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유리와 백미러
혹시 백미러만 보고 운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동차는 원래 앞유리를 통해 가야 할 길과 방향을 확인하고, 장애물을 피하며 달립니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잠시 확인할 때만 백미러를 이용하게 되죠. 그래서 앞유리는 크게, 백미러는 작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백미러만 바라본 채 운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달리면 큰 사고가 날 것이고, 아예 멈춰 선다면 자동차를 만든 이유 자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여정 위에 있습니다. 지금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떤 장애물을 피해야 하는지,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지나온 상처와 실패, 억울함과 자기연민이라는 인생의 백미러만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시선이 묶인 채, 오히려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우울함 속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아직도 서럽고, 잊히지 않아 괴롭고, 때로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시절의 당신만 바라보느라, 지금과 내일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까지 소모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상처를 품고도 오늘을 살아내는 당신은, 연민과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생했다’ 인정받고, ‘귀하다’ 칭찬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상처가 회복과 용서 위에 서기를 원하셨고, 풍랑 이는 바다 위도 담대히 걸어가도록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고 계십니다.
성경 속 기드온은 처음부터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패배감과 두려움 속에 숨어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미디안에게 반복해서 약탈당하던 시대, 그는 적들의 눈을 피해 포도주 틀 안에 숨어 몰래 밀을 타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더 익숙한 인생이었던 것이죠.
그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지만 처음의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상처를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 집은 가장 약하고 나는 가장 작은 자입니다.” 그는 과거 패배의 상처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했고, 스스로를 패배자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용사라 부르셨지만, 기드온은 여전히 숨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과거의 상처가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바알의 제단을 헐었고, 결국 300명의 용사를 이끌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한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포도주 틀에 숨어 있던 자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명장이 된 것입니다.
기드온의 변화는 상처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과 나약함이 없어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연약했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크게 바라보고, 하나님의 명령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아픔이 더 이상 당신의 삶을 지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상처 위에도 조금씩 새살이 돋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닿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과거가 아닌 오늘을 살아내고, 오늘을 디디며 내일을 꿈꾸는 하나님의 용사로 다시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