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을 품지 말라
여보게,
세상이 정말 무서워졌지. 작금에 일어난 사건사고들을 대하자면 어디 세상 무서워서 애들 밖에 내보내겠나 싶네. 그런데 그들의 범행동기를 보면 대체로 여자에게 버림을 받은 것 때문에 분을 못 이겨서거나, 숭례문 방화범 같은 경우 국가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네. 분을 삭이지 못하고 애매한 사람에게 푼 거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 격이지.
잠언에는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라고 했네. 원문에는 ‘노함은 잔인하고 분노는 잔혹하다’라고 되어 있지. 정말 이 말씀이 딱 들어맞지 않은가. 그들의 분노가 너무 잔인하지 않던가. 그래서 성경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라고 말씀 하셨다네. 분을 내면 악한 것들이 틈타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고, 잔혹하게 만든다는 것이지. 그래서 혹 분을 내더라도 빨리 풀라고 하신 거야.
‘홧김에 뭐한다.’는 말이 있지. 분노라는 것이 앞뒤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어긋난 길로 가게 한다는 거야. 그런데 홧김에 뭐해놓고 제정신 들면 뒷감당은 어찌 하겠는가 말일세. 세상을 살다보면 화가 나는 일도 있고, 때론 삭이기 힘든 분노가 끓어오를 때도 있지. 그러나 그 노를 밖으로 분출시키지 말고,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여보게,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이 왜 동생 아벨을 죽였는가? 그것 역시 분이 가득했기 때문 아닌가. 이밖에도 하만이 왜 이스라엘 민족을 멸절할 것을 계획했는가?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무릎 꿇지 않은 것에 대해 노했기 때문(에3:5) 아니었는가. 또한 바울이 부적을 만드는 자들을 향해 권면하니 그들이 분이 가득하여 소요를 일으키고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 하지 않던가(행19:28). 이처럼 분노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하고, 잔인하게 하며, 또 자신을 자멸로 이끌게 되지.
자네가 알다시피 나도 욱하는 성질이 있었지. 그래서 젊은 시절, 사고도 쳤고, 그것 때문에 부모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의 은혜로 내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자가 되었다네. 그런데 내 아들들이 내 성격을 그대로 닮은 거야. 피는 속일 수 없다더니 안 닮아도 좋을 것까지 닮아서 가끔 나를 속 썩이지. 그러나 그들도 주님 안에서 많이 경건해졌고,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으니 이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네.
자네 혹시 화나는 일이 있걸랑,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가 그냥 소리 한 번 크게 지르고 말게. 분을 오래 품고 있어서 좋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