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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목차 › 교단소식

신년사

202호 · 2004-01-05

2004, 교단의 부흥을 꿈꾸며 본지 200호 돌파를 기념하고 2004년 새해를 맞이하여 총회장 목사님과 함께 예루살렘 교단을 이끌고 있는 목사님들에게 2004년 새해에 거는 기대와 비전을 들어보았다

2m 아래 금맥이 있다

미국 뉴욕에 ‘덥’이라는 보험왕이 있다. 그는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여 퇴직금과 저축해놓은 돈으로 금광 하나를 샀고, 그것에 필요한 장비와 일할 사람을 구하여 그 금광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수개월이 지나도 그 광산에서는 금이 나오지 않았다. 인건비와 관리비는 계속 지출해야만 했다. ‘내일은 금맥이 나오겠지’ 하며 일한 것이 이제는 자본금이 바닥 나 노임과 관리비를 더 이상 지불할 능력이 없어 은행 빚더미에 올라앉자 그는 결국 금광을 팔고 모든 것을 정리했다.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그는 실의에 빠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문불출하며 죽음까지 생각할 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 심정을 어떻게 알랴! 그런데 이틀 후 신문지상에 자기가 판 그 금광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것도 자기가 팠던 그 자리에서부터 불과 2m를 더 팠을까? 그는 후회했다. 내가 왜 더 견디지 못했을까? 2m만 더 팠어도…. 2m는 그의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내가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하며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보험 가입을 권유했다. 거절당할 때면 금광을 떠올렸다. ‘그래, 2m만 더 파보자. 2m 아래에 금맥이 있다.’ 어려운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존심을 버리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2m를 생각하며 두 번, 세 번 찾아간 노력의 결과, 그는 마침내 보험왕이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목표를 설정했으면 정상을 향해 달리십시오. 정상의 길은 넓고 평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고 일어나 뛰십시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입니다(잠언 24:16). 보험왕이 2m를 보고 뛰었듯, 여러분도 목표를 설정했으면 달성할 때까지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정상에 오를 때까지 계속 도전하고 다시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과 동업하여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2004년도에는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서울예수중심교회 강반석 목사

우리의 신분을 회복하자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 마디로 “혼란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나라 밖은 전쟁과 지진으로 혼란하기 짝이 없다. 나라 안의 정치판은 백성들만 골병들게 만들고, 서민 경제는 카드 빚으로 무너져 내려가고 있으며, 윤리는 땅에 떨어져 어린 자식을 한강 얼음물에 집어던지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이러한 세상에 사는 만큼 고달픔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서 승리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지혜가 필요하다. 사사시대의 역사는 우리에게 혼란의 시대를 사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정체를 잊어버렸을 때는 외침으로 나라가 온통 쑥대밭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누구인지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는 나라가 평안하고 부강했다.

그러므로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이라면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언약 백성을 세상으로 으뜸으로 세워 당신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셨다면 당신 자녀에게 향한 뜻은 더욱 간절하실 것이 분명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여, 우리의 신분을 새롭게 마음에 새기자. 우리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 그리고 정상을 향하여 도전하자. 정상은 정복되어지기 위하여 준비되어있다.

무엇을 도전할 것인가? 당신이 서있는 그곳, 당신이 하고 있는 그 일에서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라. 전도인은 전도에서, 학생은 학업에, 사업자는 사업의 현장에서 각자 목표를 정하라.

그것을 달성하면 그것이 곧 정상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곳에 찬란한 미래와 아름다움이 있다. 정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의 영광으로 어둡고 혼란한 시대를 바로 세우자. 할렐루야!

예수중심제자원 구약학 교수 서혁주

정복해야 생존한다

미국 템플 대학의 창시자 러셀 코웰 박사가 2차 대전 후 미국에서 백만장자로 성공한 4,043명을 조사한 결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많은 성공자들 가운데 고졸 이상의 학력자는 69명뿐이었고, 나머지는 거의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람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것이 결코 학벌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런데 이 성공자들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첫째가 그들에게는 분명한 인생의 목표가 있었다는 것과 둘째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으며, 셋째는 자신의 무능함과 무식함을 통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공통점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2004년 새날의 여명이 밝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 예루살렘을 향하여 “정상을 향하여 질주하라”고 명령하셨다. 전투에 임한 병사가 고지를 정복하고자 진군할 때 수없는 장애물 지대를 통과해야 하지만 “정복해야 생존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결코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2004년을 맞이한 사랑하는 교단 산하 형제자매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야베스(대상4:9,10)는 자신의 초라한 삶을 비관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업하여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과 동업하면서 정상을 향해 질주해야할 때를 맞이한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불평하지 말고 어제라는 역사를 교훈 삼고, 성경을 거울 삼아 내일이라는 미지의 시간에 정상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오늘’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후회 없는 노력을 더하여 믿음의 신령한 작품을 만들어봅시다. 할렐루야!

안산예수중심교회 김성주 목사

작심(作心) 365일

2004년이 시작되었다. 벌써 며칠이 지났다. 우리 예루살렘교단의 젊은이들은 과연 첫 단추를 잘 꿰고 있는지, 아니면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처럼 2003년의 구습을 아직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해 보자.

누구나 꿈과 비전을 갖는다. 누구나 목표를 갖는다. 누구나 계획을 갖고 실천해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누구나 다 성공하지는 못한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처음 마음이 끝 마음 되어야 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마음을 잃는다. 그렇기 때문에 1%도 안 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상에서 성공의 기쁨을 만끽한다. 여기에 바로 성공의 열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작심 3일’이라는 징크스를 과감히 깨뜨리고 ‘작심 365일’ 이라는 작전으로 항구여일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약점을 분석해 보면 인내와 끈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뭐하나 이루는 것 없이 방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세기 5장의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한다. 말이 300년이지 그게 어디 동네이름인가? 요즘 사람 같으면 300년은 고사하고 3년, 아니 3주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13년 간 고난의 터널을 빠져나온 믿음의 사람, 꿈의 사람 요셉은 어떠한가? 모두가 요셉이 받은 화려한 축복은 받고 싶어 하지만, 그가 견뎌낸 불같이 험난한 고난 속에서의 인내와 끈기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 젊은이들은 성경의 위인들로부터 오래참고, 오래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는 반석 같은 믿음을 본 받아야 할 것이다. 너무 큰 목표보다는 작은 목표를 설정해 놓고 점차 작은 산들을 정복해 나가는 성취감을 느껴봄이 어떨지. 매일 매일의 실천이 결국 ‘작심365일’ 까지 갈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정상에서 만나 성공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좋은 열매, 좋은 성공의 결과를 갖고 ‘2004년 12월 결산의 달’이 기다려지는 예루살렘교단의 젊은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예수중심교회 인천 청년부 강폴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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