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크게 갖되 기본에 충실하라 ( 시78:70~72 )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는 세계적으로 하루에 매장이 5군데씩 늘어난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알고는 크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일반 사업매장도 그렇게 번성하는데, 하나님의 사업이 저조해서야…” 그래서 올해 저는 더욱 많은 교회를 전 세계에 세우려고 합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해인 2007년을 기점으로 한 달에 최소한 하나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 목표를 세웠더니 올해 들어 벌써 캐나다를 비롯해 세군데 교회를 세웠지 뭡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삼은 것입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2:8).
풍선을 크게 불었는데 끈을 붙잡지 않는다면 그냥 날아가 버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랄 수 없는 원대한 꿈을 꾸고 소망을 갖는 일에 근간(根幹)이 없다면 그 꿈은 날아가 버릴 망상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 근간, 뿌리며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도록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볼까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21:2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소망했던 것은 대를 이을 아들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그냥 ‘아들이 있었으면…’ 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탕으로 불가능한 일을 간구한 것입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4:21).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올해 하나님의 말씀을 단단히 붙잡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이루어 봅시다.
앞에서 저는 한 달에 교회 하나를 세우고자는 바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의 일이니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바라던 일이 저절로 이루어질까요? 마치 감나무 밑에 돗자리 깔고 누워있으면 감이 제 입으로 알아서 쏙 들어오겠느냐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물론 일을 성취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만 그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3). 즉 ‘꿈은 크게 갖지만 현실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현재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외국집회를 다니는 이유도, 여름이면 세계 목회자들을 불러들여 교육을 시키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또한 틈틈이 지교회를 돌보고 우리 성도들을 살피는 이유 역시 현재에 성실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를 품으려면, 열국을 얻으려면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을 펼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개 양치기에 불과했던 다윗이 사울의 바통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성실함을 보시고 그를 왕으로 삼으셨고, 그의 혈통을 통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다윗은 양을 칠 때처럼 왕이 되어서도 언제나 자기의 일에 성실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시7:8).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였습니다. 그가 포로 신분으로 느브갓네살 왕부터 바사의 고레스 왕까지 정부의 고위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가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절개로 인해 하나님의 은총이 각별하기도 했지만, 그가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활전반에 걸쳐 그의 성실함이 기반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6:4). 꿈이 크다고 붕붕 날아다닐 수는 없습니다. 발을 땅에 딛고 살아야 합니다. 기초 없이 높은 건물이 오를 수 있습니까? 기초가 튼튼해야 높이 오를 수 있음이 자명합니다.
한 어머니가 아들을 보석 가공하는 곳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 어머니는 담당자에게 노임을 주지 않아도 좋으니 아들에게 보석에 대한 기본지식과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은 거기서 온갖 고생과 노력을 하면서 기본을 익히는데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기본을 바탕으로 보석공예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대학에서 그를 정교수로 모셔갔습니다. 그의 학력은 겨우 중학교 중퇴인데 말입니다. 그가 저학력으로 바랄 수 없는 대학 교수자리에 오른 것은 바로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목표를 세웠다면 일어나 뛰어야 합니다. 수영을 하려면 일단 물속으로 뛰어 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되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말씀을 붙잡고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현실에 충실했는데도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원인을 알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풀리게 되어 있지요. 그 원인을 찾아볼까요?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2,3).
방법이 옳아도 용도가 틀리면 하나님은 이루어주실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잘못될 줄 알면서도 아이가 조른다고 무조건 다해주고 다주는 부모는 무책임한 부모요, 잘못된 부모입니다. 제가 제 이름이나 높이자고 세계를 유업으로 달라고 한다면 아무리 구해도 절대 하나님은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분명히 저는 교만해질 것이고, 교만은 곧 패망의 선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탈출시키는 목적으로 구하고 바랄 때,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일을 제게 이루어주실 뿐만 아니라 제게 덤으로 명성까지 덧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위해 구하면 하나님은 절대 주실 수 없습니다. 잘못되는 줄 뻔히 아시니까요.
당신은 올해 인간의 생각이나 방법으로는 도저히 바랄 수 없지만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나나 아브라함처럼 자식입니까? 아니면 에스더처럼 국가적인 차원의 일입니까? 룻처럼 반려자의 일입니까? 어떤 것이든 구하세요. 남들이 당신에게 “제 정신이냐?”고 공박해도 상관하지 말고 구하십시오. 그러나 무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제시하면서 구하세요. “하나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는 말씀을 근거로 구합니다.
제가 주님 안에 있으니 제가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과 아울러 현재에 충실해야 함을 잊지 마세요. 느헤미야가 일을 하며 한 손에 병기를 잡은 것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노력하고 성실히 임해야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당신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고로 당신의 성실함이 거대한 꿈을 이루는데 굳건한 지지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할 때 비로소 만개할 것입니다.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시10:3).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이루고 싶습니까? 꿈은 크게 갖되 기본, 곧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준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스스로 한계를 긋지 말라
하늘의 별만 쫓는 사람은 지푸라기에도 걸려 넘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