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361호 목차 › 교단소식

신년사

361호 · 2007-01-24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지금의 상황을 즐기자

어제 없는 오늘은 있을 수 없고, 오늘 없는 내일도 있을 수가 없다. 같은 말로, 과거 없는 현재란 없고, 현재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오늘이라는 시간이 중요한 건 바로 거울이 되는 과거와 희망에 부풀게 만드는 미래가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의 그레이스빌 교회에 7년 만에 아기를 갖게 된 부부가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얻게 된 아기에 대한 기쁨도 잠시, 그 아기의 어미는 곧 그 아이가 기형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기절을 하고 만다. 그의 남편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고, 주님을 위해 교사와 성가대로 정말 정성을 다해 주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를 7년만에 주시면서 왜 하필 기형아를 주십니까?”

그 남편은 밤새 울부짖었다. 그리고 새벽에 마음에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내가 이 기형아기를 어느 가정에 보내야 나와 같은 마음으로 보살피고 사랑으로 잘 자라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너희의 믿음과 사랑을 보고 너희 부부를 선택하게 되었단다.”

이 말씀을 들은 믿음의 남편은 곧바로 아내에게 달려가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 부부를 사랑해주시고 신뢰해주시니 감사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 오히려 기쁨으로 더욱 잘 키웁시다.”

이 부부가 믿음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니, 간호사들도 함께 은혜의 눈물을 훔쳤다.

아기가 없어 힘겨워했던 시간에도 불평과 원망 하나 없었던 이 부부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안에 있음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현실 가운데 마주한 모든 상황을 감사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신앙의 절정인 ‘감사’의 모습은 구약성경 창세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바로 꿈의 사람 요셉이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팔리어 보디발의 가정노예로 전락한다. 그뿐 아니다. 수준 낮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는 노예의 신분에서 더 나아가 출옥이 보장되지 않은 죄수의 수준으로 끌어내려간다. 그러나 그는 전혀 불평하지 아니하였고 오직 감사하였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이다.(창37:5~11)

바울이 옥중에서 죄수의 신분으로도 감사와 찬양을 읊조릴 수 있었던 것 또한, 나보다 큰 상황이 아닌 상황보다 훨씬 큰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주어진 사명에 오직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 앞의 상황을 기쁘게 즐길 수 있었다.(행16:16~34)

우리 모두에게는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주님의 귀한 사명이 주어져 있다.

그 사명을 붙드는 자는 마치 추운 눈밭위에서 즐겁게 스키를 타듯 상황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스키는 세워두면 그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직 타는 순간에만 그 가치를 더한다. 현실과 상황이라는 차가운 눈밭위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비결, 그것은 바로 사명이라는 스키를 타는 것이다. 그 자는 상황자체만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부여된 꿈과 비전을 보지 못하고 추위 가운데 덜덜 떨며 원망을 내뱉는 사람이다.

상황만을 집중하며 남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하는 자(민13:25~33)에게는 내일이 없다. 미래가 없다. 상황을 즐기며 기쁨을 누리는 인생의 맛은 더더욱 알 수가 없다. 참 인생의 맛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고 이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될 때에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요셉이 바로 이 맛을 보았다. 스키를 타듯 활강하면서 고난의 어두운 터널을 멋지게 통과하였고, 애굽의 재상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였다(창45:1~15).

아브라함도 이 맛을 보았던 자이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믿고 또 바라보았기에 25년간의 기나긴 세월의 모진 상황을 즐거움으로 견디었다(롬4:17~25).

상황은 언제나 유동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시며 그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도 언제나 한결같으시다. 그 한결같으신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다. 집안 상황은 시기와 여건에 따라 변할 수 있어도,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는 절대부동이다.

그럼에도 좋고 나쁜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이유는 그 상황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내 초점이 벗어나버렸기 때문이다. 10명의 정탐꾼은 상황을 보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 분이 세우신 언약을 보았다.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우리도 아버지를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분의 선하신 계획안에 있는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시선만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오르지 못할 산과 뛰어 넘지 못할 벽은 없을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우리가 처한 눈앞의 상황을 즐기자.

화장을 완성시켜 놓은 신부보다는 예뻐지기 위해 화장하는 모습에 더 깊은 애정이 가는 것처럼, 금은보화로 치장한 여인의 모습보다는 돌아앉아서 사랑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의 모습이 더 성스러운 법이다. 고난과 아픔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그것을 통과하여 산전수전의 노련미를 겸비한 사람이 깊이 우려낸 곰국의 국물처럼 언어와 생각에서 인생의 찐한 맛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2006년이 아픔의 시간 가운데 있었다면 2007년은 그 고난이 만들어낸 찐한 육수의 풍미를 마음껏 살리는 맛깔 나는 한 해로 만들어보자.

당신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나보다 크고 어두운 상황인가? 아니면 큰 상황보다 무한히 큰 우리의 주님이신가!

믿음으로 고난을 뛰어넘은 자만이 할 수 있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상황은 절대 믿음의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한다. 오히려 악역처럼 주인공의 믿음과 능력의 하나님을 더욱 드러낼 뿐…

부산 예수중심교회 담임 이구원 목사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입니다

금년은 우리 교단이 재도약하는 원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성경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의 현장을 목도하면서 믿음을 키워 왔으니 이젠 마귀가 쳐 놓은 장벽을 돌파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자녀임을 만인 앞에 드러낼 절호의 기회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자.”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땐 포기는 자살 행위라는 질타의 말씀이, 장애물 앞에 주저앉아 절망의 눈물을 흘릴 땐 장애물은 넘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격려의 말씀이 우리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이 이상 더 전진할 수 없다고 할 때 “주님이 죽었냐? 한계는 스스로 긋는 것이지, 본질상 한계는 없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심어준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뜻을 정하셨습니까?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보기로 결단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늘 그렇듯 그것은 기도를 쉬어버리는 우리의 나약한 의지 때문입니다.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끄떡없는, 반석 위에 집을 짓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실행에 옮기십시오. 그 실행의 단초는 물론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직접 사역하실 때 가장 가까이서 기적의 현장을 목도한 사도들도 기도가 부족할 땐 간질병환자 앞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여 지상에 계시지 않음에도 성령을 받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땐 기적을 일으키면서 육체의 고난 앞에서도 담대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의 삶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사도행전의 분명한 메시지는 예수님 같은 기도의 삶을 살지 않고는 예수님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늘상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부족은 기도의 부족입니다. 아무리 우리 앞에 많은 복이 놓여있다 하더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주변만 맴돌며 남의 간증만 부러워하는 ‘허다한 무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각자의 목표를 하나님 앞에 아뢰는 첫날 그 기도는 이미 상달되었습니다. 벌써 주의 천사들이 응답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21일이 걸릴지 아니면 더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천사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응답이 우리 손에 쥐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아멘으로 먹고, 하나님 주신 선물은 무릎으로 받습니다. 금년에는 더욱 기도에 힘써서 기적을 체험하고 연말에 간증들을 쏟아내시길 바랍니다.

광주예수중심교회 최경건 목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앙의 경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부터 신앙의 바통을 이어받아 거룩한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서 신앙의 바통을 떨어뜨린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에게 그 신앙의 바통이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본 믿음의 선친들을 통해서 신앙의 바통을 이어가셨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신앙의 바통을 이어받아 동시대의 사람들과 자손들에게 건네주어야 할 의무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교회는 송구영신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목표를 제시합니다. 이러한 목표를 교회가 제시하는 이유는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자리 잡아야 함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교단도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자’라는 표어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2007년 새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해서 2007년을 웃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바랄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구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단순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당장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동산 가격 폭등, 로또복권 당첨 등을 염원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랐으니까 하나님은 무조건 주시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인격이 아닌 자판기로 생각해서 돈만 넣으면, 다른 표현으로 기도만 하면 무조건 다 들어주신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3)” 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정말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는 겸손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함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삶(롬14:8)”입니다. 우리가 물질, 명예, 권력 등을 추구하는 것도 ‘온전히 주를 위해서’라는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저의 짧은 목회 생활을 되돌아보면,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았을 때 평안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7년 전 아산교회 성전 건축을 할 때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힘을 주시고 이끄셨습니다. 그때 나의 모습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는’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신앙의 바통은 지금 여러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2007년 신앙의 바통을 들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아산 예수중심교회 담임 박인덕 목사

우리에게 준비된 축복을 받아 누립시다

할렐루야!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이루기를 원하는 2007년에 성도님들께 새해 인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단에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예루살렘 교단 성도들아,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라. 내가 다 이루어 주리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교단을 사랑하시면 총회장 목사님을 통하여 이런 확실한 신년 메시지를 주셨겠습니까?

우리는 1차 선택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2차 선택도 받았습니다. 그 많은 교회 중에 예수중심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남들보다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우리에게는 사도이신 총회장 목사님께서 계십니다.

병아리가 어미닭을 졸졸 좇아다니면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없는 것처럼, 우리도 총회장 목사님만 졸졸 좇아다니면 여호와 이레의 준비된 축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항상 좋은 것만을 주신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총회장 목사님께서 송구영신 예배를 통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며 이루는 10가지 실천사항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진실된 자가 되어라. 2. 믿음의 분량을 초월할 수 없다. 3. 생각을 바꿔라. 4. 있는 그대로 보지 말고 성공의 모습으로 보아라. 5.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6.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7. 어려울 때 불평하지 말고 감사만 하라. 8. 하나님을 시인하라. 9. 강하고 담대하라. 10. 기본에 충실하라.

그리고 우리들의 어버이로 총회장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실천해야 성공할 수 있단다. 나는 너희가 다 성공하길 바란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이주도야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라고 물으시면, “네. 저는 첫째, 안산 예수중심교회 6월 23일 500명 총동원과 12월 23일 1,000명 집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둘째, 안산 중국예수중심교회 2월 18일 중국인 1,500명 집회와 9월 25일 중국인 3,000명 집회를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주저 없이 답할 것입니다.

2007년 정산 때, 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셨다고 간증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 안산교회 전도사님들과 제직 여러분과 성도님들에게 또 중국교회 전도사님들과 집사님들,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중국 현지 전도사님들과 일꾼들, 그리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성도님들의 엄청난 간증, 아름다운 간증도 제게 들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루살렘교단 성도님들이여!

2007년도 우리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시다. 아멘 예수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나이다(빌 4:13).

안산 중국 예수중심 교회 담임 이주도 목사

361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붕우칼럼
나눔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