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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너를 무시한다 (대하 20:35~37)

389호 · 2007-08-08

요즘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안타깝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억류된 우리나라 선교단체에 관한 일일 겁니다. 벌써 피랍된 지 몇 주가 되었건만 탈레반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벌써 두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라건대 조속히 일의 실마리가 풀려 더 이상의 희생 없이 남은 21명 모두가 고국의 품에 돌아올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니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기도해야겠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놓고 기도하면서 저 또한 해외선교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키르기스스탄 집회 때, 저도 KGB에 끌려들어가 취조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거기서는 제가 추방을 당하는 선에서 끝났습니다만, 하마터면 저도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얼굴을 보기 어렵게 될 뻔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집회를 가기 전에 이미 여러 가지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어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일을 진행하다보니 안 치러도 될 일을 치른 것입니다.

저는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 결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큰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교훈입니다.

요즘 여름 휴가철이라 지인(知人)끼리, 가족끼리 산으로 바다로 많이 놀러갑니다. 그 때면 부모님들이 항상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무 깊은 물에 들어가지 말고, 냇물 가까이에 텐트치지 마라. 갑자기 비라도 오면 쓸려 내려갈라.” 그러면 아이들 반응이 어떻습니까? “아휴, 엄마 그만하세요. 한번만 더하면 백 번이예요.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요?” 많은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잔소리로 듣습니다.

그래서 듣기 싫어합니다. 그리고는 냇가 바로 옆에 텐트 쳐놓고 자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로 냇물이 불어나 봉변을 당하는가 하면, 수영금지 구역에 들어가다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리는 일이 근래에도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연이어 일어납니까? 경고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부모님의 마음과 똑같습니다. “얘들아. 이렇게 하면 다친다. 그러니 거기 가지 말고 여기서 놀아라.” “얘들아, 거기 가면 죽을 수 있어. 그러니 가지 말아라.”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이야.” 하고 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은 곧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하나님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경고에 또 이렇게도 반응합니다. “무슨 하나님이 매일 이렇게 하면 ‘죽어’, ‘다쳐’ 그러는 거야. 저주를 즐겨하시는 하나님 아냐?” 그러나 어느 아비가, 어느 어미가 자기 자식을 저주하겠습니까? 악한 아비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왜 그것을 저주로 받아들입니까?

저주를 막고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져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나 경고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경우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에게 하나님은 첫 경고를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 그런데 아담이 그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하와와 더불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영.혼.육이 죽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 라못을 놓고 싸움을 하려고 할 때입니다.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명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미가야만은 ‘전쟁에 나가면 왕은 죽임을 당할 것이니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합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예언을 한 적이 없는 미가야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그를 감옥에 넣고 출정합니다. 갔다 와서 보자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갔다 와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대로 전쟁터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미가야가 아합에게 개인적으로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었기에 대언한 것뿐이었습니다. “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대하18:13). 오늘 본문의 여호사밧이 아람의 손에서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아합과 공동작전을 펼치다 아합이 죽고 간신히 살아 돌아왔을 때, 선지자 예후는 여호사밧에게 경고했습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니이다”(대하19:2).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악을 행하는 아하시야와 교제함으로 인하여 그 경고가 그에게 임했습니다.

다윗과 사울이 달랐던 것은 바로 선지자의 경고를 받아들였느냐, 무시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종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살전2:13).

셋째, 하나님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입을 통해서도 경고하십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할 때, 그의 아내가 빌라도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마27:19). 그런데 빌라도는 그의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는 민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내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지금까지도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16년 전, 저는 몸이 너무 쇠약해진 고로 건강을 위해 산수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계약금을 주고 이삿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당시 제 차를 운전해주던 분과 제 동생 이시대 목사가 그 집에 이사하면 좋지 않다는 꿈을 꾸었다는 겁니다. 비록 적지 않은 계약금을 주었던 상태였지만, 저는 그들의 말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여 뒤돌아보지 않고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물론 계약금은 날렸지만, 재앙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아니, 그런 일이 있다면 하나님이 내게 직접 말씀하셨겠지. 됐다.”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또한 하나님은 동물을 통해서도 경고하십니다.

민수가 22장에 보면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가 그것을 거절했으나 돈에 마음을 뺏겨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가는데, 진노하여 칼을 빼어 들고 앞에 서있는 여호와의 사자를 본 나귀가 발람의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나귀를 때립니다. 그러자 나귀가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행한 일이 있었느냐? 나는 보는데 넌 왜 네 앞에 서있는 사자를 보지 못하느냐?”고 경고합니다.

결국 발람이 깨닫게 되어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서도 계시하십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를 취하려하자 하나님이 꿈에 말씀하십니다.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창20:3). 꿈을 꾼 아비멜렉은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고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잘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욥33:14,15).

또한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계시하십니다. 왜일까요?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경고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자가 되십시오. 나라의 법도 경고이니 법 위에 잠을 자지 맙시다. 할렐루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도둑 맞고 담장 높이지 말라

법 위에 잠자지 말라

법이 너를 보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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