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견이 불여일행이라(百見 不如一行)
같은 숲에 사는 여우와 토끼는 서로 친구 사이다. 어느 날 여우와 토끼는 그들 공통의 적인 호랑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여우는 말하기를 자기는 지혜롭고 민첩하기 때문에 호랑이가 나타나더라도 얼마든지 피할 수가 있고 따라서 호랑이는 전혀 겁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쳤다.
“만약 호랑이가 가까이 온다면 굴속으로 도망해서 호랑이가 사라질 때까지 숨어있거나, 아니면 어떤 호랑이도 뒤따라오지 못하도록 번개같이 달아날 테야. 또는 가장 가까운 냇가로 가서 한동안 몸을 담가 호랑이가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고, 뒷걸음치며 맴돌이를 하여 호랑이 눈을 완전히 혼란시킨 뒤 나무 위로 올라가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이리저리 헤매는 얼빠진 호랑이의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지. 그깟 호랑이 올 테면 오라지. 이 여우님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정말 여우의 도피법은 무궁무진한 듯이 보였고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그에 반해 토끼는 약간은 겁먹고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하였다.
“만약 호랑이가 나타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한 가지, 걸음아 나살려라 달리는 것뿐이야.”
토끼는 부끄러운 듯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바로 그때, 그들은 호랑이의 나직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토끼는 아까 자기가 말했던 대로 걸음아 나살려라 힘껏 달아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한편 여우는 굴에 들어가 숨을까 말까, 잽싸게 달아날까 말까, 냇가에 들어가서 냄새를 물로 감출까 말까, 아니면 뒷걸음으로 원을 그리며 맴돌면서 호랑이를 어지럽게 만든 후에 나무에 올라갈까 말까 이리저리 생각하느라 주저주저하고 있다가 그만 득달같이 달려온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면 백견은 불여일행(百見 不如一行)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이론과 학식으로 무장하였더라도, 3만6천5백가지 하나님 말씀에 정통할지라도 실천함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배움의 끝은 뭐다? 다름 아닌 실천이다. 실천 없는 배움은 도루묵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