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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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다

486호 · 2009-06-19

마른장작을 태우는 일은 아주 쉽다. 조그만 불쏘시개만 있어도 금세 불꽃이 일어난다. 그러나 날장작은 화구(火口)에 집어넣지 않고서는 힘들다. 괜히 설 달려들었다가는 불쏘시개만 허비할 뿐이다. 불이 활활 타는 화구에는 무엇을 넣어도 다 태워버린다.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 집회가 꼭 그랬다. 날장작을 태우기 위해 목사님은 집회에 나오시기 전까지 엄청난 화력을 준비하시느라 더욱 기도에 전무하셨다. 손전등 정도로 발 앞에만 밝히려면 건전지 두 개면 되겠지만, 도시 전체를 밝히려면 엄청난 동력을 끌어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먼저 목사님은 둘째 날 집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이라는 메시지를 증거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설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기가 몹시도 불편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는 목사님의 설교를 오해한 결과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요1:12).

사람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신분으로 격상됨을 뜻하는 것이다. 목사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우리의 신분을 바로 알아서, 사람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처럼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회중에게 다가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모두가 전전긍긍한다.

“당신의 자녀는 사람입니까? 짐승입니까?”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입니다. 개 새끼는 개요, 소 새끼는 소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했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은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여기서 백이면 백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답한다. 앞서 답을 미리 알려주고 질문했는데도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기가 너무도 곤혹스러운 것이다. 목사님은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두시고 사전에 반드시 정의해두신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의 형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분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왕의 아들, 딸이 왕은 아니지만, 왕족의 신분을 갖고 그에 상응하는 권세를 가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며 수군거리자 목사님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명쾌하게 답해주셨다.

“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15:5). 나무와 가지가 다릅니까? 결국 가지도 포도나무입니다. 그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나가면 말라 비틀어져 아궁이에 던져지겠지만, 나무에 붙어있으면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공급 받아 열매를 맺습니다. 바로 포도나무의 결정체인 포도열매를 만들어내는 통로로서 포도나무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에게서 떨어져나가면 예수와는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리겠지만,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있는 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곧 예수님과 우리가 한 몸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양포천은 집회 후, 포도나무 비유에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고 말했다.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시기를 즐겨하신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주일예배 때 일이다. 로니(Ronnie) 목사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그래프까지 비춰주며 헌금출납상황을 보고하는 것을 보신 목사님은 단호하게 나무라셨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고후 9:7)

“헌금은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이미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성도들에게 다시 보고한다니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여러분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나서 그 용처에 대해 부모님께 보고받는 자녀가 있다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는 천하에 불효막심한 짓이지요. 하나님께 드린 것을 사람에게 보고한다고요?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거 하지 말기 바랍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 드린 것을 보고받았다는 얘기 없습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온 예물을 사도들이 그들 뜻대로 사용한 겁니다. 헌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성도는 결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복은커녕 큰 징계대상입니다.”

로니 목사부터 모두가 크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특히 양포천은 비유의 탁월함에 경탄을 표했다.

“목사님이 그냥 ‘헌금 보고하면 안 된다’고만 말씀하셨다면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래야 되나 보다’ 정도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비유로 드시며 ‘하나님께 드린 것을 보고 받느냐’고 질타하시니 모두가 찔끔하며 깨달았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로니 목사로부터 성도들의 영성이 많이 저하되어 있으니 기도의 불을 붙여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고 단에 오르셨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메시지를 십일조와 헌금, 그리고 성전건축으로 몰고 가셨다. 전혀 예상치 않은 흐름이었지만, 하나님보다 더 정확하신 분이 어디 있을까?

그 메시지는 바로 그 교회의 모든 문제점을 일거에 해소하는 마스터키와도 같았던 것이다. 목사님은 헌금보고에 대해 질타하시며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신 후, 아예 그 자리에서 헌금을 어떻게 드려야하는지 실행에 옮길 것을 주문하셨다.

“감동 오는 분들은 헌금하세요. 로니 목사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곤 목사님은 갑자기 성령에 감동된 목소리로 외치셨다.

“지금 드리는 헌금은 모두 이 교회 성전건축을 위한 불쏘시개로 쓰이게 될 것입니다. 성전건축을 원한다면 모두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하세요.”

이 말씀을 선포하자 로니 목사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얼마나 성전건축을 갈망하며 그로인해 마음고생이 컸는지 알 것 같았다. 교회의 주축 멤버들도 눈물을 흘리며 나와서 헌금하였다. 목사님은 그들을 불러내어 헌금 앞에 모아놓고 직접 안수하시며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전건축을 선포하고 건축헌금을 드립니다. 반드시 이 헌물이 기초가 되어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특히 여기에 나온 당신의 아들들이 이 일에 앞장서서 헌신할 것입니다. 이들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시옵소서.”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감동이 성전을 감싸고 있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

예배 후 목사님이 떠나신 후, 로니 목사는 숙연하고도 결연한 표정으로 성도들에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우왕좌왕하지 맙시다.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힘을 합하여 대업을 이루어냅시다.”

점심식사 자리에서 양포천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니 목사님은 우리 교회 사정에 대해 전혀 아시는 바가 없을 텐데 어떻게 아시고 그런 설교를 하셨습니까? ”

알고 보니 그동안 로니 목사는 성전건축을 위해 건축위원회를 결성하려다 시끄러워져서 중도 포기한 상태였고, 헌금문제로도 교회 안에서 말이 많아 성도들에게 그래프로 보여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고충에 싸여있던 로니 목사를 위해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입술을 사용하신 것이었다.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다시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욱 놀랍고도 감격스런 일들을 준비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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