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멕시코 치아파스 주 뚝술라(Tuxtla Gu-tierrez)의 성공적인 집회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다음 도시 집회를 위해 길을 재촉해야 했다. 말이 5시간이지 아마도 그 이상 걸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와 국경에 위치한 타파출라(Tapachula)에서 집회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과테말라 제2의 부호 후안(Juan)이 목사님과 우리 일행을 대접하고 싶다며 노에(Noe) 목사를 뚝술라까지 보내왔다.
우리는 거의 7시간을 달려 과테말라 말라카탄(Malacatan)에 도착하였다. 후안의 정성스런 대접을 받은 우리는 1박 후 바로 타파출라로 나왔다. 그날로 바로 집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목사님은 집회를 앞두시면 오로지 집회에만 집중하신다. 영적 전쟁을 앞두고 기도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
타파출라 집회를 배설한 이스마엘 목사는 아주 순박한 타입이었다. 호수에 목사와는 전혀 상반된 성격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
비록 그는 매우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나 메인스타디움에 집회를 준비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메리다 집회를 성공적으로 준비했던 모세 목사도 그러했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사울처럼 기골이 장대하고 용모가 수려한 인물이 아니다. 비록 얼굴이 붉고 왜소하여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것 같지만 골리앗 앞에 막대기를 들고 나간 다윗처럼 믿음의 사람을 쓰시는 분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은 오직 믿음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이스마엘 목사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다.
우리도 그의 이름을 들으며 왜 하필이면 이름이 ‘이스마엘’일까 의아했던 터였다. 이 선교사 말을 들으니 이곳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에서’, ‘이스마엘’등의 이름을 쓴다고 한다. 다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이다.
호수에 목사도 타파출라까지 찾아왔다. 이스라엘 목사와 친분도 있고 모세 목사와 함께 이번 집회를 함께 준비한 모양이었다. 첫날 집회가 시작되는데 단 뒤에는 교역자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내내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집회는 뚝술라와 다름이 없었다.
정말 이들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모하고 성령의 역사를 갈망하고 있었다. 설교를 마치고 통성으로 기도하자 역시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가 쑤나미처럼 몰려왔다. 안내위원들은 쉴 새 없이 요동하는 무리들을 단으로 끌어올렸다. 목사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목사, 호수에 목사, 노에 목사, 엑토르 전도사도 모두 나서 귀신을 쫓았다. 목사님은 카메라를 잡고 있던 라구나까지 불러올려 귀신을 쫓으라고 명령하셨다. 단상 위에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광경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세계 어느 집회에서도 볼 수 없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첫날 집회 후 식사를 위해 시내음식점에 들렀는데 변호사 알프레도(Alfredo) 가족이 식당으로 찾아와 예수를 영접하겠다고 목사님 뵙기를 청했다. 목사님은 그들을 옆자리에 앉히고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셨다. 알프레도는 가족의 인도로 집회에 참석 후, ‘생각을 바꾸라’는 목사님의 메시지에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아 도저히 그냥 집으로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날 이후 세미나와 집회에 모두 참석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우리 모두를 그의 별장으로 초대하여 성대한 만찬을 베풀어주기도 하였다.
이튿날 실업인 세미나에 참석했던 의사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통에 도저히 못살겠다며, 세미나 후 목사님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단호히 말씀하셨다.
“참아라. 그 여자는 결국 떠난다. 이제부터 생각을 바꿔라. 말을 잘해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마치 예언과도 같은 목사님의 말씀에 그녀는 아멘으로 화답하고는 돌아갔다. 그런데 저녁에 그녀는 남편을 데리고 집회에 나타났다. 집회 후 식당으로 함께 온 의사 부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로 변해있었다. 남편은 그 여자와 헤어지고 이제부터는 아내만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요1 3 : 2 0 )
아내 역시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며 남편과 헤어질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둘이 포옹하며 키스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하루 만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기적이 일어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예언처럼 적중한 셈이다.
생각을 바꾸면 기적이 일어나고 운명이 바뀐다. 그 의사 부부야말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 아닌가. 우리가 삶을 그르치는 대부분의 이유는 오래 참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목사님과 동행하며 가끔씩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힘들 것 같은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기적적으로 변화되는 사건들을 접할 때, 정말 하나님은 우리 삶을 놀랍도록 변화시키시는 분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행동해보라. 그 순간만큼은 당신의 생각을 다 접어라. 오로지 그분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실천해보라는 거다. 그리하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난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다. 당신의 삶 속에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 이상 더 큰 복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영생이 바로 그분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호수에 목사는 뚝술라와 타파출라를 안방 드나들 듯 매일 출퇴근하고 있었다.
은혜를 받긴 받아야 한다. 누가 과연 그 먼 길을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녀갈 수 있을까? 은혜가 있기에, 하나님의 복을 알기에 지칠 줄 모르고 동분서주하는 것일 게다. 한날은 저녁식사를 하는데 라구나가 자녀들의 이름으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나섰다. 어차피 매일 식사는 해야 하는데 음식대금을 누가 지불하느냐의 문제에 라구나가 선뜻 나선 것이다. 라구나는 참 복 받을 짓을 한다. 그는 세미나 때나 집회 때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심는다. 그것도 일착으로 달려 나와서 말이다.
그리고 심을 기회만 있으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녀들의 이름으로 심고 목사님께 기도를 요청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날도 그는 믿음으로 주의 종을 대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함께 식사하고 있던 호수에 목사의 말이 더욱 걸작이었다.
“아니, 오늘 식대는 내가 지불하려 했는데, 나보다 빠른 놈이 있었네?”
모두가 그 말을 듣고 박장대소했지만, 목사님은 이것이 바로 호수에 목사가 성공하는 비결이라고 말씀하셨다. 벌써 호수에 목사는 마음속에 식사대접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가 날아가 버리자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바로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목사님의 말씀이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를 서로 섬기려고 다툼하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내가 보낸 자, 곧 주의 종을 대접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인스타디움에서 진행된 타파출라 집회는 매일 한 사람씩 전도해서 데려오라는 목사님의 격려에 힘입어 기적의 현장을 목격한 타파출라 시민들이 연일 사람들을 몰고 오는 역사 속에 마지막 날에는 스타디움이 가득 차는 대역사가 나타났다.
처음에 집회를 방해하고 비협조적이었던 목회자들도 이스라엘 목사를 찾아와서는 용서를 구하며 도울 일이 없는지 묻더라는 것이다. 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전해 듣자 참으로 용기 있는 목사들이라고 말씀하셨다. 하기야 자신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고 알량한 자존심에, 교단의 위세에 눌려 그릇된 길을 가는 종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말해놓고 불순종한 큰 아들보다 처음에는 거부했다가 순종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자(마21:28~31)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정말 옳다고 믿는 일에 자신의 생각을 접고 돌이키는 자세야말로 참 용기가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