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드릴까요?
여보게,
요즘 개인주의가 지나쳐서 그런지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지. 예전에는 취객이 길에 쓰러져 있으면 깨워서 집에 보내는 것이 상례였는데, 요즘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 갈 길만 가는 세상이 되었네.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보니까 어떤 여자가 치한에게 당해서 ‘살려 달라’고 고함을 쳤는데도 아무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세상의 냉정함에 대해 평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지. 옆집 노인네가 죽은 지 며칠이 되어도 모르는 세상이니 탄식할 노릇이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우리 모두의 책임인 걸.
강도를 만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는데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얼른 피해 지나갔고, 레위인도 그 사람을 봤는데 도망치듯 가버렸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여행하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는 상처를 싸매 주고 주막으로 옮겨 주막의 주인에게 돈을 주며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고, 돈이 모자라면 돌아와서 더 주겠노라고 했다네. 주님은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지. 잠언에도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자네는 어떤가? 제사장처럼, 레위인처럼 ‘내 일이 아니니까’ 하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마리아인처럼 도움을 준 사람인가. 제사장은 목사고, 레위인은 하나님의 사람들인데, 오늘날도 여전하다면 이는 사랑이 본체이신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 아니겠나.
하긴 건져놓으면 보따리 내놓으라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 얼마 전에 내 동생 이시대 목사가 길에서 뺑소니 친 사람을 도와줬는데, 그 사람이 되레 ‘이 사람이 자기를 치었다’고 하는 바람에 곤경에 처했었다고 하더구먼. 참 겁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한다면 더욱 나쁜 사람이 되겠지.
여보게,
그리고 하나 더,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자를 보고도 이를 관망하고 있다면 이는 더욱 악한 자가 되는 거라네. 후진하는 자동차 뒤에 아이가 놀고 있다면, 소경이 낭떠러지를 향하고 가고 있다면 그들을 당연히 구출해야 하듯, 지옥을 향하고 있는 자들, 영원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을 보고도 방관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는가. 가장 선한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영혼을 구원하는 자라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다면 하나님이 자네를 만인 앞에 자랑하실 것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