 해라.”

얼마 전 꿈속에서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음성만 들리기를 “이시대 목사야, 잘하려 하지 말고 더 잘 하려 해라. 잘하려 하지 말고 더 잘하려 해라.” 이 음성은 반복해서 들려왔고, 잠에서 깨어 그 음성을 되뇌며, 그것이 주님의 음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늘 주변의 동역 자들에게 “너무 잘하려 하지 마세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실수하니까 그저 열심히만 하세요.”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 생각과 달리 잘하려 할 뿐 아니라 더 잘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앙생활도 지금보다 더 잘하길 원하시고, 목회도 더 잘하길 원하십니다. 지금 진실한 것보다 더 진실하길 원하시고, 더 거룩하고, 더 기도하고, 더 열심이길 원하십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한 달란트 달랑 들고 온 자보다,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남겨 온 자를 더 기뻐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신앙의 초보를 버리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분량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신의 성품에까지 다다르기를 원하셔서 믿음 위에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쌓기를 원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성품이신 사랑의 단계까지 올라오기를 원하십니다. 더 나은 목자, 더 나은 일꾼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올해는 모든 것에 더 잘하려고 애쓰는 해가 되어봅시다. 더 잘하려다 실수를 해도 그것이 더 잘하게 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목회도 더 나아가 가정생활과 사업도 모두 더 잘하는 해가 되어봅시다. 사랑만 하지 말고 더 사랑하고, 감사만 하지 말고 더 감사하는 해가 됩시다. 하나님께, 성도들에게, 부모에게, 아내, 남편,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면 도와주십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에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착한 언니인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 식사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방으로 안내하고 부엌으로 나올 줄 알았던 마리아는 깍쟁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참다못해, “예수님, 마리아를 부엌으로 내 보내주세요, 저 혼자 너무 힘들어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마르다야, 너는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분주하구나. 한 가지 만으로도 족하니까 네 동생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얌체 같으나 더 좋은 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식사 준비하는 것도 좋은 일이나 당신 말씀 듣는 일이 더 좋은 일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일로 분주한 것보다, 교회에서 봉사하느라 분주한 것보다 예배드리며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을 선택한 마리아를 칭찬하고 계신 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예배 시간에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욱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더 좋은 것, 더 낳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더러 너는 내 말을 듣고, 마르다는 식사 준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더 좋은 것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선택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잘하려고 하던지 더 잘하려고 하던지, 좋은 것을 선택하든지 더 좋은 것을 선택하든지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좋은 것을 선택하고, 더 잘하려고 선택할 때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그 선택의 결과는 선택한 사람이 누리게 됩니다. 음식점에서 자기가 선택한 음식은 자기가 먹게 되고 자기 몸에 그대로 영향을 끼치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을 그들과 그들 자손이 그대로 받았듯이 말입니다. 에서와 야곱도, 롯과 오르바도, 부자 청년과 삭개오도 그들이 선택한 대로 결과를 얻었지 않았습니까.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2010년이 희망과 소망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더 잘하는 해, 더 좋아지는 해, 더 멋진 해가 되도록 우리가 선택하고 뛰어갑시다. 더 좋은 생각으로 가득하게 하고, 더 좋은 말로 풍성하게 합시다.

사랑하는 예수중심교회 주의 종들과 성도 여러분, 더 잘하고, 더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주님을 붙잡고 일어나 다시 달려나가는 2010년이 됩시다.

서울예수중심교회 담임 이시대 목사

2010년 새해를 맞아 교단 목사님들의 새해 각오와 비전을 들어보는 연재기획코너를 마련했다

당신은 상황을 보는가? 언약을 보는가?

미국의 그레이스빌 교회에 7년만에 아기를 갖게 된 부부가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얻게 된 아기에 대한 기쁨도 잠시, 그 아기의 어미는 곧 그 아이가 기형아라는 사실에 기절을 하고 만다. 그의 남편은 눈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 우리부부는 주님을 위해 교사와 성가대로 정말 부끄러움 없이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온 맘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7년 만에 아이를 주시면서 어찌 기형아를 주십니까?”

그 남편은 밤새 울부짖다가 새벽에 마음에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난 이 귀한 기형아기를 어느 가정에 보내야 나와 같은 마음으로 보살피고 사랑으로 잘 양육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너희의 믿음과 사랑을 보고 너희 부부를 선택하게 되었단다.”

이 말씀을 들은 믿음의 남편은 이내 달려가 아내에게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부부를 사랑해주시고 신뢰해주시니 감사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 오히려 기쁨으로 더욱 잘 키웁시다”

아기가 없어 힘겨워했던 시간에도 불평과 원망 하나 없었던 이 부부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안에 있음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현실가운데 마주한 모든 상황을 신앙의 절정인 감사로 누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신앙의 절정인 ‘감사’의 모습은 구약성경 창세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바로 꿈의 사람 요셉이다. 그는 남도 아닌 자신의 형제들에게 팔려 보디발의 가정노예로 전락한다. 이뿐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는 노예의 신분에서 출옥이 보장되지 않은 죄수의 수준까지 더 끌려내려간다.

그러나 그는 전혀 불평하지 아니했고 오직 감사하였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믿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옥중에서 죄수의 신분으로도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었던 것 또한, 나보다 큰 상황이 아닌 상황보다 훨씬 큰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켰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까이에서도 신앙의 절정의 현장이 있다. 바로 27일 주일, 함께 보았던 총회장 이초석 목사님의 목회 25년의 발자취이다. 갖은 핍박과 공작에도 전혀 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핍박과 순교가 온다해도 예수는 증거되야 한다’는 고백을 불같이 토해내시며 언제나 방해보다 더 큰 열정으로, 공작보다 더 큰 대안으로 열악한 상황을 침착히 뛰어 넘어오신 목사님. 이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과 감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감사와 평안함이 쉬운 믿음의 선친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첫째, 믿음으로 마음과 입술을 지키고 믿음대로 행동했다. 이들은 상황 때문에 원망과 불평을 입으로 내뱉는 어리석은 자(민13:25~33)가 아니었다. 그러한 자는 상황을 즐기는 감사와 기쁨이란 인생의 맛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분의 깊은 뜻을 믿고 입술과 마음을 지켰다. 그리고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고 믿음의 행동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였다.

둘째, 주어진 주님의 귀한 사명을 붙들었다. 사명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각 사람들에게 태초 전부터 계획되어 부여된 귀중한 보물이다. 그 사명을 붙드는 자는 마치 추운 눈밭 위에서 즐겁게 스키를 타듯 상황을 즐기게 된다. 스키는 그냥 세워두면 빛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타는 순간엔 그 보물의 가치를 반짝이며 드러낸다. 현실과 상황이라는 차가운 눈밭 위에서도 희락이 잔치하는 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결국 인생은 시선싸움이다. 사람은 왼쪽을 바라보고 걸으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가게 된다. 왼쪽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없다. 인생도 이 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찌하여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감정과 반응이 나타나는가. 서로 다른 곳을 보기 때문이다.

시선을 관리해야 한다. 하루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고약한 상황에서 하나님아버지의 신실한 계획과 사랑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그 시선의 차이가 믿음의 차이를, 행동의 차이를, 삶의 차이를 만든다. 어리석고 가벼운 인간과 인생이 되지 말자. 10명의 정탐꾼은 상황을 보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 분이 세우신 언약을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들의 미래가 되었다. 기억하자. 내가 바라보는 곳이 나의 미래가 된다.

2009년은 전 세계적인 어둠과 아픔의 시간 가운데 있었다면, 2010년은 그 고난이 만들어낸 찐한 육수의 풍미를 한껏 드러내는 맛깔 나는 한 해로 만들어보자. 고난과 상황은 절대 믿음의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한다. 오히려 악역처럼 주인공인 믿음과 능력의 하나님을 더욱 드러낼 뿐이다.

그레이스빌 교회의 어느 부부처럼, 요셉과 바울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믿고 바라보며 나가자. 그리고 지금 나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를 바라보자. 그러면 어떠한 상황 중에서도 환희와 소망이 잉태되리라.

잊지 말자. 내가 바라보는 곳이 나의 미래가 된다.

예루살렘교단 제1부총회장 이구원목사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곳으로 가라

유다왕 아사가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기로 백성과 언약하고 무릇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는 자는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죽이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했습니다. 또 우상을 타파하고, 모친이 아세라 목상 만든 것을 찍어 버리고 태후의 위까지 폐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기뻐서 20년 동안 전쟁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니 하나님을 찾던 자가, 하나님을 의지하던 자가 사람을 찾고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다를 치러 들어왔을 때, 아사왕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아람 왕을 찾아가 은금을 주며 그를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왕권과 백성과 건강과 재물, 목숨까지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되돌아보아 무엇을 잃었는가를 생각하여 그 잃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처음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 성령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우리를 거리로 뛰쳐나가게 해, 보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라고 전단지를 주며 전도를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방언의 은사를 받고 기뻐하며 저녁에 기도하면 날이 훤해 지도록 기도했던 그때, 주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며 방언 통역도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곳으로 가야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모압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먹을 것에 걱정이 없고, 두 아들도 결혼하여 두 자부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10년 만에 하나님이 계신 곳, 잃어버린 베들레헴을 다시 찾아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보아스를 만나 자부인 롯과 결혼시켜 후손 다윗을 낳고 그 뿌리를 통해 예수가 오셨습니다. 우리도 잃어버린 기도처를 다시 찾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가면 마음껏 부르짖고 잃어버린 기도 줄을 찾고, 하나님의 음성과 은사를 찾고, 귀신 쫓는 능력을 찾고 건강을 찾고, 물질, 직장, 사업, 영혼… 잃었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곳으로 갑시다(요14:14). 그러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10년도에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 한 해가 됩시다. 잃어버린 곳으로 달려가십시오.

예루살렘교단 제2부총회장 강반석목사

신년이라는 백지에 인생을 다시 씁시다

우리는 또다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새해를 신년(新年)이라고도 합니다. 한 해를 보내고 신년을 맞이하는 일은 성경에서 유래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넷째 날에 하늘에 두 광명 곧 해와 달을 두시고 이 광명으로 인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창1:14).

하나님께서 이처럼 일자와 연한이라는 시간의 개념을 인간에게 알게 하신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성도들에게 자기 인생의 때를 알게 하심으로 인생의 시간 관리를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사람들은 한 살이라는 나이를 먹게 됩니다.

이 나이를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살아왔으며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생의 시간을 주실 때, 일생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주시지 않고 일 년씩 끊어서 주셨습니다.

물론 한 해 한 해는 똑같은 시간의 연속된 흐름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한 해라는 시간을 보내고 맞이하면서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점검하여 새해부터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매해마다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종교력의 신년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구원을 얻은 때, 곧 유월절(逾越節)부터 시작됩니다. 또한 유대 민간력의 신년 역시 종의 신분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주는 희년(禧年)의 도래와 관련이 있습니다.(레25:10~15) 그러므로 신년은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과 재기의 소망을 주는 새로운 기회의 시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9년이 실패와 절망의 한 해였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시 새로운 기회의 시간, 곧 2010년이라는 신년을 주셨습니다. 종이에 잘 못 쓴 것은 지우개로 지워버리듯, 얼룩진 2009년을 지우개로 지우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2010년이라는 깨끗한 백지(白紙)를 주셨습니다. 이제 새롭게 인생을 그리면 됩니다. 지난 과거의 실수와 실패를 교훈삼아 두 번 다시 똑같은 실수와 실패가 없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2010년 신년에는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구원과 해방과 자유와 기쁨의 희년이 도래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중심신학교 학장 박진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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