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사랑하라
달나라 가는 시대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가까운 이웃집에 가는 것이 아주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옛날에는 잠언 27장 10절에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처럼, 동네 우물가에서 이웃끼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손님이 왔는데 밥이 없으면 밥도 얻어오곤 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옆집 사람이 먼저 달려왔고, 힘든 일이 생기면 이웃이 함께 울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도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다. 옆집에서 노인이 고독사를 해도 모르고, 누가 이사를 왔는지 갔는지조차 모른다. 아예 관심이 없다. 그건 죄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매일 파티를 할 정도인 큰 부자가 나온다. 그런데 그 집 문 앞에는 거지 나사로가 있었다. 그러나 부자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구걸해도 귓등으로 듣는다. 세월이 흘러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다. 그런데 부자는 음부로, 나사로는 낙원에 갔다. 음부에서 힘들어하는 부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16:25). 부자가 무슨 죄를 더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다만 이웃을 돌아보지 않은 죄를 물으셨다.
부자 청년 이야기도 있다. 부자 청년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묻자, 주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마19:21)고 말씀하신다. 계명을 다 지키는 것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까지도 살펴야 온전하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웃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다. 모두가 외면한 세리와 죄인에게 다가가셨고, 병든 자의 손을 잡아주셨으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참된 이웃이 누구인지도 가르쳐주셨다. 이웃은 혈연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결정된다. 그러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챙기자(막12:31).
사랑은 관심에서부터 출발함을 잊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