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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막1:21~28)

464호 · 2009-01-16

저는 예수님을 만난 뒤, 장남으로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집에서 쫓겨나 아이들과 함께 제가 운영하던 인복 유치원 지하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아이의 온몸에 부스럼이 생기고, 아이들이 자다가 경련을 일으키며 소리를 지르는 등 난리를 치는 겁니다. 하루 이틀 그런 게 아니다보니 유치원 교사들조차 이 사실을 알고는 병원에 데려가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귀신의 장난인 것을요. 그래서 매일 귀신을 쫓아내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순간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왔더니 깨끗함을 받았다는 열왕기하 5장의 말씀이 생각나서,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귀신을 쫓은 후에 재웠는데 어제와 다르게 잘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들의 몸을 보니 부스럼이 다 사라지고 깨끗해졌지 뭡니까.

배운 대로 한 겁니다. 성경에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나간다’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했더니 정말 아이들이 낫더라고요. 이것은 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 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처럼 평신도일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 저처럼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귀신이 떠나가고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 있는 것들이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합니까? 주님이 공생애 동안 몸소 행하시며 가르치셨고, 제가 매일 목이 터져라 하고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르치는데 왜 아직도 여전히 가난을 안고 살고, 병을 끼고 살고, 궁색하게 살고 있는 겁니까?

가난을 주는 것도, 병들게 하는 것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도 다 귀신의 짓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가르쳤는데 왜 예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사장시키고 있습니까?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총과 함께 쏘는 법을 가르쳐줬는데 왜 안 쏩니까? 앞에 이리 떼가 있는데, 산돼지가 당신을 위협하고 있는데 ‘주여’만 하고 있으면 어찌 합니까? ‘목사님’ 하고 있으면 어쩌란 말입니까? 제가 언제 다 일일이 쫓아다니며 쏩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예수 이름이나 제가 소유한 예수 이름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이름은 창조주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 앞에 만물과 만인은 다 무릎 꿇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 이름을 두고 고생하고 아파합니까? 우리 주님이 찔리고 상하고 채찍에 맞고 징계를 당하신 것은 우리를 병에서 가난에서 해방시키려고 친히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의 고난을 헛된 것으로 만드십니까? 우리에게는 아플 권한도, 가난할 권한도 없습니다. 왜요? 주님이 이미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틈만 나면 악한 것들이 노리지요. 그러니 예수 이름으로 악한 것들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저녁때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갈릴리 호수로 가서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일어나 배에 물이 가득 들어와 가라앉을 위험에 처하게 되자 제자들이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급히 깨웠습니다. 깨신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어 잠잠하게 하고 나서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원문에는 ‘아직까지도 믿음이 없느냐’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라면, 가장 옆에서 배웠다면 예수님이 하셨듯이 바람과 파도에게 잠잠하라고 명령해야 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한 그들에게 주님은 ‘아직까지도 믿음이 없느냐’고 통탄하신 것입니다.

배웠으면 실천해야지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 개 삼 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이 배우고 본 대로도 못하니 주님은 답답하셨던 것입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대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7~18). 그 주님은 우리를 보고 통탄해 하십시다. “왜 실천하지 않느냐? 배웠으면 실천해라.” 하십니다.

이번에 장로로 장립된 장로님 중에 강화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분이 있는데, 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분은 늘 제 설교 테이프를 틀어놓고 일을 하셨대요. 그러니 제 설교를 다 외우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소 울음소리가 요란하여 나가보니 소가 그만 인분을 저장해 놓은 큰 통 속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울어대고 있더랍니다.

그 분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를 구출하려고 했지만 허사였대요. 그때 문득 제 설교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아,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하셨지.’ 그래서 그는 소를 향하여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소는 똥통에서 나올지어다.” 하고 몇 번을 명령했더니, 마치 소가 뛰쳐나오듯 하며 정말 똥통에서 빠져나왔다지 뭡니까!

거짓말 같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가서 물어보십시오. 지금 인천교회 성가대 대장을 맡고 있는 황인기 안수집사의 아버님 되시니까요. 언젠가 그 분을 뵙고 이 일을 이야기 했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배운 대로 하니까 되데요.” 명언입니다.

예, 배운 대로 하면 됩니다. 안 하니까 안 되는 거지, 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구구단 배웠으면 활용해야죠. 열심히 컴퓨터 배웠으면 인터넷 검색도 하고, 메일도 쓰고 해야죠. 활용 안하면 그 컴퓨터 뭐 할 겁니까? 내다 팔아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예수 이름’을 줬는데, 사용 안할 거면 반납하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하나를 배우면 둘로 활용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고 명령했더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로 걸어본 적이 없는 걸인이 일어나 뛰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베드로가 소유한 예수 이름의 권세나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예수 이름의 권세는 동일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배운 대로 했느냐, 안 했느냐 이것입니다.

배운 대로 했는데도 안 된다고요? 그것은 총구가 녹슨 것입니다. 같은 총이고, 같은 총알이라도 총구가 막혔으면 절대 총알이 안 나옵니다. 아무리 방아쇠를 잡아 당겨도 총알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없다면 총알이 안 나가요. 사도 바울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말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 이름을 사용할 때 예수 이름 앞에 모든 것이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어느 율법사가 주님께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사가 다시 묻지요. “누가 내 이웃입니까?” 그러자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원수까지도 참 이웃임을 가르쳐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 배웠으면 실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의 권세 뿐 아니라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도 배웠습니다. 배고픈 자에게 사랑이 뭔 줄 압니까? 배부르게 먹이는 것입니다. 외로운 자에게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고, 아픈 자에게 사랑은 고통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2:16).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이웃이 많습니다. 고통 받는 이웃도 많습니다. 주님께 사랑을 받음으로 사랑을 배웠으니, 이제 그 사랑을 서로 나누는 자가 됩시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13:2). 배움의 끝은 실천입니다. 할렐루야!

부뚜막의 소금은 넣어야 짜고

서 말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위대한 사람은 순간 결단하고

바보들은 매일 결심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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