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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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큼 성장하고 기도만큼 이룬다

439호 · 2008-07-27

“나는 오늘 매우 흥분되는 마음으로 이 단에 섰습니다.”

목사님은 독일의 역사적인 첫 집회를 여는 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동안 동유럽 및 아프리카 집회에 다니며 숱하게 독일을 경유하였지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나라, 독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발을 디딘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10여 년 전부터 유럽의 복음화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왔습니다. 나는 오늘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서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첫 방문도시인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도, 두 번째 방문도시인 오스나브뤼크(Osnabrueck)에서도 동일한 감격을 감추지 않으셨다. 독일 집회가 열리게 된 경위부터 예사롭지 않았지만, 현지에 도착해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보니 더욱 하나님의 오묘막측하신 뜻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공항에 도착하니 본(Bonn)에서 공부하고 있는 은주와 그녀의 새신랑 프랑크(Frank), 그리고 다름슈타트에서 온 페터(Peter) 목사와 티무르(Timur)가 나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프랑크는 직장마저 조퇴를 하고, 이번 집회에 목사님을 도와 일할 아내 은주를 데리고 온 것이다. 물론 신혼이니 당연하다 하겠지만, 아내를 끔찍이 여기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감사했다.

페터 목사는 목사님을 몹시도 보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벌써 10년 전에 목사님의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비슈케크(Bishkek) 출신인데, 비슈케크 예수중심교회의 반주자 굴라라의 남편 티무르를 통해 테이프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페터 목사는 매우 뜨거웠다. 목사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상기된 얼굴로 ‘아멘’을 연발했다.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그는 귄터(Gunter) 목사 부부를 소개했다. 귄터 목사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독일의 영적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게 되었다.

20세기 전반기를 얼룩지게 한 1, 2차 세계 대전은 독일 국민의 정신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2차 대전에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은 독일 국민으로 하여금 씻을 수 없는 죄의식으로 허덕이게 만들었다. 괴테(Goethe)와 베토벤(Bee-thoven)의 나라라는 문화적 자긍심에 가득 차있던 독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럽의 역사를 뒤바꿔놓을 만큼 자부심 넘치던 독일이 1, 2차 대전을 지나며 만신창이가 되고 만 것이다. 비록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나 경제적 부를 얻고 통일 독일의 새 역사를 만들어가곤 있지만, 그들은 도저히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적 공허함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은 그들에게 독일이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함을 역설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전의 그 어떤 추악한 죄도 다 사함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법은 너무도 쉽고 단순한데, 사람들은 세상의 과학이나 철학으로 포장된 뭔가 그럴듯한 것이 없나 골몰한다. 성경을 철학으로 포장하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분석하고 쪼개다보니 결국 진리를 잃고 만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충만했던 1세기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독일이 다시 부활하는 길이다.”

기나긴 여행과 시차로 인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목소리를 높이며, 귄터 부부에게 한 번 독일과 유럽을 뒤엎는 대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보자고 역설하셨다. 그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아멘’을 연발하였다.

목사님은 우리 일행들과 함께 한 아침식사 자리에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 2 : 4 9)

“정말 기도는 단 하나도 땅에 떨어지는 것이 없다. 꿈은 우리를 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참지 못하고 포기할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그분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럽을 위해 기도한 것이 얼마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이 지극히 작은 비디오테이프에 실으셔서 오늘의 역사를 열고 계신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이번 독일 집회를 시작으로 전 유럽이 성령으로 뒤엎어지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목사님은 그 순간, 소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나아갔던 사도 바울의 그 거침없는 발길을 떠올리신 것은 아닐까. 바울이 야만과 어둠 속에 있던 유럽에 진리의 빛을 밝혔듯, 이제 목사님은 긴 영적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유럽에 부활의 빛을 던지려 그 첫 발걸음을 내딛고 계신 것이다.

이튿날 오전에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다름슈타트로 향했다. 페터 목사는 러시아어에도 유창하였다. 슬라바 목사와 페터 목사의 통역으로 목사님은 이 땅에 첫발을 내딛는 의미를 설명하셨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그분도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고조될 때마다 그들은 마치 그 말씀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눈물로 그 말씀들을 받고 있었다.

귄터 목사는 오스나브뤼크로 떠나시려는 목사님을 붙잡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었다. 그의 질문의 요지는 오늘 성령을 받고 뜨거워진 이 사람들이 목사님이 떠나시고 다시 흩어져버리면 모든 것이 다시 식어져버릴 까 걱정이라는 것이다. 목사님은 그들과 함께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에 전무하라고 말씀하셨다. 귄터 목사는 내년에 집회를 열겠다고 나섰다. 불이 붙은 것이다. 목사님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기도가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다름슈타트를 떠나면서 페터 목사에게 다음 도시에서도 꼭 통역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러자 페터 목사는 너무도 기뻐하며 이튿날 세미나 시간에 맞춰 꼭 가겠다고 약속하였다. 정말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분이다.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오스나브뤼크에서 준비한 통역관이 마지막에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은 차였기에 통역관을 위해 기도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10년 전에 목사님의 비디오테이프를 접한 페터 목사를 준비해놓으신 것이다. 그는 목소리도 아주 일품이었고, 독일어 통역이 너무도 거침없어서 3자 통역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의 기대보다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우리는 오스나브뤼크로 가기 위해 북쪽으로 약 4시간 이상을 달려야 했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드넓은 밀밭을 보며 유럽을 추수하기 위해 나선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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