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줘라 (행2:37~3:10)
해외에 나가 집회를 갖는 것은 진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구교의 습성에 젖어 있거나 더는 예수님에 대해 알기는 알지만 심령이 냉랭한 곳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곳에 가서 집회에 성공하는 비결이 무엇인 줄 압니까? 무엇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타파하는 줄 압니까? 먼저 우리는 그들에게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그간에 행한 성령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일단 성령의 역사 영상을 보고나면 그들이 달라집니다.
눈이 동그래지고, 귀가 쫑긋해집니다. 그리고 닫혔던 마음 문을 열고, ‘나에게도 저런 역사가 일어났으면….’ 하는 간절함이 생깁니다. 바로 그 때 이곳에도 영상으로 본 것과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자며 제가 통성기도를 시킵니다. 그러면 그들은 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그곳에 역사하시지요. 병든 자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예수를 전합니다. 그러면요, 많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의 구원자요,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이미 열렸고,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눈으로 충분히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25년 만에 이렇게 전국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살아있는 목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시건만, 그러나 많은 주의 종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목사 말을 안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의사 말은 잘 듣습니다. 과학자 말도 잘 들어요. 왜요? 그들이 의학을 눈으로 보여주고, 과학자의 말 그대로 과학이 눈으로 입증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사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는 하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목사 말에는 콧방귀를 뀌는 겁니다. 목사가 능력이 없으니까 결국 하나님이 죽은 하나님이 되고, 능력 없는 하나님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필리핀에 가서 마닐라 예수중심교회 담임인 신민호 목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의 쥐꼬리만한 지식을 빼버리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오직 기도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네게 능력을 주실 것이고, 그 능력으로 목회할 때 교회가 부흥될 거야.”
그랬더니 신 목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지난 번 목사님께서 필리핀에 오셨을 때 성도 수가 50여 명 밖에 되지 않아 목사님께 정말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단에서 하루 6시간씩 기도했더니 제게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귀신이 떠나는 겁니다. 그걸 보고 여기저기서 성도들이 몰려들어 불과 11개월 만에 10배로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마치 광야에 메추라기 떼가 몰려들듯 성도들이 몰려들었습니다. 10년 동안 제 힘으로 애써도 고작 50여명이었는데, 보여주는 목회를 하니까 11개월 만에 500여 명의 성도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요, 제가 늘 말하듯이 청각적인 감동보다 시각적인 감동이 훨씬 큰 겁니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9장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가운데 놓고 귀신을 쫓지 못해 옥신각신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보시고는 다가가 그 아이의 귀신을 내쫓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왜 자기네들은 귀신을 쫓지 못했는지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보여주는 목회, 보여주는 신앙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집회에 나가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 7시간씩 기도합니다. 말이 쉬워서 7시간이지 7시간 기도하는 게 어디 쉽습니까? 정말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면 저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다들 기도는 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한테 이럴 수 있냐?’ 이럽니다. 그럼 물어봅시다. 휴대폰에 배터리가 없어 전화가 안 되면 그게 휴대폰 잘못입니까? 배터리 충전 안 한 사람 잘못입니까? 기도하지 않아서 목회가 안 되고, 사업이 안 되고, 가정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 책임입니까? 아니면 기도 안한 당신 책임 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못 빌어서 몸살이 나신 분인데,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신 분인데 그런 분을 왜 오해합니까?
왜 하나님을 오해하는 줄 압니까? 이는 하나님이 돌변하셨기 때문에도,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셔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신데, 당신의 믿음이 떨어져서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발 하나님을 이해는 못하더라도 오해는 하지 마세요. 기도하지 않아 믿음이 떨어진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모세와 아론을 향한 원망이었습니까(출16:8)? 그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습니다. 그들의 원망은 하나님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3).
아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려고 광야로 끌고 나왔겠습니까? 이를 뻔히 알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진 것은 그들의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만나를 내리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눈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욥을 보십시오. 욥은 정말 하나님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났습니다.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른 채 가족과 재산과 건강을 다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만하지요. 그러나 욥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요? 그가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믿음만은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오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보시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신 표적과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그에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믿음 있는 노아를 통하여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셨고,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아들을 주심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마리아를 통해서, 믿음이 있는 베드로와 바울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을 보이셨습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계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 있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배터리가 가득하기 위해서는 충전해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배터리가 가득해야 통화도 하고, 문자도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배터리가 가득해야 휴대폰을 활용하듯, 기도가 가득해야 믿음이 떨어지지 않아 하나님으로 하여금 마음껏 일하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모두가 개인 집과 자가용을 갖기 바라는 이유는 바로 집이 개인 기도처가 되고, 자가용이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는 개인 기도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목회, 살아 있는 신앙생활을 원하십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습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믿음이 확고해지고 그 믿음을 타고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진실은 만국 공통의 화페다 진실은 진실된 자에게만 통한다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오해하지는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