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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서원은 기적을 일으키는 열쇠다(삿11:1~11)

486호 · 2009-06-19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결혼서약입니다.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함께 하고….” 그냥 결혼신고만 하고 살아도 그만이지만 이 결혼서약 때문에 굳이 결혼식을 하는 겁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결혼생활을 지속할 것을 맹세하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이 결혼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이지요.

신앙생활의 기초도 바로 ‘약속’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 그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초석(礎石)입니다. 이 약속의 형태 중의 하나가 서원(誓願)입니다. 서원은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거나 일정기간 무엇을 안 하겠다거나 하는 자발적인 약속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 또는 그러한 것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로 하는 자원적인 약속이 바로 서원입니다.

입다의 이야기입니다. 입다는 출신성분이 그리 떳떳하지 않은 기생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정실의 자식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음은 물론이고 기업을 잇지 못하고 쫓겨나야만 하는 비운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의 고향 길르앗을 떠나 돕에 거하며 잡배들을 모아 군대를 결성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로 쳐들어오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만일 입다가 도와서 이 싸움에서 이기면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게 해준다는 것이 그들의 조건이었습니다. 입다는 꼭 승리 하고 싶었습니다. 꼭 암몬을 이겨 자신을 멸시하던 자들의 머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이에 하나님이 암몬 자손을 입다에게 붙이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입다를 제일 먼저 맞이하며 뛰어나오는 자가 다름 아닌 입다의 무남독녀가 아닙니까? 이런 입다의 서원을 두고 후세는 말이 많습니다. ‘서원하는 것에 너무 성급했다.’, ‘의롭다 할 수 없다.’ 등등…. 그러나 제가 오늘 초점을 둔 것은 입다는 두 달 만에 지키기 어려운 그 서원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잡류로 뭉친 입다의 군대가 정규군인 암몬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입다의 서원을 듣고 이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나의 경우입니다. 엘가나라는 한 남자를 섬기는 브닌나와 한나. 브닌나는 아들이 있는 반면 한나는 무자(無子)했습니다. 더욱이 브닌나가 한나를 무시하니 한나는 늘 번민에 휩싸여 지냈습니다. 이에 한나는 격동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기에 이릅니다.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1).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을 통하여 한나를 축복하셔서 마침내 사무엘을 낳게 됩니다. 사무엘이란 ‘여호와께 구하였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은 한나의 간곡한 기도와 서원에 감동하사 그의 닫혔던 태를 여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서원기도의 힘입니다. 서원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는 열쇠인 것입니다.

그러나 서원기도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에 신중해야 함을 물론이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입다가 그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삿11:35).

사실 서원기도의 첫 사례는 야곱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복을 가로챈 후에 도망하여 벧엘에 유숙하여 잠을 자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뵙는 꿈을 꾸고는 일어나 베고 잤던 돌을 가져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는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그러나 그는 이 서원한 것을 20년이나 까마득히 잊고 살았습니다. 부자가 되어 귀향한 야곱은 벧엘로 가야 하는데, 그곳에 가지 않고 세겜 땅에 머무르다 딸 디나가 겁탈 당하는 일을 겪게 되는데, 그 때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너는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35:1).

야곱은 그제야 도망자 시절에 하나님과 했던 약속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가족을 데리고 서원의 회복을 위해 벧엘로 올라가 다시 단을 쌓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창35:11~12).

저는 서원하고 지키지 않는 자들을 많이 봤습니다. 당시에는 급하니까 일단 서원해놓고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받고는 입 싹 닦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돌아서는 자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잊어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서원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며, 그 전에 먼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전5:4~5).

그러나 예외도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서원했을 경우 아비가 듣고 ‘안 돼’ 하면 그 서원은 사해집니다(민30:5). 또 아내가 서원했을 경우 남편이 제어하면 그 서약 역시 사해집니다(민30:8).

서원은 위기의 날에, 위급한 날에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서원을 받으심은 간구의 심도나 일의 성취의 열도를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하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다면 하나님은 마음을 여사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서원이란 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의 표시이기에, 내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시인하며 오직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신앙의 표시이기에 상달함이 큰 것입니다. 바울이 수리아로 떠나기에 앞서 머리를 깎으며 서원을 하자 하나님은 은혜를 더하사 가는 곳마다 강론할 때 모든 사람이 듣고 은혜를 받았고, 바울의 손으로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을 가져다가 대어도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던 것입니다.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이럴 때 서원기도를 하는 겁니다. 당신이 그 약속을 지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 약속을 성취시켜 줄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서원을 못하는 줄 압니까?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저는 92년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서 집회를 할 때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이 한 목숨 다 바쳐 주님의 일을 할 테니 이 집회가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물론 그 집회는 성공했습니다. 저 역시 지금껏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입다처럼 멸시 받는 자들, 한나처럼 한 맺힌 자들이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하심 밖에 없습니다. 그 역사하심을 원한다면, 빠른 응답을 원한다면 하나님께 서원하세요. 그리고 그 서원한 것을 지키세요. 괜히 앉아서 팔자타령하고 있지 말고, 하나님께 서원하여 인생을 역전시키세요.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변치 아니하며”(시15:1~4). 할렐루야!

약속은 곧 생명이다

지킬 수 없으면 말도 말라

팔자타령 말고 서원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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