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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너는 세상에 나가 전하라 (욘 4:1 ~11)

296호 · 2005-10-28

제가 처음으로 해외집회를 간 곳은 일본이었습니다. ‘가깝지만 가장 먼 나라’인 일본으로 떠나가기 전에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나라 중에 일본으로 가장 먼저 보내십니까?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그래도 일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도 나의 자녀니라.” 저는 그 때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과거 우리 민족에게 못된 짓을 했고, 지금도 종종 우리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일본이지만, 하나님은 그들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 구령사업에 몰두했고, 지금은 일본에 스무 개가 넘는 지교회를 세웠습니다.

요나가 바로 이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그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사십일 후에 니느웨가 무너지리라’하고 외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동쪽인 니느웨로 가는 대신 서쪽인 다시스로 가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잔악무도한 앗수르인들이 망하기를 바랬습니다. 늘 이스라엘 민족에게 위협적인 앗수르인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용서 받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바다에 빠뜨리시고 물고기 뱃속에 삼일주야 두게 하심으로 그가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는 하는 수 없이 니느웨에 들어서 하룻길을 행하며 외쳤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외쳤다기보다는 아마 모기만한 소리로 중얼거렸을 겁니다. 그런데 니느웨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무론대소하고 심지어 짐승까지 금식을 하며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요나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그들의 행함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그것이 심통이 나서 툴툴 거렸습니다. 계속 불만을 토로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박 넝쿨을 주사 시원케 하셨다가 다시 그것을 벌레들이 먹게 함으로 거두셨습니다. 이에 성난 요나가 죽는 것이 낫겠다고 땡강을 부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루 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이 마지막 구절은 구원의 복음이 만민을 겨냥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에게까지 널리 퍼질 것을 말씀하는 구절입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2:30-32).

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복된 소식이 들린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외쳤듯이, 우리나라에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와서 외쳤기에 오늘날 우리가 주 안에서 자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가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외쳤을 때 그런 대대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처럼, 언더우드나 아펜젤러도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할 때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최고의 복음수출국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사과나무씨 하나에 사과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과 속의 사과씨는 셀 수 있지만 사과씨 속의 사과는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도 이와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매년 8월이면 세계목회자 영성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 돈으로 차라리 지교회를 도와주면 더 큰 효과가 있지 않나요? 엄청난 돈을 들인 만큼 효과가 있나요?” 그러나 그것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요나의 작은 소리에도 그렇게 큰 역사가 일어났지 않습니까? 영성 세미나에 온 그들 중에 한 사람만 변화되어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고, 그 사람 하나로 인하여 많은 영혼이 구원의 반열에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친구가 툭하니 던진 복음으로 인하여 제가 변화되고, 변화된 저로 인하여 세계 70여 개국의 사람들이 변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당신이 요나처럼 나가 외치기를 원하십니다. 요나처럼 외치기만 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 하십니다. 요나가 큰 소리로 외쳐서 회개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큰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실 자를 어떻게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5,16).

당신이 무심코 던진 복음의 한 마디가 어떤 이의 마음에 꽂혀 낙심한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업 실패로 죽음까지 생각했던 어떤 사람은 차에 꽂힌 우리 교회 신문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봐야겠다 싶어 교회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차 유리에 꽂아둔 신문 하나가 사망에서 한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이는 우리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요나처럼 나가 세상을 향해 외쳐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십니다. 그 때는 공의의 심판주로 오사 예수 믿는 자를 천국으로, 믿지 않는 자를 지옥으로 보내실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믿으십시오.” 이렇게 말입니다.

당신이 외친 한 마디가 어떤 파장이 낼지는 하나님밖에 모르십니다. 당신이 외친 복음의 소식으로 인하여 제2의 빌리 그래함이 나올 수 있고, 제2의 이초석이 나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나가 외치십시오. 요나처럼 억지로 씨를 뿌려도 싹은 나고 열매는 맺습니다. 그러나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가 씨를 뿌릴 때 거두는 기쁨이 배가 되지 않을까요?

아직 복된 소식을 듣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가서 저들을 구원할꼬?’ 주님은 오늘도 통탄해 하십니다. 우리가 합시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보내소서. 내가 원수 같은 자와 나를 해친 나라인 사마리아까지 기꺼이 가겠나이다.” 할렐루야.

핍박과 순교가 오더라도 예수는 증거되어야 한다

사과 속의 사과 씨는 셀 수 있지만 사과 씨 속의 사과는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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