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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360호 · 2007-01-19

미래는 상상력과 의욕의 산물입니다

누구나 꿈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장래 내가 이렇게 되었으면, 내가 이런 일을 해보았으면 하고 머릿속에서 상상해 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것들이 꿈(상상력)에 의해 현실로 나타나 있는 것들입니다. 꿈이 없다면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두 가지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랍 에미리트 연합 두바이에는 자원이라고는 석유밖에 없었습니다. 이곳의 지도자인 세이크 모하메드는 아버지와 함께 석유가 나기 시작한 40년 전부터 새로운 두바이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석유로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어차피 기름은 언젠가 고갈될 자원, 그 때를 대비해 석유로 번 돈으로 ‘석유 없이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세이크 모하메드가 상상하고 계획한 두바이의 미래상은 무덥고 척박한 땅에 관광단지를 만들기 위해선 무조건 세계 최대, 세계 최고, 세계 최첨단이었습니다. 이는 일반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유일의 칠성급 호텔, 바닷가에 짓는 4개의 인공섬, 세계 최고층(160층)건물, 바다 속 3층짜리 호텔, 수족관, 최대의 쇼핑몰과 경사길이만 400m되는 스키장 건설, 스키는 추운 나라에게만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뜨거운 사막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상상을 했고, 그것이 결국 세계적 명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막 가운데 건설 중인 두바이랜드, 피라미드, 만리장성 등의 세계적 건축물들의 재현.

2016년 두바이 랜드가 완공되면 연간 7,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고 합니다. 석유가 고갈되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지도자의 상상력과 의욕에 힘입어 일개 어촌 마을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변한 것입니다.

2001년 인공섬 발표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요, 허무맹랑하다고 비웃었지만 지금은 세계 부호들의 투자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두바이 자체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그 중에도 최고 지도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불타는 의욕이 없었다면 오늘의 두바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91세인 호주의 스튜어트 할아버지는 올해 여름 호주 뉴잉글랜드 대학교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는 1936년 시드니 대학교 치과대를 졸업한 지 70년 만에 받은 그의 두 번째 졸업장입니다. 65세까지 치과의사로 일하다 은퇴를 했지만, 그는 말하길 “은퇴를 일몰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은퇴란 일하는 시간이 줄고 쉬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시점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은퇴 후에도 병원에 나가 장애인, 저소득층 등 보험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동네 골프 클럽 이사회 멤버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55세 먹은 아들이 나이 들어 학위를 따는 것을 보고 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가 91세로 이번 여름에 졸업장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저소득층을 위해 법률상담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라. 그러면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만들면서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제 늙어서 할 수 없어, 못해, 힘이 없어서, 배우지 못해서’ 라고 말하지 마세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입니다. 젊어도 의욕이 없으면 노인이요, 노인도 의욕과 패기가 있으면 젊은이인 것입니다.

상상력과 의욕이 없다면 두바이라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지상낙원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상상력과 의욕을 가지고 바랄 수 없는 작품을 남겼는데, 우리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스스로 한계를 그어선 안 됩니다. 상상력의 전원을 끄면 미래는 캄캄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입을 크게 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채우시는 분입니다. 닫힌 입에는 채울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시다. 2007년도에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천 예수중심교회 담임 강반석 목사

계획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송구영신예배를 통하여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2007년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자”고 교단의 목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랄 것인가? 사람의 힘과 능으로, 지식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다면,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끈기 있게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두 망각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바라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마땅히 준비해야 할 것을 찾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느2:6~8).

바랄 수 없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왕 앞에 나갈 때 철저한 계획 하에 나갔습니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그의 계획을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기 원하며 언제 하기를 원하며,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리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왕에게 상세히 대답했습니다. 느헤미야는 4개월 동안 준비하고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한 지 잘 알았습니다.

지난 주, 우리는 총회장 목사님의 영상예배를 드리면서,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올해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자고 했는데,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으셨을 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벽이나 문설주에 문구를 써놓아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목표가 없는 것은 방향이 없는 배와 같아 표류하기에 적합합니다. 계획하고, 목표를 세워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도 바디매오에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셨지 않습니까?

바랄 수 없는 것을 성취하기를 원하면 끊임없이 기도하며 준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회를 알아보고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철저하게 계획하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바랄 수 없는 것을 성취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명심하세요. 계획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이기수 목사

영적인 삶을 돌아보는 해가 됩시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누구나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똑같은 시간의 흐름이며 지난해와 새해 사이에는 어떤 변화나 차이가 생기지도 않는데,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이 지난해를 돌이켜 보고 새해에 새로운 각오와 꿈을 갖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창세기 1장 14절에 하나님은 해와 달의 두 광명을 하늘에 두어 주야를 나누시고, 이로 인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에게 시계를 주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하시고 또한 지금의 때를 알게 해주고, 어떤 시간의 시작과 끝을 알려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진행되어 가는데,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은 그 진행 상황을 잘 알아서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루라고 하는 시간 속에 낮과 밤이 변하는 것, 그리고 한 해가 끝나고 새로 시작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과정 과정이 끝나고 새로 시작됨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으로, 이 시기에 온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고 이 변화로 인하여 우리에게도 변화가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하시며(전3:1), 믿는 자들로 하여금 때와 시기를 분별하라고 명령하십니다(마16:3,24:32). 그리고 마지막 때에 세상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마24:37~43).

지난해에 삶을 돌이켜 보고, 새로운 한 해를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해의 인간적인 삶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해의 끝과 시작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삶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각자 각자에게 종말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죽음이 되었든지 주님의 재림이 되었든지 새로운 세상과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007년 새해를 맞이하시는 성도 여러분! 때와 시기를 잘 분별하고 깨어 기도하며(롬13:11~14, 엡5:15~18), 주님 맞을 준비하셔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때 심판의 자리에 남지 말고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영광된 삶을 맞이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날 같은 상에 앉아 같이 기쁨을 누립시다. 지금처럼요.

박진수 목사

의욕과 열정은 기대감에서 비롯됩니다

TV 광고 중에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모습이 나오다가 갑자기 칭기즈칸이 양치기 모습으로 바뀌면서 나오는 멘트가 있습니다.

“칭기즈칸도 열정이 없었으면 양치기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열정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기대감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그 기대감이 일개 양치기 소년을 전무후무한 역사의 정복자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할 때가 언제입니까? 응답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밤을 새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홍해 앞바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을 때, 그가 남들과 같이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분명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구덩이에 빠지고 노예로 팔려가고 오해를 받아 옥에 갇혀있어도 모든 자리에서 열정을 가지고 삶에 최선을 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꿈을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또한 골리앗 앞에서 담대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신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아무런 무기 없이 오직 돌멩이 다섯 개와 지팡이만을 가지고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비롯한 이스라엘 병사들은 수많은 무기와 또한 군사가 있음에도, 더 나아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승리라는 기대감을 갖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기대하지 못했기에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기대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면 응답은커녕 하나님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과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한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담대히 무슨 일이든지 행동하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올 한 해 총회장 목사님을 통하여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자”라는 분명한 목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그냥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스스로 분명하게 목표를 정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기대감을 꼭 가지고 열정적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올해 바랄 수 없는 것을 꼭 이루실 것입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받고 인터뷰를 하는 내용 중에 “연습을 하다보면 너무 힘이 들어서 달리는 중에 트럭이 달려오면 그 차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금메달이라는 기대감이 저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기대감이 있었기에 많은 어려움과 고통 중에서도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다워야 합니다. 분명한 믿음을 가지시고 저 천국을 향하여, 예수님처럼,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총회장 목사님처럼, 우리의 삶속에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며 2007년에는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영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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