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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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께 꾸어드리세요 ( 마 25:31~46 )

355호 · 2006-12-13

원종수 권사가 학생 때의 일입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늘 새벽예배를 드리러 다녔는데,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는데, 남루한 할아버지 한 분이 길에서 추워 떨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원 권사에게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가자.”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물을 데운 원종수 권사의 어머니는 그에게 할아버지를 씻기라고 했습니다. 그는 때가 딱지처럼 앉은 할아버지를 씻겼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그의 내복마저 가져오라고 하고는 그것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원종수 권사는 툴툴 거렸습니다. 자기도 아끼는 새 내복을 할아버지에게 내어준 것이 못내 속상해서였습니다. 더구나 어머니가 밥을 지어 할아버지에게 드렸는데, 글쎄 그 할아버지가 그 밥을 다 먹어치워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자기네 식구들은 먹을 것도 없이 말입니다.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했던 원종수 권사는 그 할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서 아르바이트로 첫 봉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쁜 그는 그 돈을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버스 터미널 구석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애써 그를 외면했습니다. “버스야, 빨리 떠나라.” 그런데 왜 그렇게 버스는 안 떠나는 것인지, 그는 마음이 불편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차라리 주고 말자.” 그래서 그는 버스에서 내려 처음 받은 그 봉급을 통째로 그 할머니에게 주고 버스에 올라 앉아 속상해 울어버렸습니다.

그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는 미국에서 일이 너무 수월하게 잘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했다고 저를 이렇게 까지 도와주십니까?” 그랬더니 환상이 보이는데 어릴 때 자기가 씻겨주고 내복을 주었던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그것이 나였다(That was me.)”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다시 환상이 보이는데 버스 터미널에 앉았던 그 할머니였습니다. “그것도 나였다(That was me, too.)”라는 음성과 함께요. 원종수 권사는 너무 놀랐습니다. 솔직히 기쁜 마음으로 한 것도 아닌데 그 분이 주님이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말구유에 누우신 것은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심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시고, 그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톨스톨이가 쓴 단편 중에 “사랑이 있는 곳에 신(神)도 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마르틴 아브제이치라는 구두장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죽은 후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한 친구의 추천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다시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주님이 “내일 내가 너에게 찾아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제이치는 다음 날 하루 종일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주님이 오실까하여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니 눈을 치우던 병사가 너무 추워 보여 그를 데려다 따뜻한 차를 먹였습니다. 점심이 다 되도록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여인이 아이를 안고 떨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여인을 집으로 데려와 먹을 것을 주고 자기의 낡은 외투를 입혀 보냈습니다. 그는 주님이 행여 오실까봐 밖에 나와 있었는데, 한 아이가 사과 파는 할머니에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이 아이가 너무 배가 고파 사과를 훔치다 할머니에게 들킨 것입니다. 그는 할머니에게 간청하여 아이를 돌려보내고는 할머니의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다 되도록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건 꿈이야.” 하고는 성경을 펴서 읽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제이치야, 고맙다. 오늘 세 번 너희 집에 찾아갔는데 너무 대접을 잘해주었다.”

눈을 돌려보면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곳도 많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 물질, 시간은 다 주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우리의 손길을, 사랑을,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다름 아닌 주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에 이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은 주님 것이니 당연히 주님의 자녀에게 나눠줘야 하지 않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누지 않으면 바로 그것이 죄요, 그런 자는 악한 자라고 낙인찍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연말이나 되어야 연중행사로 적선하듯 고아원에 과자봉지 좀 던져주고, 노인정에 얼굴을 디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여기저기에 소문 다 내고 말입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4). 그것을 과연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설마 그것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베드로를 청합니다. 베드로가 도착해보니 모든 과부들이 다비다가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보이며 슬피 울었습니다. “다비다가 우리에게 이렇게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베드로의 손길을 통해 그를 다시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인 고넬료의 선행까지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 되었으니”(행10:4). 그러니 당신의 행위도 굽어 살피시지 않겠습니까?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진다고 했습니다. 동경 예수중심교회 심목사는 노숙자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먹이고 입히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기억하사 동경에 주둔하는 미군들을 들어 심목사를 풍족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더 테레사나 조지 뮬러처럼 거창한 구제는 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 주위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내 힘껏 도웁시다. 제가 틈틈이 병원에 있는 자들을 찾고, 실수로 감옥에 갇힌 자들을 찾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면 그들은 그렇게 기뻐합니다. 그들만 기뻐할까요? 당연히 우리 주님도 기뻐하시고 우리를 칭찬하십니다.

참된 경건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참된 경건은 성경책을 옆에 끼고 팔자로 폼 나게 걷는 게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가난한 자와 과부를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우리는 주님께 빚진 자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주님이 남편을 여섯이나 갈아치운 여인을 찾아가 생수를 주신 것처럼, 우리도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영·혼·육의 생수를 줍시다. 가진 게 없어서 줄 수 없다고요? 건강한 몸이 있지 않습니까? 찾아가 몸으로 봉사하세요. 그것도 없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그래서 나중에 주님이 심판하실 때 주님의 우편에 서서 의인이라 칭함을 받고 창세로부터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나라를 상속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보세요. 할렐루야!

사랑은 구호가 아니다 사랑은 실천이다

받는 자 보다 주는 자가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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