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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일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보라 (행 8:1~8 )

178호 · 2003-07-23

옛말에 ‘잔치 끝나면 도적이 틈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의 경조사(慶弔事)로 큰 잔치를 치르고 나면 몸도 피곤할뿐더러 마음까지 긴장이 풀리다보니 부어라 마셔라 하며 만취하여 잠에 떨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도적들에겐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요.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서 눈을 비비고 일어나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당장 밥상에 올릴 놋그릇까지 다 없어졌으니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그러나 때늦은 후회는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사 성공자는 뭔가 한 가지를 성취했을 때 마냥 결과에 취해있지 않습니다.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다시 마음의 허리띠를 동여맵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세가 인생의 성공을 좌우합니다. 성공자와 실패자의 차이는 단 한 가지, 실천의 문제입니다. 바보들은 늘 결심만 합니다. 이는 무슨 말이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데 이를 실천할 의지가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성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하나님도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17일, 기도원 숙소 준공을 마치고 기도원에 남아 있었습니다. 철야예배에 많은 성도들이 기다리니 올라가시라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도원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매사 끝장을 보지 않고는 장을 마감하지 않아왔고 또 그것이 제 성공의 비결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잔치의 마무리가 안 된 상태에서 저마저 그곳을 빠져나오면 모두가 긴장이 풀려 악한 마귀가 틈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장애인 숙소나 아랫동네 경로당 건축이 남아있고 곧 있을 청소년 연합수련회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숙소는 준공했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입니다. 기도원 숙소를 건축한 이유가 건물 하나 지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원을 찾는 많은 성도들, 목회자 영성훈련에 전세계에서 몰려올 해외 목회자들을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따라서 궁극적 목표는 이 기도원을 통해 이 나라는 물론 전세계를 예수 중심으로 변화시켜보려는 것입니다. 이 대업을 꿈꾸는 자가 숙소 하나 완공했다고 마음을 놓고 풀어진다면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저를 택할 만한 다른 이유는 별로 없으나 단지 저의 식지 않는 열정과 한 번 마음먹은 일은 기필코 이루고야 마는 추진력을 하나님이 기뻐하사 이를 쓰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고 기도는 응답받고 하는 것이다.’ 이는 이길 때까지, 응답받을 때까지 오직 전진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이기게 하시며, 응답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원하시는 일, 그 분의 명령이라면 죽기를 각오하고 뛰었습니다.

오직 귀는 막고 눈은 푯대를 바라보고 최선을 다하는 제 모습에 때론 제가 박수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도 이런 저를 보시고 어여삐 보사 전국과 전세계를 예루살렘 교단에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저의 이런 점은 닮았으면 합니다. 다른 부분이야 제게 부족한 면이 많으나 변치 않는 믿음과 확고한 결단만은 저를 닮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학벌이나 가문 혹은 미모가 출중하다고 하나님의 관심 안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간파하시고 그의 중심이 하나님께 확실히 서있다고 인정될 때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를 잡아 쓰셨던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다 그런 자들입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처음과 끝이 동일한 열정과 열심을 지닌 자라는 것과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초지일관(初志一貫)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 동일한 자를 원하시고, 매사 시작했으면 반드시 끝장을 보고 마는 자를 찾아 쓰셨던 것입니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울 때를 만나면 중도에 주저앉고 싶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보이던 길도 안 보이고, 들리던 것도 안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역경을 넘어 진군할 때는 여호와 이레 즉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당신의 자녀를 위해 미리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결단이 확고하지 않기에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얍복강가에서 야곱은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더불어 씨름을 하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날이 밝아오자 하나님의 사자가 떠나기를 청했으나 야곱이 축복을 받기 전에는 보낼 수 없다고 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축복하고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끝장을 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져주시고 소망하는 것을 만족케 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조금 노력하다, 조금 기도하다 낙심하고 좌절하고 맙니다. 이는 1m만 더 파면 원유가 있는데 거기서 시추선을 멈추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기도하고 노력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들리고 보이고 만져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기업과 가정이 풍전등화의 위기 가운데에 있습니까? 에스더를 생각하십시오.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삼 일을 금식하고 아하수에로왕 앞에 나갈 때 왕이 금홀을 내밀어 에스더를 맞았던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전멸될 이스라엘민족이 구원되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불사한 기도와 결단이 있다면 당신의 기업과 가정은 회생될 것입니다. 능력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엘리사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엘리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끝까지 좇더니 그보다 갑절의 영감을 얻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자굴에 떨어지기까지 믿음을 지켰던 다니엘과 풀무불에 던지면서도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기억하신다면 사면초가(四面楚歌)된 당신의 삶에 희망이 드리울 것입니다.

‘가다가 곧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지 못해서 몸살이 나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물을 항아리 아구까지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주저앉거나 발로 차버리기 때문에 응답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구까지 물이 차야 포도주가 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기 전에 동풍이 불었습니다. 이 동풍을 보고 좌절, 낙심한다면 홍해를 건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여섯 바퀴를 돌 때까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바퀴 돌면 돌 한 층이 무너지고 두 바퀴 돌면 더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일곱 바퀴를 다 돌고 소리를 지를 때 한꺼번에 무너졌던 것입니다. 인생의 홍해와 여리고성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세요.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에서 생사화복(生事禍福)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고야 말리라’ 는 결단의 마음이 오늘 여러분의 심령 속에 잉태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전쟁은 이겨 놓고 싸우는 것이고 기도는 응답 받고 하는 것이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귀는 닫고 앞만 보며 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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