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데 게으르지 말라 (잠18:15)
후진(後晉)의 이한(李瀚)이 지은 ‘몽구(蒙求)’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강(孫康)은 기름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눈(雪)빛에 책을 비추어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그는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란 사람 역시 불을 밝힐 기름을 구할 수가 없자 여름이면 수십 마리의 반딧불을 주머니에 담아 그 빛으로 밤을 새우며 책을 읽더니 마침내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고 하지요.
그렇습니다. 가난을 탈피하는 길은 어떻게든 공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가난이 대물림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MB 교육방침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어떻게 가난을 끊어내겠다는 겁니까? 바로 가난한 자들이 돈이 없어 교육의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자신이 가난한 환경에서, 도무지 학업을 지속할 환경이 아닌데서 공부해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배움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이런 정책을 제시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성공은 신화나 기적이 아닙니다. 성공은 절대 신데렐라의 꿈처럼 환상이 아닙니다. 성장 또한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 성장도 먹고, 움직여야 이루어지듯 인생의 성장 역시 동력이 필요합니다. 그 동력이 뭐냐? 바로 지식입니다. 배워 아는 것 말입니다. 국가나 기업이나 단체, 개인의 성장 동력은 바로 지식입니다.
잘 생각해봅시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동인(動因)은 무엇입니까? 어머니들이 휘날린 치맛바람 때문 아닙니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칭찬한 교육열 말입니다. 그것을 토대로 이 나라의 경제를 일군 것 아닙니까? 어디 경제뿐입니까? 박세리 이후에 불어 닥친 골프열풍이 지금 LPGA를 휩쓸고 있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몇 년 후면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세계를 주름잡을 날이 올 겁니다. 김연아 선수를 보고 우리 어머님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을 나쁘게만 볼 게 아닙니다. 가르친다는 것, 배운다는 것은 절대 지나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면서 참 느끼는 게 많습니다. 아무리 자원이 풍부해도, 자연환경이 빼어나도 배우지 않으면, 아는 것이 없으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을요. 아프리카에 가면 진짜 자원이 많습니다. 그냥 곡괭이 들고 파면 금이 나오고, 다이아몬드도 나옵니다. 그런데도 못살아요. 왜요? 안 배웠기 때문에요. 그래서 배운 외국인들에게 종속되어 온종일 먼지 뒤집어쓰고 일하고는 몇 푼 받아 드는 겁니다.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짐승처럼 살아요. 그런데도 그들은 그걸로 만족합니다. 왜? 아는 게 없으니까, 우물 안 개구리이니까.
제가 멕시코에 가면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멕시코는 저에게 제2의 조국입니다. 제가 거기 명예시민권자이거든요. 그래서 진심을 다해 이렇게 말해줍니다. “미국의 하나님과 멕시코의 하나님이 다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미국은 저토록 잘 사는데, 바로 옆 동네인 멕시코는 가난합니까? 배우기에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무식이 뭔지 압니까?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 무식입니다. 누가 바보인 줄 압니까? 내가 바보인 줄 모르는 자가 바보입니다. 배우기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아는 게 없으면 할 일도 없는 법입니다. 아는 게 힘입니다. 교육부재현상은 절대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제발 그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무력으로 중원을 평정한 고조 유방에게 육가가 한 말이 있습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 힘으로 백성을 제압할 수는 있지만, 통치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치국하는 법을 배우고, 백성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제에 대입해볼까요? 단순히 농사를 짓는 것으로 허기는 때울 수 있지만, 공부해서 농사법을 발전시키면 허기진 다른 나라까지 먹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쌀농사를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면 쌀로 과자도 만들고, 지식을 쌓으면 쌀로 국수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그냥 사과를 농사지어 내다 파는 것보다 배우고, 지식을 쌓아 사과주스도 만들고 사과잼도 만들면 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배워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또한 배우면 자유롭습니다. 영어를 알면 외국사람 만나도 겁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어를 모르면 괜히 주눅 듭니다. 알면 자유로운 겁니다. 하나님 말씀도 알면 그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곧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르면요? 하나님 말씀이 족쇄가 되어 삶이 구속되고 말지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배우는 일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해야 할 일이 바로 배우는 일입니다. 그러나 배우는 데도 적기(適期)는 분명히 있습디다. 나이가 들면 배우고 익히는 데 둔한 것이 사실입디다. 제가 요즘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는데 이게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우리나라 옛 노래에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시구절시구 차차차(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라는 게 있는데, 이거 잘못된 겁니다. 젊어서 놀면 늙어서 궁상떨어야 합니다. 젊어서 놀기만 하면 늙어서 남에게 빌어먹고 살게 됩니다. 그 때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때는 늦으리 ‘동숙의 노래’가 되고 맙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공부하세요. 그래야 늙어서 영광을 봅니다. 그래야 황혼이 아름답게 됩니다.
누군가 배우는 데는 왕도(王道)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공부에도 왕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왕도가 무언가 하면, 그 분야에 최고의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확실하게 배우고, 빨리 배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명사수에게 배워야 명사수가 되지 않습니까? 일류 요리사에게 배워야 일류 요리사가 되고, 제대로 영어 발음하는 원어민에게 배워야 영어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히딩크 감독이 지도하는 축구대표팀마다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이 그 좋은 예가 아닐까요?
제가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꼭 공부 쪽만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음식점을 하십니까? 더욱 배우고 노력해서 이왕이면 최고가 되시라는 말씀입니다. 길에서 노점을 운영하십니까? 조금 노력하면 노점에서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럼 집에서 계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는요? 노래라도 배우고, 바둑이라도 배우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절대 치매에 안 걸립니다. 그리고 뭔가를 배우고 공부하는 일은 인생을 젊게 만듭니다. 노인대학에 다니는 분들 보세요. 젊은 학생들처럼 활기에 차 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고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뭔가 공부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 뭔가 배워보려는 다짐을 하는 자체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배우겠다는 생각이 이미 당신 인생에 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것을 자동차에 비유해볼까요? 자동차는 운전자가 마음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차가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면 차는 꼼짝할 수 없듯, 인생은 당신이 하겠다고 하면 하는 것이고, 안 하겠다 하면 안하는 것입니다. 곧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뭔가 배우겠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이미 배움에 이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지만 아는 것이 없으면 할 일도 없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잠24:5). 할렐루야!
옥(玉)도 다듬지 않으면 석(石)에 불과한 법이다
아는 것이 없으면 할 일도 없다 아는 자만이 자유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