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생각을 바꿔라
여러분, 생각이 바뀌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며,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실 때 환경을 먼저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생각부터 바꾸셨습니다. 모세를 쓰실 때 환경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모세에게 '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불어넣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말합니다. '팔자다', '타고난 것이다',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생각이 결과다!"(렘6:19). 하나님은 '행동의 결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생각의 결과'라고 하셨습니다. 행동은 생각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생각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한마디 말씀에 빛이 생겼습니다.
"땅은 생물을 내라."
말씀대로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뜻을 세우셨습니다. 먼저 생각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말씀으로 선포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생각과 말이 삶을 만드는 통로가 됩니다. 오늘의 내 생각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내일의 인생을 향해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꿔 대역사를 이룬 나라가 있습니다. 두바이입니다. 황량한 사막 위에 세계 최고의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어떻게요? 한 사람의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한계는 스스로 긋는 것이다." 두바이 공항 입국장 광고판에 쓰여 있는 문구입니다. 이는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현실로 이뤄져 열사의 땅에 스키장이 들어서고, 골프장이 만들어지고, 인공섬이 생기고, 세계 최고층 빌딩이 세워졌습니다. 생각이 환경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생각 때문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열 명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올라가 이길 수 있다."
똑같은 가나안을 보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똑같았습니다. 다른 것은 '생각과 말'이었습니다. 열 명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말했습니다. 결국 현실을 보고 부정적인 말을 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생을 마쳤고, 약속을 붙든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과테말라 집회에 갔을 때, 말 타는 법을 배웠습니다. 집회를 도왔던 어느 재벌이 집으로 초대했는데, 집이 무려 300만 평이나 되었습니다. 그 안에 사냥하는 코스가 있었는데, 그러려면 말을 타야 했습니다.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런데 말을 타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은 기수가 고삐를 당기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일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반복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방향으로 살아갑니다. 즉 말(馬)이 수레를 끌고 가듯, 말(言)은 인생을 끌고 갑니다. 기수가 어느 쪽으로 말고삐를 당기느냐에 따라 말이 방향을 달리하듯,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불평 쪽으로 당기면 불평의 땅으로. 감사 쪽으로 당기면 감사의 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가룟 유다가 하루아침에 예수님을 판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마음속에 탐욕의 생각을 품었으며, 그게 안 되자 '예수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행동으로 이어져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판 것입니다. 예수를 판 것은 손이 아니라 먼저 생각이었습니다(요13:2).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핵폭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핵폭탄을 만들겠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발명은 생각에서 시작되었고, 모든 전쟁도 생각에서 시작되었으며, 모든 범죄도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반대로 모든 위대한 역사와 기적도 한 사람의 믿음의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어머니와 약속했습니다. 다시는 천관녀를 찾지 않겠다고. 그런데 어느 날 피곤하여 말 위에서 잠깐 졸았는데, 눈을 떠보니 천관녀의 집 앞이었습니다. 말이 오랫동안 다니던 습관대로 천관녀의 집으로 데려다 놓은 겁니다. 잠에서 깨어난 김유신은 깨달았습니다. "습관은 생각보다 강하구나."
그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사랑하던 말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습관처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안 된다.", "힘들다.", "나는 못한다.", "빌어먹을~", 이런 말을 끊어야 합니다. 잘못된 언어 습관을 베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바울도 말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그리고 바울은 이어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면 우리 생각과 말이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게 애절하건만, 왜 우리 삶은 이 모양일까요? 그건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심어서 그런 겁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고 해도 가시나무를 심으면 가시나무가 자라서 찌르지, 과실이 맺겠습니까? 그러므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믿음의 언어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7:16).
목회 초, 대형집회를 앞두고 교역자 회의를 했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여러 지침을 내리던 중, 현수막과 전단지를 활용해서 광고하라고 지시하는데, 이시대 목사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목사님, 요새는 길에 현수막을 붙이면 구청에서 다 떼어가고, 벌금도 문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바로 "너 나가! 왜 부정적인 말을 해서 이 사람들을 물들이는 거야. 왜 의욕을 꺾어?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시대 목사는 옆의 전도사에게 전해 듣고 제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 됩니다. 부정에 동의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정은 전염률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말을 뿌려야 합니다. 믿음의 말은 마음을 바꾸고, 마음은 행동을 바꾸며, 행동은 미래를 바꿉니다.
여러분, 인생은 운명이 아닙니다.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생각과 말로 만들어 가는 작품입니다. 졸작을 만들고 싶은 작가는 없습니다. 내 인생을 졸작 만들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명작을 만들고 싶으시지요? 명작은 긍정적인 생각과 말, 믿음의 생각과 말, 좋은 생각과 말, 미래지향적인 생각과 말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한 폭의 명작으로 빚어가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 큰 소리로 믿음을 선포합시다.
"나는 잘된다! 잘된다. 나는 잘될 수밖에 없다! 왜냐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니까!"
믿음대로 될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