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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목차 › 선교기행

인내는 정상에 이르는 첩경이다

202호 · 2004-01-05

중세 일본의 막부정치사에 등장한 세 영웅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꾸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불세출의 영웅들이요, 일본 역사 속에 지금도 살아 숨쉬는 불멸의 영웅들이다. 닮고 싶은 인물, 존경하는 영웅으로서 일본인들의 마음을 아직도 사로잡고 있는데, 그들의 성격과 사상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노부나가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리고”, 히데요시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끔 만들고”, 이에야스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셋 다 천하를 호령하던 유명한 명장들이지만, 천하통일과 태평성대의 대업을 이룬 것은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겠다.’던 이에야스다. 그는 지금은 두견새가 울지 않지만 울 때가 온다는 확신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소망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천하를 얻었다.

300년 이상 영적 암흑기가 계속된 일본 땅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계기로 하나님은 또 다시 선교의 문을 여시고 수많은 해외 선교사들을 파송해 주셨다. 셀 수 없이 많은 우상을 섬기며 물질주의, 쾌락주의, 철저한 개인주의 등으로 얼어붙고 두꺼워진 벽을 녹이고 깨야 하는 무거운 짐이 악한 영들의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이미지를 형성하여 수많은 선교의 열정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400년 전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한 때는 한해에도 30만 명이나 순교의 피를 흘리며 믿음을 지키고 복음의 씨를 뿌렸던 나라임을 기억한다면, 봄에 씨를 뿌린 농부가 가을의 추수를 잊지도 않고 결코 포기하지도 않듯이, 우리도 추숫꾼의 확신을 가지고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인내하고 때를 기다리며 칼을 갈아야 할 것이다.

가볍게 생각하거나 성급히 판단해도 안 되고, 힘들게 생각하여 주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또 성급히 포기하거나 억지로 행하다가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낭패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분명 이 땅에도 추수를 바라보고 뿌려놓은 씨앗이 있기에 추수해야 할 많은 영혼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충청도에서 기도원장으로 시무하신다는 어떤 목사님이 우연히 우리 교회 주일예배에 출석하신 적이 있었는데, 목사님인지도 모르고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예배 후 교제시간에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과거엔 일본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시도했었는데 너무 힘들고 성과가 없어서 포기하고, 최근에는 동남아 지역과 중국 선교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야스가 음부를 떠돌며 웃고 있을 것 같다.

만주의 주 예수를 섬기고 자랑하고 그 복음의 증인될 자들이 확신도 없고, 소망도 인내함도 없이 바람에 요동하는 바닷물결처럼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니 말이다. 분명 예수님은 인내로 영혼을 얻고 인내로 결실할 것을 가르치셨으며, 모든 참음이 사도의 표라고도 바울을 통해 증거하셨는데 말이다.

언젠가 내 영혼이 갈급하고 성급해져서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말씀만 주세요.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해야 될 것이 있으면 할 테니까요.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그리고 잠이 들었다. 넓은 운동장 바닥 같은 곳에 믿음의 문제점들을 기록한 두루마리가 펼쳐지기에 가까이 가서 들여야 보니 두루마리가 왼쪽부터 사그라져 없어졌는데 마지막에 손바닥 크기만 하게 남은 것이 있었다. 거기에는 “인내(忍耐)”라는 두 글자가 남아 있었다.

역시 세상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시고, 또 너희는 뱀의 지혜를 배우라고도 하신 것을 상기한다. 이에야스가 인내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땅에서 하늘과 땅의 주되신 예수 이름으로 포기해야 된다면 면목이 없는 일이다.

2004년 새해가 밝았다. 태초에 시간의 흐름이 창조된 이래 아직 아무도 밟고 지나가지 않은 새해를 또 허락하셨다. 이 새해가 우리 눈앞에 캔버스의 백지처럼 펼쳐져 있다. 여기에 확신과 소망 중에 인내라는 사도의 표를 가지고 새 그림을 그리고 싶다.

세상의 자녀들이 얕보고 비웃고 조롱하지 못하게 오히려 우리의 옷자락을 붙들고 부러워하며 우리가 섬기는 교회, 우리가 섬기는 예수 앞에 나아오는 새 그림을 그리며, 예수 이름으로 인내하여 천하통일의 영적 새 역사를 창조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선교지 일본 동경에서

일본 예수중심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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