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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 한다 (히6:4~15)

471호 · 2009-03-06

미국의 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의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는 우유부단한 정책과 국내 경제정책의 파탄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에게 패배해서 재선에 실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퇴임 후 카터 센터를 설립하여 지구상에서 야기되는 중대사건에 분쟁해결사로의 조정역할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국제 헤비타트에서 펼치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많은 출판사에서 앞 다투어 그에 관련된 저서를 내고 있는데, 대부분의 책들이 ‘아름다운 노년’, ‘퇴임 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종지미(有終之美), 끝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성경에 끝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과정은 험산준령을 넘나들었지만 결국이 아름다운 사람, 끝이 빛난 사람, 마지막이 풍요로웠던 사람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믿음의 선친이요, 예수의 증인된 자요, 믿음의 전당에 기록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요셉이 그들 중 하나입니다. 그의 초년은 불행했습니다.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리고, 모함과 굴욕 속에 뒹구는 신세였지만, 그의 마지막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빛났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를 애굽에 팔았던 형들을 용서했으며, 그들을 구원하는 대역전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해야했던 다윗, 아들에게까지 몰려 다시 도망의 세월을 살았던 다윗, 밧세바를 취한 대가로 아픔과 고통을 겪었지만 그의 말년은 아름다웠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대상29:28).

욥도 볼까요? 그가 당한 고난은 가히 상상이상이었습니다. 가산이 다 날아가고, 자식이 죽고, 몸에 악창이 나고, 친구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그러나 욥의 말년은 어떠했습니까?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暮年)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욥42:12~17).

사도 바울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 그렇게 끝났다면 그는 비운의 사나이였겠지만, 그의 결과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딛후4:7~8).

어디 이 뿐입니까? 사무엘을 얻은 한나, 과부에서 보아스의 아내가 된 룻,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우편의 강도, 그리고 여섯 남자를 데리고 살던 우물가의 여인 등등 끝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많습니다.

반면 시작은 좋았는데, 처음은 창대했는데 끝이 비참한, 아름답지 못한 자들 역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볼까요? 이스라엘 초대왕인 사울입니다. 아름답고 준수한 청년, 거기에 겸손함까지 겸비했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그의 출발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접한 여인을 좇았을 뿐 아니라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끝은 처참했습니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삼상31:4~6). 자살로 끝난 겁니다.

솔로몬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려 전무후무한 지혜와 장수와 부귀를 쥔 솔로몬, 그러나 그의 결국은 파국이 예고된 폭풍전야로 마감되었습니다.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왕상11:12~13).

유다왕국의 10대왕, 웃시야는 52년간 치세를 펼친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으며, 농업개발과 예루살렘 성벽을 강화하는 등 날로 유다를 강성케 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 전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하였다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웃시야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대하26:21). 가룟 유다 역시 말년이 비참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신임을 받던 그가 배신하더니 배창자가 터져죽고 말았습니다(행1:18).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갈수록 창대해지는 자,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마지막이 아름다운 자와 처음은 좋았는데 끝이 좋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차이점에 대해서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감각을 잃었느냐 잃지 않았느냐의 차이입니다.

끝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바라다보고 갔던 자들이나 끝이 아쉽게 끝난 자들은 영적 감각을 잃고 우상을 섬기고, 교만을 떤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첫사랑을 잃은 자와 잃지 않은 자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6~7).

그 하나님을 배반하며, 그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냉정히 돌아서십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랑을 잃으면 촛대를 옮겨버리십니다. 그러면 인생이 별 수 있나요? 암흑이 되는 겁니다. 다 도적맞고 마는 겁니다.

사울이 그렇게 된 것은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삼상15:26)였고, 솔로몬이 그리 된 것도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왕상11:11), 웃시야의 말로가 비참한 이유도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대하26:16~18) 때문입니다.

지금 방향감각을 잃고 세상으로 나갔다면 회개하고 돌아오세요. 그러면 히스기야를 용서하고 다시 축복하신 하나님이, 삼손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행하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덜 떨어진 사람 취급합니다. 어리석고 미련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봐도 그들이 더 잘 나가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에 가봐야 아는 겁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자입니다.

과정은 결과를 대변하지 못하지만, 결과는 과정을 대변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주를 향하여 가는 길은 고난일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정말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감각을 상실하지 말고 부지런히 주를 섬기고, 열심을 다해 주의 계명을 지켜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도록 합시다. 주를 향한 마음에 변함이 없이, 초보의 신앙을 버리고 장성한 믿음에 이르러 믿음의 큰 역사를 이루는 일꾼이 됩시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성경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크게 웃을 수 있도록, 삶의 끝에 최후의 승리자가 되도록 믿음의 선친들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대로 살며,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삽시다. 분명 당신의 끝은 진정 아름다울 것입니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전7:8).

할렐루야!

떠오르는 붉은 태양보다 지는 노을이 더욱 아름답다

과정은 결과를 대변할 수 없지만 결과는 과정을 충분히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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