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목사님의 방법을 따르겠습니다!
고집은 불통(不通)이다. 주장하는 것과 고집이 다른 이유는 발전의 여지가 있나, 없나 하는 점이다. 주장하는 자는 토론의 상대와 타협점을 찾아 발전의 여지를 찾아갈 수 있겠으나 고집하는 자는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는 자기 세계에 갇혀 살다가 가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경험이나 지식이 전부인양 고집하는 자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와는 대업을 꿈꿔서도 안 된다. 겸손하게 새로운 지식,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방된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배우려는 자세가 성공자의 자세요, 우리가 갖춰야할 삶의 태도이다.
이번 라트비아 리가집회에서 마지막 날 총회장 목사님을 찾아온 그레고리 선교사는 이제부터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총회장 목사님의 방법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해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집회를 배설했던 선교사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드네프로페트롭스크 4차 집회 때 드네프로 강가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총회장 목사님을 처음 찾아와 총회장 목사님의 러시아 선교에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그 후 1년 뒤 칼리닌그라드 집회가 열렸고, 그는 그 집회를 통하여 많은 도전을 받았고 심리적 고민도 겪은듯하다. 주로 해외선진국의 유명 전도자들을 자국 러시아에 초청하여 집회를 주선하고 집회에 소요되는 비용들에서 남는 이익을 챙기는 식으로 살아온 그에게 총회장 목사님이 주장하는 신앙노선은 매우 좁은 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서 돈을 벌려는 생각으로 차있던 그에게,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도 불사하며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으로 가득한 총회장 목사님의 모습이나 그 가르침이 감당키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로인해 현지 집회팀 내에서도 약간의 갈등이 생기고 함께 일하던 일다르는 총회장 목사님과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로 그레고리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로부터 배척당하기까지 했던 모양이다.
지난 모스크바집회 때 그들이 다시 모였지만 서로 소원한 관계로 불편해 하고 있는 것을 총회장 목사님이 서로 화해를 시키고 다시 하나로 만들어 오직 복음을 위해 서로 힘을 합하자고 주문한 바 있었다.
그레고리는 이번 리가집회에 비자문제로 마지막 날 참석하였다. 그는 집회 내내 눈물로 기도하며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아침, 숙소로 찾아와 총회장 목사님께 기도를 요청하며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지난 모스크바집회를 마치고 칼리닌그라드로 돌아가 있던 어느 날, 한 꿈을 꾸었단다. 꿈에 자기가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데 총회장 목사님이 나타나 “집을 이렇게 지으면 안 된다.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해봐라.” 하며 가르쳐주시더라는 것이다.
그 때 그레고리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저는 지금까지 집을 이렇게 지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목사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지어보겠습니다.” 목사님은 꿈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이제부터 내 목회방법을 따라오라는 뜻이다. 네가 그렇게만 한다면 나중에 칼리닌그라드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꿈 풀이를 해주었다. 그는 매우 고무되어 자기 교회를 칼리닌그라드의 예수중심교회로 만들겠다며 그동안 무거웠던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것이었다.
칼리닌그라드집회 때 그레고리 선교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행태대로라면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은 것이 보통의 생각이었겠지만 총회장 목사님은 늘 ‘돈 때문에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지론으로 그를 용납하고 품어주었다. 설령 그가 돈 때문에 집회를 준비했을지라도 어쨌든 그를 통해 러시아에 복음의 문이 열렸으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조건 없는 신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사랑이 아닐까…. 그리고 그 변함없이 보내주는 신뢰가 결국 그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열 번의 꾸중보다 한 번의 칭찬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신뢰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