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 ( 마 7:6 )
당신은 장로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까? 권사의 가치, 집사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까? 더는 하나님 자녀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이 한낱 세상의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끔 주님이 주신 직분을, 주님이 맡기신 일을 헌신짝 팽개치듯 하는 자들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그것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돌멩이가 심상치 않아서 다가가 보니 그것이 다이아몬드 원석이더랍니다. 돌멩이만한 다이아몬드를 아이들이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놀란 그 사람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과자를 몇 봉지 주고, 서너 푼의 돈을 주면서 그 돌멩이를 달라고 했더니 되레 아이들이 감사하다고 하며 그것을 선뜻 내주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돌아온 그는 그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 판매하여 엄청난 부자가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실화입니다. 아이들이 그 원석의 가치를 모르니까 과자 몇 봉지에 다이아몬드 원석을 넘긴 것입니다.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넘겼겠습니까? 그런 사람, 지금 많습니다. 안내위원 하다가 쉽게 팽개치는 사람, 성가대 하다가 하기 싫다고 안하는 사람, 장로나 권사 자리를 우습게 여겨 버리는 사람, 다 아프리카 아이들과 똑같은 자들입니다. 더 말하면 뭣하겠습니까? 주의 종도 하다가 걷어치우는데요.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
그러므로 일을 맡기기 전에 그것의 가치를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요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에게 수표까지 들려 보내는 부모가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것은 아이를 죽이는 겁니다. 잘못되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돈이 남아 썩어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돈에 대한 가치관이 미처 성립되지 않았는데 큰 돈을 주니 애들이 안 가야할 곳에 가고, 안 해야 할 짓을 하는 겁니다. 다 개념 없는 부모 탓입니다. 돈만 많이 주면 좋은 부모입니까? 아닙니다. 돈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해서, 돈이 귀한 줄 알게 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입니다.
외아들을 둔 부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을 늘 걱정했습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가 직접 돈을 벌어오너라.” 아들이 잔뜩 걱정된 얼굴로 방을 나오자 이 말을 살짝 엿듣고 있던 어머니가 “걱정마라. 엄마가 돈을 줄 테니 네가 벌어왔다고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틀 후, 아들은 어머니가 준 돈을 들고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돈을 벌어왔습니다.” 하며 돈을 내밀었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받더니 활활 타고 있는 페치카에 그 돈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덤덤히 이를 바라다볼 뿐이었습니다. “이건 네가 번 돈이 아니야. 네가 직접 번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았니?” 아들은 ‘어떻게 아버지가 눈치 채셨을까?’ 하고는 방을 나왔습니다. 또 어머니는 아들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것 역시 페치카에 던져 버렸습니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노동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아버지께 갔습니다. “아버지, 정말 이 돈은 제가 벌었습니다.” 하며 돈을 드리자 아버지는 이 돈도 페치카에 던져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내 돈! 안 돼요!” 하며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그제야 “네가 번 돈이 맞구나. 돈을 벌어보니 돈의 가치를 알겠지?” 하며 아들을 힘껏 안았습니다. “네, 아버지.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았습니다. 다시는 돈을 함부로 쓰지 않겠습니다.”
제 아들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저는 기성회비를 지폐로 준 적이 없습니다. 다 동전으로 줬습니다. 한 보따리지요. 그것을 아이의 손에 들려 은행에 가서 바꿔 학교에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아들들이 창피해서 울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제가 까칠한 아버지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귀한 자식이기에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또 당시 오디오테이프 하나를 보내는데 300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동전을 줄 때, “300원이면 테이프가 하나란다.” 하면서 돈에 대한 가치를 가르쳤습니다. 듣는 어린 것들은 짜증났겠지요. 그런데 지금 그들이 장성해서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아버지 덕에 올바른 경제관념이 생겼습니다.”라고 합니다. 암요, 제가 좀 혹독한 것 같아도 장담하건데, 제 자식들은 적어도 돈 사고는 안칠 겁니다.
돈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돈을 맡기고, 일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일을 맡기세요. 돈의 가치를 알면 돈을 귀히 여길 것이고, 일의 가치를 알면 뛰지 말라고 해도 뛰게 되어 있고, 누가 간섭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왜 남들이 노는 주말에 가족여행 한 번 못가고 꼬박꼬박 주일을 지킵니까? 주일성수에 대한 가치를 알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누가 감시한다고 주일 성수합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 날을 알고, 그 날에 받을 상을 알기 때문 아닙니까?
해외에 나가면 제가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이것입니다. “목사님은 한 달에 반 이상을 해외에 다니시는데 본 교회는 어떻게 하고 다니십니까?”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지체하지 않고 이렇게 답을 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님이 주신 직분, 주님을 위한 봉사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쳤습니다. 가치를 알면 누가 보든 안 보든 충성하게 되어 있거든요.”
제가 적지 않은 나이에 보름 간격으로 비행기를 서너 번씩 갈아타면서 지구 반대쪽까지 가는 것은,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받을 상과 면류관, 그리고 주님과 한 상에 앉아 심판할 것을 생각하면 절대 피곤하지 않습니다. 의욕이 샘솟듯 합니다. 주님도 구원사에 대한 가치를 아셨기에 그 험한 십자가를 말없이 지실 수 있었고, 모세가 80세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것은 그 사건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만물의 찌끼처럼 여김을 받으면서도 기쁨이 넘쳤던 것도, 감옥에 갇혀서도 찬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전도자로서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어느 집사님의 남편이 중풍으로 오랫동안 누워 지내고 있었습니다. 대소변을 다 받아내야 했지요. 동네사람들은 그 집사님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는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좋겠네요. 집사님도 고생이 너무 심하고, 누워 있는 분도 그렇고요.” 그러자 그 집사님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저렇게라도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비록 병든 남편이지만, 대소변조차 혼자 처리할 수 없는 남편이지만, 남편의 가치를 알고 있는 집사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하더라도 남편의 가치는 엄청난 것이며, 대단한 미인은 아니지만 가정을 묵묵히 지키는 아내의 가치, 역시 따질 수 없으며, 당신에게 많은 유산을 남길 것이 없는 부모라도 그 가치는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가치를 제대로 안다면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개,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진주 목걸이가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가치를 모르면 자에게 일은 삶의 무게일 뿐입니다. 그런 자는 일의 노예로 일에 끌려 다닐 것이고, 일에 눌리고 말 것입니다.
직원에게 일의 가치를 가르치세요. 자녀에게 돈의 가치에 대해 말해주세요. 교인에게 전도의 가치, 기도의 가치에 대해 설교해주세요. 가치를 알면 노예처럼 일하지 않고 사주 이상의 생각으로 일할 것이고, 가치를 알면 절약하게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가치를 알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무시로 기도할 것입니다.
가치를 아는 자, 그가 바로 성공자입니다. 할렐루야!
가치를 아는 자는 피곤함을 모른다
가치를 아는 자에게 일을 맡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