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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crazy) 않으면 미칠 수(reach) 없다

1363호 · 2026-06-21
세상을 보는 창

미치지(crazy) 않으면 미칠 수(reach) 없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과 비전을 이루는 일에는 얼마나 큰 열정이 필요하겠는가.

하나님 나라를 향한 거룩한 열정이 없다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갈 수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명한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급한 일에 쫓기며 살아가지만 진정한 변화는 말씀과 예배, 기도처럼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영역에서 시작된다.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하고 감사로 마무리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에 두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

또한 꿈을 향한 여정에는 반드시 고난도 따른다. 그러나 고난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다. 요셉은 감옥을 거쳐 총리가 되었고, 다윗은 광야를 지나 왕이 되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우리 믿음을 연단하시고 더 큰 열매를 준비하신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오늘 흘리는 눈물과 땀, 보이지 않는 헌신과 순종은 전혀 헛되지 않다.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전념하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말씀에 순종하고,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며, 고난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여신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무엇에 미쳐 있는가? 세상의 성공인가, 사람의 인정인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뜻인가?”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람은 환경을 뛰어넘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사람은 평범한 인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한다. “주 안에서 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말씀 앞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내 삶에 기적을 행하신다.” 이것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붙들어야 할 믿음의 원리이며, 꿈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꾸는 전념의 법칙이지 아닐까.

이정금 전도사

경배와 찬양

대충이라는 균을 잡자!

총회장 목사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몇몇 신학생들과 함께 기도원의 보도블록을 새롭게 까는 작업을 했습니다. 작업을 하던 그날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었고, 오전부터 시작된 작업은 오후가 시작될 즈음 끝났습니다.

막 뒷정리를 하려는데, 총회장 목사님께서 한쪽에 앉으시더니 신학생들을 불러 옆으로 앉히시며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땅이 고르게 작업이 잘 되었냐?”

목사님 옆에 앉아서 바라본 보도블록들은 평평하게 깔려 있지 않고, 비스듬한 경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비스듬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작업해야 합니다.”

‘웃프다’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웃기면서도 슬프다.’라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더위에 일을 시키는 나라고 마음이 편하겠냐?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대충이라는 균을 잡아내는 것이다. 너희들 목회 가운데 대충이라는 균을 잡아낸다면 목회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작업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제대로 일을 끝냈고, 그날의 기억은 머릿속에 크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경험 덕분에 제 말 가운데 대충이라는 말이 사라지게 되었고, 행하는 가운데도 대충이라는 태도를 없애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삶 속에서 대충이란 균을 잡아내어 더욱 목사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는 예수중심인이 됩시다!

윤에녹 전도사

생명의 말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정말 소중한 사람일까?”

세상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라고 말한다. 더 많이 이루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받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사랑받기 위해 지음받은 존재라고 말한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 뒤 아기를 품에 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후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며 특별한 존재로 세상에 보내셨다. “너는 내 것이다. 너는 특별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리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기 위한 대상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숨어버렸다. 죄의 본질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실패한 나도 받아주실까?”, “이런 내가 가치가 있을까?”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먼저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심판자의 음성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아버지의 음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말이 아니라 희생으로 증명된 사건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면 인생이 달라진다.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세상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다윗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왕이 되었고, 베드로는 넘어졌지만 주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 사명을 회복했다.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보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당신을 향하고 있다. 그 사랑을 믿을 때 비로소 인생의 참된 가치와 목적을 발견하게 된다.

임택함 목사

한국교회사

예수 천당, 최권능 목사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 천당!’이라는 단 두 마디의 외침으로 강력한 복음의 흔적을 남긴 최봉석, 곧 최권능 목사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그의 생애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 복음의 능력을 증명하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최권능 목사님이 태어난 조선 말엽은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궁핍하고 정부 관료들의 부패가 만연했던 혼돈의 시대였다. 1894년 동학혁명 당시 24세였던 최봉석 청년은 평양감사 민영휘의 비서 역할을 하던 중, 부친과 현감 사이의 언쟁에 개입하여 현감을 구타하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때문에 최봉석은 국고금 3만량을 횡령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반년 동안 투옥되었다가 이로 인해 그는 500리 밖의 평양 삭주로 귀양을 가는 신세가 된다. 발바닥이 붓도록 걷고 또 걸어 삭주에 도착한 해는 1900년, 그의 나이 31세였다.

그는 날마다 울분 속에서 술에 취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백유계 한의사가 설립한 교회가 있었다. 백유계는 그의 사촌 동생인 양전백(마포삼열 선교사로부터 세례 받은 초신자)에게 복음을 전해 들은 후, 병 고치러 오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교회를 세운 인물이었다.

1902년, 백유계는 귀양살이로 외로워하던 최봉석을 찾아와 예수님을 전했고, 그의 사랑에 감동한 최봉석은, “그 예수는 누구든지 믿을 수 있는 것이요?”라고 물으며 복음을 받아들였다.

33세에 쪽성경을 읽기 시작한 그는 이듬해인 1903년 부인과 함께 학습을 받고 세례를 받으며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다. 삭주는 그에게 고달픈 귀양지였으나 동시에 복음의 씨앗이 싹트는 은혜의 장소가 되었다.

예수님을 믿은 후 최봉석은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자랑스러운 호칭을 얻을 만큼 전도에 온 생명을 바쳤다. 그는 신학적인 지식보다는 오직 기도와 전도에만 열중하여 평양신학교를 세 번이나 낙제했다. 그러자 벽동교회의 교인들이 물어보았다. “조사님, 졸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최봉석은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1년 더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3년이나 반복되다 보니 최봉석 조사는 교인들을 볼 면목이 없어 교무실로 들어가 교수들을 만났다. “교수님들에게 아뢸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교수님들 먼저 저와 함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같이 부족한 죄인을 불러서 예수 믿게 하시고, 또 신학교에 와서 공부하게 하시고, 또 목사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기도하고 전도하느라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들이 나에게 졸업장을 주어 나도 목사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옵소서. 주실 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도 간절하게 기도를 하니 교수들은 모두 덩달아 ‘아멘’ 했다. 기도를 마친 최봉석은 마펫 교장에게 졸업장을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교장은 “안 됩니다. 1년을 더 공부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목사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좀 전에 제가 기도할 때 아멘 하셨잖아요?” 마포삼열 교장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 말을 다한 최 조사가 교수실을 나오려고 할 때 마포삼열 교장은 최 조사를 불렀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이에게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최 조사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1913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8월, 목사로 안수받은 후 벽동교회에서 1년 동안 목회하다가 1914년부터 노회의 파송을 받아 만주 전도에 전념했다. 넓은 만주 벌판을 10리, 20리씩 걸어 다니며 조선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수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12년 동안 복음을 전한 결과 28개의 교회를 세웠다.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몽둥이와 돌맹이로 맞아서 쓰러지기도 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때로는 올챙이를 잡아먹기도 했고, 어떤 때는 소똥에 들어 있는 콩알을 꺼내어 먹기도 하며 27년간의 전도사역을 통해 만주에서 50개, 한국에서 30개, 총 약 80개의 교회를 개척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다.

최권능 목사님의 믿음은 단순했으나 그 능력은 비범했다. 평양의 백동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고 있었다. 그때 한 일본군 연대장이 시장터를 지나가고 있었다. 최권능은 그 일본군 연대장을 향해서 큰 소리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며 전도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든지 연대장의 말이 깜짝 놀라는 바람에 말에 탔던 연대장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연대장은 최권능을 일본군 주재소로 끌고 가 온갖 매질을 하며 심문했다.

세게 때리면 때릴수록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소리도 커졌다. 그러자 일본 군인은 최권능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조롱하듯이, “당신은 건들기만 하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최권능은 “내 속에는 예수님만 들어있기 때문에 건들기만 하면 예수님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일본 군인들은 그를 그대로 풀어주었다.

1925년 조선신궁 설립 이후 일본의 기독교 박해가 심해지면서 신사참배 문제가 대두되었다. 최권능 목사님은 “내가 앞장서지요. 매는 몽땅 내가 혼자 맡아서 맞고 순교도 내가 맡아서 하겠습니다.”라며 결사적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했다. 신사참배 반대로 체포된 최권능 목사님은 주기철 목사님, 안이숙 선생 등과 함께 평양경찰서로 호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악독한 취조관의 구두 발길질에 코피를 흘리면서도, 매를 맞아 말을 할 수 없게 되어도 신음 섞인 목소리로 ‘예수 천당!’을 외쳤다. “내 몸에는 예수 천당이 꽉 찼단 말이요. 내 전신에 피가 들어있어 바늘로 찌르면 어디든 피가 나오듯이 예수 천당이 나올 터이니까!”라는 그의 고백은 그의 영혼을 불태우는 예수님의 사랑을 어떤 고문도 꺾을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감방 안에서도 큰 소리로 찬송을 불러 다른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영혼의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면회를 온 아내에게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며 믿음을 독려했다.

부활절을 앞둔 1944년 4월 15일 낮 12시 40분, 75세의 최권능 목사님은 사랑하는 교우들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고….”라고 말하며, 찬송가 289장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를 부르기 시작했다. 찬송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미소를 남긴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로써 우리의 순교자 최권능 목사님은 우리에게 ‘예수 천당!’이라는 영원한 여운을 남긴 채, 순교의 영광을 안고 주님 품에 먼저 안겼다. 그의 삶은 척박한 땅에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복음의 꽃이었다.

김종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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