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기도로 흉악의 결박을 풀어라 ( 사 58:1~12 )
남북전쟁이 절정인 시점인 1863년 4월 30일, 링컨 대통령은 ‘금식의 날’을 선포하고 미국인들에게 기도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지금은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낮아져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빌어야 합니다. 이것이 미국 국민의 의무입니다.” 이날 미국인들은 하루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고, 그것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으며, 오늘날의 미국을 세우는 소중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 우리 국군이 부산까지 밀린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오늘 금식하며 기도해주십시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화급한 상황에 신자들은 금식하며 국가를 위하여 기도했고, 하나님께 상달된 이 기도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유엔군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이어져 국군이 다시 북으로 밀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왜 링컨이나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금식기도를 요청했을까요? 그들은 금식기도의 위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금식기도는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강한 것은 식욕입니다. 먹어야 살기 때문이고, 다른 욕구는 식욕이 해결된 차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식기도는 이 강력한 욕구를 제어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상달되는 힘이 큽니다. 그래서 한 시대의 믿음의 획을 그은 자들은 금식기도를 했고, 금식기도를 통하여 문제를, 재난을 해결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언제 금식기도를 했을까요? 먼저 율법에 규정된 금식은 일 년에 한 번 대속제일에 행해졌으며, 이는 통회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갱신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포로가 된 후에는 연 4회 금식이 행해졌는데,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된 10월 10일, 예루살렘이 함락된 4월, 성전이 파괴된 5월, 그리고 그달랴가 살해된 7월 2일에 금식을 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바리새인들이 주 2회 금식을 했고(눅18:12),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은 금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행13:3).
그러면 우리는 언제 금식해야 하나요? 우리에게는 금식절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금식을 폐기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근거로 그 때를 알아봅시다.
먼저는 국가적인 재난을 당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머무는 동안에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침략과 압제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라고 하고는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으나 그 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히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벧갈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쳤습니다.
이 때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는 그곳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뜻입니다(삼상7:3~12). 우리가 지금 금식해야 함은 우리 대한민국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이 야기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지혜나 힘으로, 강대국의 도움으로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없습니다. 오직 지대한 하나님의 관심, 강력한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이 나라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에벤에셀의 축복을 받으려면 믿는 자들이 금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슬픈 일을 당했을 때입니다. 다윗이 나단의 아내를 취해 얻은 아이가 병들었습니다. 죄의 대가였습니다. 그 때 다윗은 금식했습니다.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삼하12:16). 물론 그 아이는 나단의 예언대로 죽었습니다만, 다윗이 아이가 죽고 바로 일어나 여호와께 경배하고 음식을 먹은 것은 하나님이 다윗의 마음을 위로했기 때문입니다. 슬픈 일을 당했습니까? 사람의 위로가 당신의 마음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금식하세요. 하나님의 손이, 하나님의 위로가 당신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셋째, 걱정이 있을 때 금식하십시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일동안 울다가 금식하기 시작했습니다(느1:4).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일에 도와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을 수축할 수 있었습니다. 코 빠뜨리고 있어봐야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금식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권력자나 재력자, 더는 원수를 들어서도 돕게 하십니다.
넷째, 병들었을 때 금식하십시오.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시35:13). 금식하면 흉악의 결박이 풀린다고 했습니다. 흉악의 결박이 무엇입니까? 악한 마귀에서 놓임을 받는 것이니 이는 곧 병과 가난과 저주의 사슬을 끊어내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들었을 때, 돈이 없을 때 금식하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의 치료하심이, 도우심이 함께 할 것입니다.
다섯째, 능력을 받기 위해서 금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니 나머지 제자들이 벙어리 되고 귀먹은 아이를 데리고 귀신을 쫓지 못해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귀신을 내어 쫓자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지 못했는가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오늘날 귀신이 치를 떨 만큼의 능력을 가진 것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 밥 먹듯 금식하며 기도한 결과입니다.
그러면 무조건 밥만 안 먹으면 금식이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금식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하고도 이사야에게 훈계를 받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외식적인 금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식은 겸허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오락을 찾아 해도 안 되고, 일을 시켜서도 안 되고 남과 다투어서도 안 됩니다. 가끔 금식한다고 하면서 TV 드라마 다보고, 남과 대화할 것 다하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금식은 종친 겁니다. 조용히 나를 돌아보면서 죄를 자복하는 심정으로 금식해야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됩니다.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느9:1~2). 그리고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는 애통의 심정으로 해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욜2:12~13). 또한 사람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을 내서도 안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할 때면 창백하게 보이려고 얼굴에 재를 발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금식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18). 또한 공궤를 하면서 금식을 해야 합니다. 곧 사랑과 진실과 화평을 가지고 금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도 주의 일을 할 때 금식하고 했습니다. 바울도 각 교회에 자신을 위해 금식을 부탁했습니다. 저 역시 해외집회를 나가면 금식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왜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금식을 하면 우리의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우리의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하나님이 영광이 우리 뒤를 호위할 것이며, 우리가 부를 때 하나님이 ‘내가 여기 있다’ 하며, 우리의 영.혼.육이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같기 때문입니다.
내가 서 있는 땅이 기름지길 원하십니까? 금식기도 하십시오. 할렐루야!
전쟁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고
기도는 응답받고 하는 것이다
행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