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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호 목차 › 교단소식

신년사

359호 · 2007-01-10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기 전에 우리들 마음속에 소원을 갖게 하십니다(빌2:13). 그 소원을 갖고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애굽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주실 때가 되니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선택해서 보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송구영신예배 때 총회장 목사님의 메시지를 통하여 2007년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들었습니다. 올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바랄 수 없는 것을 기도하게 하여 사람이 바랄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주기 원하심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올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홍해를 가르기도 하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게도 하시고, 마른 막대기에도 하루 밤 사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도 하시고, 태양을 하루 종일 머무르게도 하시고, 3년 6개월 동안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게도 하시고, 천사 하나 보내어 18만이 넘는 적도 몰살시키기도 하시고, 불 가운데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시는 등 셀 수 없이 기이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각색 병든 자들 - 중풍병자, 소경, 간질, 문둥병, 앉은뱅이, 열병, 혈루증, 벙어리 등 - 을 고치시고 수없는 기사와 표적 -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물위를 걸으심, 오병이어의 기적, 죽은 자를 살리심 등 - 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오셔서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에 말이 안 되는 일이라도 구하십시오. 남에게 말하면 “너 정신 나갔냐?”고 할 것 같더라도 구하십시오. 환경이나 사람을 현실대로 보지 마시고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보고 뿌리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으로 보고 뿌리십시오. 야곱처럼 얼룩덜룩하게 그림을 그리십시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뭍 별들을 바라보며 “내 아들들아” 하십시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 하더라도 아브라함처럼 절대 믿음이 연약해지거나 부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임을 끝까지 믿으십시오.

하나님께는 100만원 주시기나 100억 주시기나 동일하십니다. 주실 것이냐 아니 주실 것이냐가 중요하신 것이지 금액의 크기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감기나 암이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고쳐줄 것이냐 안 고쳐줄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병의 종류와는 상관없습니다. 여리고성이냐 아이성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기게 해주실 것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합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부르짖으며 열심을 다해 좇아 가십시오.

엘리사는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구했습니다. ‘네가 참 어려운 것을 구했다’고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더니, ‘하나님이 나를 취하는 것을 보면 받으리라’는 엘리야의 말대로 결국 갑절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포기는 자살 행위다” 이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정말 포기하면 어쩔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지만 당신이 포기해 버리면 어쩔수 없이 못하시게 됩니다. 2007년, 예감이 참 좋습니다. 잘 나갈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 적극적이고 활기에 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것을 구해보세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보세요. 남들이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남들이 비웃어도 관여하지 말고 이루고 싶은 소망을 구하세요. 그리고 끝까지 포기만 하지 마세요. 반드시 구한대로 받아 크게 쓰임 받는 복된 한 해가 되고야 말 것입니다.

올해는 예루살렘의 해입니다. 바로 우리의 해입니다. 바로 당신의 해입니다.

서울교회 담임 이시대 목사

꿈꾸는 일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한 달리기 선수가 클리블랜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이 강당 안에 미래의 올림픽 챔피언이 있을지 누가 압니까?”

연설이 끝났을 때 비쩍 마르고 껑충한 한 흑인 아이가 어슬렁거리며 그에게 다가와 수줍은 듯 말했습니다.

“최고의 달리기 선수가 될 수만 있다면 저는 제 모든 것을 바치겠어요.”

연사는 그에게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1936년 뮌헨 올림픽에서 세계기록을 갱신한 제시 오웬스입니다.

꿈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제시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열렬히 환영하는 인파 중에서 해리슨 달라드라는 흑인 소년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까요?”

제시는 옛날을 생각하며 그 소년의 손을 부여잡고 말했습니다.

“얘야, 꿈을 크게 가져라. 그리고 네 꿈을 위해 너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라.”

그 소년도 그 꿈을 향해 달려갔고, 1948년에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면, 꿈꾸는 사람에게 기회를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형통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절묘한 기회와 우리의 성실한 준비가 만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신령한 화학반응인 것입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백열등을 발명하기 위하여 1만 4천 번도 넘는 실패를 반복했으며, 베이브 루스는 야구사상 가장 많은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고, 월트 디즈니는 성공이 그에게 웃음을 보내기까지 일곱 번이나 파산했으며, 신경쇠약에 걸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위대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는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않고 꿈을 이루는 징검다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고, 꿈꾸는 대로 그의 미래가 이루어집니다.

“모든 인간은 성공을 성취하기 위해 살도록 만들어졌으며, 성공할 수 있는 능력도 주어졌으며, 승자가 될 위대한 자질을 갖고 태어났다.”고 나는 믿습니다. 특히 하나님께 선택되어 사랑받고 보호받는 ‘우리 모두’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강하시고,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고 또한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에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렇다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꿈꾸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기류 목사

내 삶을 소중히 여김부터 시작합시다!

네 잎 클로버 잎사귀를 말려 코팅한 것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동안 책갈피로 썼는데 지금은 어느 책장 속에 꽂혀있을 것입니다. 당신도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네 잎 클로버 찾는답시고 세 잎 클로버 풀밭을 온통 뭉개고 다니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정작 당신이 짓밟았던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주신 선물이 행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님이 오셔서 처음으로 가르치신 말씀도 어떤 자가 행복한 자인가에 대한 것입니다(마5). 행복을 먼데서 찾으면 안 됩니다. 우리 삶에서 가까운 곳,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신 분복에서 행복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 가정, 내 교회, 내 형제, 내 이웃, 내 직장, 그리고 내 마음이 바로 행복의 원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생애를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시78:70~72). 다윗은 8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형들이 다 있었지만 막내 다윗이 홀로 들판에서 곰, 사자와 싸우며 아비의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그를 불러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다윗은 양치기로 있을 때도 그 일에 성실했을 뿐만 아니라,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도 거드름 피지 않고 아비의 심부름에도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다음에도 그는 성실함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백성들에게 사랑 받는 왕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 여정중 장기적으로 이루어야 할 비전을 품어야 하는가 하면 지금 여기서 해야할 일, 즉 현실을 안고 있습니다. 현실을 저버리거나 무시하면 꿈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이 되고 말 것입니다.

롱펠로우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산 넘어 행복이 있다기에 산 넘어 갔더니, 행복은 또 산 넘어 있다더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행복은 지금 내게 주신 삶을 소중히 여기고 성실히 임하면서 꿈을 향하여 나아갈 때 바로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꿈으로 가졌다면 지금부터 당장 한 걸음 내 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아봅시다.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고 세 잎클로버를 밟지 마세요. 세 잎 클로버가 네 잎 클로버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갖지 못한 것에 쏠린 욕심 때문이니…

서혁주 목사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한강의 기적”

세계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장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민족상잔으로 폐허된 땅에서 몇 십 년 만에 경제의 꽃을 만개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과연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누군가의 도움이 있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는 압니다. 성장의 원천은 하나님의 축복에 있습니다.

1885년, 이 땅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면서 기독교의 성장과 함께한 하나님의 축복은 세계 252개국 중에서 11위의 경제 성장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130개국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배우기 위해 견학과 연수를 받으러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축복의 현상만을 통해 겉모습만 닮아 보려는 노력을 할뿐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과 미래를 만들어 가는 현실에 충실한 삶이 오늘날 세계 속의 한국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2007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라!”는 준엄한 주님의 목소리를 목사님을 통하여 들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다른 종교와 차이가 있다면 강단의 말씀을 하나님의 목소리로 듣고 믿음으로 행동을 옮기는 자에게 바라는 바가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의 조건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즉 현상과 논리는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결론임에도 불구하고,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바라는 바를 하나님이라면 능히 이루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 하시게 하는 자는 반드시 신년 슬로건 말씀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5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 가셔서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는 하인을 둔 백부장을 만났을 때, 그 하인의 치유를 위해 직접 가셔서 고쳐주려 하셨으나 백부장은 하인을 볼 수도 안수할 수도 없는 그곳에서 말씀만 하셔도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지금 주님은 바로 이런 백부장의 믿음을 가진 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길 “내가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길 원하십니다.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 19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한 2007년 우리는 다시 부흥의 파도를 갈망하며 성령이 일하시는 절정의 시간을 만들어 가야합니다. 요셉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보디발의 모든 소유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였듯(창39:5), 하나님을 향한 혼신의 뜨거운 사랑을 가졌던 믿음의 사람들로 인한 이 땅의 축복을 다시 한 번 기대한다면, 바로 나 자신이 축복과 부흥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때,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믿음의 그릇에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히 채워질 것입니다. 모두가 이 믿음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성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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