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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한 알의 밀알

1362호 · 2026-06-14
아름다운 인생

한 알의 밀알

5월 말, 청년부와 함께 강화도로 MT를 다녀왔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었고, 특별히 강화 기독교 역사기념관 방문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강화도는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겪으며 서양인과 서양 문화를 강하게 적대하던 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척박한 땅에 작은 밀알 하나를 준비하셨다. 1893년 인천에서 미국인 존스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접한 이승환은 어머니를 전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복음을 받아들인 어머니를 위해 존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부탁했다. 선교사는 한밤중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배를 타고 해안에 접근했고, 이승환은 노모를 업고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달빛 아래에서 세례를 받게 했다. 이후 그의 집에서 시작된 예배는 교회가 되었고, 복음은 섬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복음의 불모지였던 조선에 찾아와 자신의 삶을 드린 선교사들의 절박함이 기념관 벽에 새겨져 있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 사람은 가난과 고통에 묶여있는데 이유도 모른 채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그들은 우리를 서양 귀신이라고 모욕하지만,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훗날 조선의 믿음을 보게 될 것을 믿습니다.”

42년 전 우리 교단에 심겨진 한 알의 밀알을 통해 많은 영혼들이 돌아왔고, 오늘날까지도 바다를 넘어 수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이처럼 자신을 기꺼이 드린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우리도 예수님께 내어드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세우며 많은 열매를 맺어보자.

김혜리 교육전도사

소망의 언덕

시청각 교재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4:48)라고 말씀하시며, 눈에 보이는 증거 없이는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위해 구약의 대속죄일, 아주 특별한 ‘시청각 교재’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아사셀 염소’입니다.

대제사장은 온 이스라엘의 죄를 안수한 아사셀 염소를 백성들이 똑똑히 보는 앞에서 진영 밖 먼 광야로 보냈습니다. 백성들은 눈앞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염소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죄가 저렇게 멀리 떠나가는구나.” 하고 죄 사함의 은혜를 확신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도 이처럼 살아있는 시청각 교재가 있습니다. 최근 멕시코 선교를 앞두고 현지의 총격 위협을 예견한 구체적인 경고가 있었음에도, 기꺼이 장시간의 비행길에 오르신 총회장 목사님의 행보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여러 성도들의 꿈으로 경고하셨지만, 우리가 기도한 것을 믿고 멕시코 비야에르모사 집회를 위해 떠났습니다.

인간적인 두려움과 번민이 왜 없으셨겠습니까. 그럼에도 목사님께서 걸어가시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 예수께 받은 천하보다 귀한 은혜를 갚고, 맡겨진 사명에 생명 다해 충성하기 위함입니다.

나아가 이 생생한 순종의 모습을 통해 성도들에게, “내가 앞장설 테니, 우리 모두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은혜를 갚는 인생이 되자.”라는 강력한 영적 메시지를 던지고 계신 것입니다. 목숨을 건 목자의 거룩한 결단은 안일했던 우리의 신앙을 무섭게 깨우며, 교회를 더욱 견고한 기도의 자리로 이끌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내가 선 땅부터 기름진 한 해가 되자!”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 삶이 기름지게 되는 비결은 복음 증거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아사셀 염소 되셔서 우리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목자의 결단을 본받아, 가장 뜨거운 믿음의 시즌인 지금, 우리가 선 땅에서 전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기를 결단합시다.

이제는 우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세상 가운데 복음의 증거를 삶으로 보여줄 차례입니다.

이현승 목사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미안해, 그 한마디가 뭐라고

저에겐 두 살 터울의 큰언니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았던 언니는 저와 말싸움하면 먼저 울음을 터트리곤 했죠. 동생 앞에서 얼마나 자존심 상했겠어요. 자매라서 치고받고 싸운 적은 없지만 사소한 이유로 종종 다퉜고 그때마다 저는 말발로 이겨야만 성에 찼더랬죠. 언니뿐 아니라 누구와도요.

그래 봤자 자잘한 다툼들인지라 뒤돌아서면 금세 풀렸는데, 스물네 살 때 했던 말싸움은 달랐습니다. 인생 통틀어 그 정도로 크게 싸운 건 처음이었죠. 당시 저는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해 금요일마다 본가로 올라오고 일요일엔 학교로 돌아갔는데요, 그날은 토요일이라 본가에서 쉬고 있는데 벌어졌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다툼이 시작됐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아요. 오고 갔던 여러 말 중에 언니가 던진 비수 하나가 저를 미치도록 화나게 했던 것만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우리 집에서 너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 너만 가장 혜택 받았잖아!” 이런 내용이었던 거 같아요.

저는 억울했어요.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저도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했고, 가계에 부담되지 않게 매 학기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으려 고군분투했거든요. 그럼에도 언니가 한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2년 먼저 태어난 큰언니는 첫째라는 책임감으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쉬지 않고 일했고 언니의 소중한 월급은 우리 가족의 생활비가 되었으니까요. 그런 언니가 보기엔, 원하던 대로 미대 입시도 준비하고 배낭여행도 다녀온 제가 부럽고 미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때는 언니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속 깊은 동생이 아니었어요.

그날 언니가 한 말에 이성을 잃은 저는 알게 됐습니다. 왜 사람들이 화가 나면 주먹으로 벽을 치는지요(웃음). “나도 못 한 거 많아! 무슨 나만!” 소리 지르며 화내는 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더라고요. 저는 주먹으로 벽을 치는 대신 화분에 있는 작은 나무를 뽑아다가 벽을 내려쳤습니다. 다음날 자취방으로 돌아와 속으로 생각했죠. 앞으로 언니와 얼굴 볼 일 없을 거고, 혹여 마주쳐도 못 본 척하며 지낼 거라고. 저도 언니도 먼저 사과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확신했죠.

그런데 며칠 뒤 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며 “은혜야, 언니가 미안해.”라는 말이 들려왔어요. 그 말 한마디에 저는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워졌습니다. 또 언니를 이겨 먹은 거죠.

“미안해”라는 세 글자에 모든 분노와 억울함, 부정적인 감정이 싹 씻겨 나가고 창피하고 고마운 마음만 남았습니다. 그릇이 큰 언니가 옹졸한 저를 품은 거죠.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언니에게 고맙습니다.

미안해, 그 한마디가 뭐라고 제가 먼저 하지 못한 걸까요. 요즘에도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인데 그 말을 하지 않고 갖은 변명만 길게 늘어놓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뒤늦게 사과하면서 사도 바울의 서신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린도후서 6장 13절).

신은혜

Good News

어느 사람이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그 안에는 가족사진, 연락처, 중요한 일정과 추억이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분실물센터에 찾아갔더니 누군가 휴대폰을 맡겨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휴대폰이 스스로 주인을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주인은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낸 것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는 공허함과 불안이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 곧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주인처럼 죄로 멀어진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휴대폰이 스스로 주인을 찾아갈 수 없듯이 인간도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됩니다.

당신은 우연히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복음은 바로 나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이며, 그 사랑의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상화평 목사

나도 건강할 수 있다

100세 시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

“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현대 의학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강수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장수 연구들은 특별한 비법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건강한 생활 습관이 노화의 속도를 늦추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노화는 나이보다 속도가 중요합니다. 같은 나이라도 어떤 사람은 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더 빨리 노화를 경험합니다. 최근 하버드 연구에서는 오메가3, 비타민 D, 규칙적인 운동이 생물학적 노화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 장수 연구가 알려주는 5가지 건강 습관

1. 베리류 과일을 드십시오.

블루베리와 딸기에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풍부합니다. 특히 딸기의 피세틴과 블루베리의 안토시아닌은 뇌 건강과 혈관 건강 유지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억력 유지와 혈관 건강, 노화 예방을 위해 하루 한 줌 정도의 베리류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2. 비타민 D를 충분히 유지하십시오.

비타민 D는 뼈 건강뿐 아니라 면역기능과 전반적인 건강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적절한 햇빛 노출과 필요시 전문가의 상담을 통한 보충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3. 근육을 유지하십시오.

근육은 건강한 노년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입니다. 걷기뿐 아니라 주 2~3회의 근력운동은 낙상 예방, 혈당 조절, 인지기능 유지에 도움을 주며 건강수명 연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4. 오메가3를 섭취하십시오.

등푸른 생선에 풍부한 오메가3는 혈관 건강을 돕고 체내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일주일에 2~3회 정도 생선을 섭취하는 습관을 권장합니다.

5. 사람들과 함께하십시오.

세계 장수촌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좋은 인간관계입니다. 예배와 교제, 봉사와 나눔은 마음의 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 성경이 가르쳐주는 건강한 삶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도 절제된 식생활과 꾸준한 활동, 충분한 휴식과 기도, 건강한 공동체 관계, 그리고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수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몸을 잘 관리하며 마지막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몸과 건강에 감사하며, 건강한 삶을 통해 주님과 이웃을 더욱 잘 섬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Dr. 설재현 집사

빛이 되리라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제가 유튜브에 제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구독자도 많이 늘고, 많은 분이 고마워해주시고 좋아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힘을 바탕으로 또 다른 SNS 플랫폼에도 새롭게 영상들을 올리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유튜브에서 잘되었으니, 여기에서도 어느 정도는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참혹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어요. 유튜브에서의 ‘구독자’와 비슷한 개념의 제 영상을 좋아해주시는 ‘팔로워’ 숫자가 30~50명 수준에서 더는 늘지 않는 거였어요. 기도도 하고, 여러 시도도 하고, 1주일에 영상 2~3개를 꾸준히 올려도 도무지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러기를 5개월을 반복했어요. 아무리 반복해도 변화가 없더라고요. 그러자 그때 드는 생각이,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이 SNS와 내 영상은 결이 맞지 않아서 안 되는 건가?’ 등이었어요. 하지만 반대로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더 해보자’라는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했습니다. 근데 신기하게 6개월째가 되니 그때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몇몇 영상에서 조회 수가 터지면서 팔로워가 늘기 시작했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기도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니까, 결과가 나타나는구나.’라고요.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생각만 하는 사람이 전체의 90%이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10%이며, 그 실행을 한 달 이상 유지하는 사람은 5%,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은 1%라고요. 달리 말하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기만 해도 그 분야에서 상위 5% 안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총회장 목사님께서도 늘 말씀하십니다. 한번 시작했으면 끝장을 보는 기필코 정신을 가지라고 말이죠. 우리, 어떤 분야에서든 목표를 정하고 끝까지 정진해봅시다.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가다 보면, 어느덧 아름답게 맺어진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거예요.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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