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방법대로 가자 ( 왕상18:20~40 )
같은 아파트에 또래의 엄마 둘이 있었습니다. 두 엄마는 아이들 문제로 이것저것 서로 의논을 나누며 친자매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꼭 하나 의기투합이 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간식거리였습니다. 한 엄마는 ‘그래도 요새 아이들인데 피자도 먹여주고, 스파게티도 먹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엄마는 늘 아이들에게 고구마나 감자를 삶아주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상대 엄마로부터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는 자신의 방법을 고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졌으면 어때? 우리 아이들이 건강할 수 있다면야.”
이따금 저도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는 분인데, 목사님의 목회를 보면 좀 시대에 뒤떨어지신 게 아닌가 염려스럽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허허 웃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고, 그 방법대로 가야 우리 성도들이 바로 자라니 제가 어쩌겠습니까?”
저는 세상 방법은 모릅니다. 아니 모르기도 작정했습니다. 주님이 “이거다”하시면 저는 그것 외에는 아예 생각조차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소리를 듣나 봅니다. 사람들은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거꾸로 해서는 절대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가야 갈 수 있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기도입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관원들이 왕을 움직여 다니엘을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물론 다니엘도 자기를 해하려는 관원들의 속내를 알고 있었지만 다니엘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모든 것으로 통하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건짐을 받음으로써 자신을 해하려던 자 앞에서 더욱 높아지게 됩니다. 아벳느고, 사드락, 메삭도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꾀나 생각으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들을 건지시고 만민 위에 높이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사람의 방법의 결말에 대해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에스더서입니다. 하만은 에스더의 사촌 오라비인 모르드개가 마땅치 않자 그것을 빌미로 모든 유대인을 죽이려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이를 알게 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에스더가 금식기도를 한 후에 왕에게 나아가는데, 왕이 에스더를 보고는 아름다움에 취하여 금홀을 내밀고는 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이스라엘 민족이 진멸될 위급한 상황에 있으니 구해달라고 간언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도면밀하게 이 일을 꾀한 하만은 자신이 준비해둔 나무에 매달렸을 뿐 아니라 그의 열 아들도 같은 신세가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들은 슬픔과 애통에서 벗어나 평안함을 찾았습니다. 사람의 방법이 멋지게 보일 수 있고, 지름길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멋지게 보이고 지름길이면 뭣 한답니까? 그 끝이 벼랑인 걸요. 반면 하나님의 방법은 더디게 보이고, 무모한 것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곱 바퀴 돌고 소리 지르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지팡이를 내밀면 홍해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저는 한국의 교단들로부터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핍박과 모함,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과 맞대응하고 싶었습니다. “신문사를 차려 대응할까?”, “매스컴을 통해 해명을 해볼까?” 또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찬 저를 옆에서도 부추겼습니다.
“목사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의외의 말씀을 제게 주셨습니다. “네가 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느냐? 너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제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은 너무도 달랐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그래서 저는 제 방법을 접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좇았더니 하나님이 원수의 목전에서 저를 높이셨고, 제 잔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자입니다. 바다나 고기잡이에 관해서 그는 한마디로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시몬 곧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고 했습니다. 사람의 수고와 경험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며, 그 방법대로 해야 우리 인생에 만선이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3). 사도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배운 것이 많은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그동안 배운 지식이나 말로 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제 어머니께 많은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지금도 가슴 한편이 시린 일은 어머니 환갑 때 부흥회에 나간 일입니다. 다들 “장남이 어머니 환갑 때 집에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사실 그 때 제 마음도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저는 말씀에 순종해서 어머니를 뒤로 하고 부흥회를 떠났습니다. 그 날 하나님의 역사는 실로 놀랍도록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구원의 역사를 펼치실 때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셨음을 아십니까?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는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18:21). 이제 제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사람의 방법을 좇으실 겁니까? 아니면 더딜지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을 좇겠습니까?”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요,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방법대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바알의 자녀, 즉 세상을 믿는다면 세상의 방법을 좇아가십시오. 악한 것들은 편하고 쉽고, 넓은 길로 당신을 유혹하고 미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점점 미끄러져 내려감을 잊지 마세요. 또 기도와 말씀이라는 레일에 선 삶은 순탄하나 그 레일을 이탈한 삶은 전복됨도 아울러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방법을 좇는 우리가 미련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길이 옳은 길이요, 영생하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할렐루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만 따라가리라
레일을 이탈한 기차는 전복될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