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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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때 (에 4:7~17)

448호 · 2008-09-28

언젠가 저는 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회의를 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다리를 쭉 뻗고 반쯤 누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 나가시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라 “예수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일을 많이 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그럽니다.” 라고 말씀 드렸는데도 예수님은 저를 돌아보시며 “피곤하면 쉬어라. 너 아니면 사람이 없는 줄 아느냐?” 하시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잠에서 벌떡 깼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저는 생각이 깊었습니다. “그래, 나 아니더라도 주의 일을 할 사람은 많겠구나. 기회를 주셨을 때 최선을 다하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당신의 계획하심을 변개하거나 늦추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당신의 계획과 일을 관철하시지만 사람으로 인하여 당신의 경륜에 차질을 빚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일에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집을 짓다가, 요리를 하다가 도구가 망가졌다고 없던 일로 하지는 않습니다. 도구가 망가졌거나 쓰기에 불편하면 다른 도구로 바꾸어 일을 진행하듯,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당신의 도구로 쓰셨는데 그가 불순종하거나 나태하면 다른 도구, 즉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끝까지 바로 앞에 서기를 두려워했다면, 말이 둔한 것을 핑계 댔다면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역사가 무산되었겠느냐 이 말입니다. 아니요, 하나님은 모세 대신 다른 사람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내셨을 것입니다. 사울 대신 다윗을 쓰신 하나님, 와스디 대신 에스더를 쓰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재상인 하만의 계략으로 인해 전 유대인들이 학살될 위험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를 안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 이 일을 아뢰어 민족을 구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아무리 왕후라도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설 수 없음을 아뢰니 모르드개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位)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4:14).

모르드개는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 계획하심과 뜻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반드시 이루어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만의 궤계 따위로 이스라엘 민족이 멸절되지 않을 것을 믿었습니다. 다만 누가 하나님에 의해서 이 백성들의 구출자로 사용될 것이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에스더가 끝끝내 못한다고 버티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신다는 믿음이 모르드개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금식한 후에 아하수에로 왕 앞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갑니다. 어전에 나가니 왕이 에스더의 아리따움에 반하여 금홀을 내밀며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며 반깁니다. 에스더가 하고자 하니까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만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복음을 배척했고, 이에 전도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렇다고 복음이 사장(死藏) 되었나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유럽으로 복음이 흘러들었고, 유럽이 복음에 나태해지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지금은 우리나라로 들어와 왕성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복음에 시들해지면 이 복음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 결국 주님의 계획, 즉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에 의해 방해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그러므로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계3:19).

이 비유가 바로 누가복음 1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는데 청함을 받은 자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주인이 “사람들이 없으니 잔치를 접읍시다.”라고 말했습니까? 아니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눅14:21)고 했습니다. 잔칫집에 초청받은 자들이 거부했다고 해서 잔치가 취소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거부하면 다른 사람을 채워서라도 주인의 잔치는 배설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으면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칫집을 채워 잔치를 여는 주인의 계획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은 유대인 가운데 소외되고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정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길과 산울 가’는 성 밖의 영역으로 바로 이방인들을 일컫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역시 하나님의 예정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때 난색을 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손을 내미실 때가 우리에게는 기회요, 그것은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때 감사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에 내 육체를, 내 시간을, 내 물질을, 내 지식을 기쁨으로, 아낌없이 얹어드려야 합니다. 내가 거부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게 손을 내밀어주신 것에 무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예수께서 열매를 달라 하실 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다가 뿌리까지 말라 죽었습니다. 그러나 건너 마을 어린 나귀는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않았으나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자신을 내어 놓아 나귀가 사람이 벗어 놓은 옷가지 위를 걸었고 ‘호산나’ 찬미를 들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실 때 내어놓는 것이 이렇듯 복입니다.

10월 7일부터 3일 동안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집회가 있습니다. 주님이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네 육체 좀 쓰자.”, “네 물질 좀 쓰자.”, “네 시간 좀 쓰자.” 그때 기쁨으로 주님께 내어드리는 자가 됩시다. 누가복음 14장의 사람들처럼 ‘내가 밭을 사서’, ‘내가 소 다섯 겨리를 사서’, ‘내가 장가를 들어서’라고 말하지 말고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쓰소서.’ 하고 드리는 자가 됩시다.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써 주심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데 내가 도구되게 하심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됩시다. 내가 하지 않는다고 주님의 일이 멈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들어 주님의 역사는 계속, 여전히 진행됩니다. 그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가 복된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 복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자는 어리석다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도와야 얼마나 도움이 될까?’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린 나귀도 다 쓸모가 있었습니다. 과부 두렙돈이 별거 아니었겠지만 주님은 이를 무엇보다 귀히 여기셨습니다. 당신의 작은 수고와 노력을 하나님은 가상히 여기시고 거기에 역사하실 것이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주님의 손에 올려지니 많은 사람이 먹고 남았지 않습니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작은 힘이 합쳐지고, 우리의 작은 수고와 헌신이 모아지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듯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그때에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에스더가 하고자 했더니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이 열렸던 것처럼 오늘의 이 잔치를 위해 당신의 건강이, 물질이, 시간이 있는 것이며, 당신이 이 집회를 위해 뛰고자 할 때 모든 환경과 여건이 조성되고 돕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오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역사에 동참하는 복된 자가 됩시다. 주님을 위해 물질을 쓰는 자, 주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는 자처럼 행복한 자는 없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요

우리는 그분의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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