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360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합심 기도의 위력

1360호 · 2026-05-31
깊은 곳에서의 울림

합심 기도의 위력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진실아, 나 회사에서 잘리게 될 것 같아. 나 좀 도와줘. 날 위해 제발 기도 좀 해줘!”

순간 저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는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좋은 직장에 다니며 늘 승승장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의심도 많아, 제가 24년 동안 복음을 전해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던 친구였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울면서 제게 전화해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그때 제 마음에 누가복음 11장 5절부터 8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한밤중에 벗을 찾아가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강청했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도 누워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강청했고 마침내 필요한 것을 얻게 됩니다. 저는 제 친구 역시 밤중의 그 사람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제게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함께 기도하자! 두 사람이 합심하면 응답하신다고 하셨어! 이번 일을 통해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날부터 우리는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는 말씀을 친구에게 보내며, 사람의 눈에는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친구는 태어나 처음으로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마음을 지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친구를 건져주셨습니다. 구조조정의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닥칠 때마다 우리는 합심하여 기도하였고, 그때마다 길이 열리고 문제가 풀려가는 것을 보며 친구는 말했습니다. “진실아, 예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 이제는 내 가족과 친구들을 전도할 거야. 날 위해 기도해줘서 정말 고마워!” 24년 만에 예수님을 만난 그녀는 지금 하루하루를 감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혹시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있습니까? 함께 나누며 기도할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합심하여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마18:19). 반드시 기적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김진실 사모

영생에 이르는 길

움직이는 신앙, 달리는 신앙

요즘 동료 전도사들과 ‘예수중심 러닝크루’를 조직하여 달린 후 인증샷도 공유하고, 마라톤 대회에도 종종 출전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잘 관리된 ‘주의 종’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육체”라는 말씀을 듣고도 관리하지 않는 것은 주의 종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움직여야 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운동할 때 엔도르핀

(고통 완화), 도파민(의욕 상승), 옥시토신(충만감), 세로토닌(평안함) 등 다양한 행복 호르몬이 나오게 하신 것도 창조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또한 언제나 동적입니다.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으며, 일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육체는 움직일 때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건강해집니다. 몸을 움직이고, 힘들어도 사명의 자리로 나아갈 때, 전도하러 거리로 나갈 때 우리 안에 기쁨과 새로운 에너지가 넘쳐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신앙생활을 ‘푯대를 향한 달리기’로 인식했습니다(갈5:7, 빌2:16). 그러나 죄는 우리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 주저앉히는 ‘모래주머니’와 같습니다. 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 얽매이기 쉬운 죄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매일 기도와 전도의 달음박질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움직여야 영도 살고 사명도 삽니다.

기도원 집회에 이어 필리핀 집회, 대구집회까지 하신 목사님을 볼 때마다 늘 신선한 도전을 받습니다. “달리던 말은 달리다 죽어야 한다.”는 말씀이 유독 가슴에 깊이 와닿는 요즘입니다.

우리,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영육의 스위치를 켜고 힘차게 달려갑시다.

문천명 전도사

생명의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얼마 전 어버이날, 자녀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받았다. 그중에 카네이션 화분꽃은 못다 핀 꽃봉오리들이 많아 아직도 싱싱하니 볼 때마다 흐뭇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학교 활동으로 만들어오던 꽃과는 감흥이 남다르다. 훌쩍 커버린 세 자녀가 서로 의논하고 분담하는 자발적인 선물들이라서 더없이 가치가 느껴진다. 화분꽃을 사들고 온 둘째 아들이 하는 말이, “카네이션 꽃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시라고 고민 좀 했어요. 그래서 꽃봉오리가 아직 덜 핀 싱싱한 걸로 골라봤어요!” 한다. 이제는 의무감이 아닌, 자기 나름의 고민과 자발성이 들어간 일이라 사람을 감동시킨다. 부모가 받아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도리어 흐뭇해한다. 받기만 하는 사랑이 아닌, 주는 사랑을 점점 배워가는 것 같아 보람이 있다.

자녀들이 자라나는 공교육 기관에선 부모님에 대한 올바른 도리와 이치를 가르치니 어릴 때엔 의무적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마치 몽학선생이 신앙 초보자들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약조건(율법) 앞으로 이끌어다 놓는 것과 같다. 처음엔 의무감으로 시작할 수 있으나, 점점 상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더 큰 기쁨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며 성숙해가는 거다. 이젠 의무감에서 사랑으로 행동양식이 바뀌었다.

누군가는 기독교가 ‘노예종교’와 같다고 말했다. 어떤 도덕법의 제약 안에서 자유 없이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약자들의 종교라고 말이다. 거기서 해방 받으라고 촉구한다. 그런데 그것은 진정한 자유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그런데 그 진리이신 예수님(요8:36, 요14:6)을 만나면, 이젠 더 이상 의무감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으로 그 법을 따라가게 만드신다. 상대의 뜻대로 행하는 건데도, 제약 조건들을 도리어 기쁘고 감사하게 수긍하니 진짜 자유를 맛본 거다. 예수님은 우리의 실수를 채근하거나 형벌로만 몰아세우지 않으시고 넓게 용서하시고 받아주신다. 늘 새로운 기회로 우리에게 자발적인 자유를 주신다. 그러니 내 삶의 주인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 즐거움을 점점 더 알아가는 즐거운 여정 길인 것이다.

송직화 목사

Good News

어느 마을에 평생 편지를 배달하던 늙은 우편 배달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네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떤 집에는 합격 통지서를, 어떤 집에는 병원비 고지서를 전달했습니다. 사람들은 편지 한 장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우편배달부는 낡은 집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집에는 오랫동안 세상과 마음을 닫고 살던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우편배달부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좋은 소식입니다.”

편지에는 오래전에 집을 떠난 아들이 쓴 짧은 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먼저 용서를 구합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노인은 그 한 줄을 읽고 굳게 닫혔던 문을 열었습니다.

복음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멀어진 우리에게 보내신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부활로 새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 소식은 착한 사람에게만, 특정인에게만 주어지는 초대장이 아니라 빈부귀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지치고 상한 모든 영혼에게 주어진 은혜의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좋은 소식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마음의 문을 조금만 열어도 주님은 책망보다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종교 하나를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3:7).

상화평 목사

치우치지 않는 저울

끝까지 항해를 완주하게 하는 힘, 겸손

겸손은 생존의 지혜이자 신앙의 근본입니다.

삼국지를 보니 겸손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말합니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긴 항해에서도 이 말은 진리입니다. 주역의 64괘 중 지산겸(地山謙) 괘는 높은 산이 땅 아래로 자신을 낮춘 형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겸손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은 유비의 성패를 통해 보는 겸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겸손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유비는 수십 년간 여러 군주 밑에서 자신을 낮추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성경의 다윗 역시 사울 왕에게 쫓기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을 죽은 개나 벼룩처럼 낮추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겸손은 비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엎드리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높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장 위험한 순간은 겸손을 잃어버린 성공의 때입니다. 그토록 겸손했던 유비도 황제가 된 후에는 신하들의 충언을 무시하고 독단에 빠졌습니다. 결국 관우의 복수라는 감정에 치우쳐 이릉대전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경고합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겸손했으나 왕권이 견고해지자 교만해져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내린 교만한 결정은 한순간에 모든 항해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셋째,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주역의 지산겸이 산이 땅 밑으로 숙인 형상이듯, 성도의 겸손은 나의 의지와 고집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두는 것입니다. 유비 곁에 조운과 진밀 같은 충신이 있었듯, 우리 곁에는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이 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앞설 때, 그 음성에 순복하며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자가 끝까지 살아남고 승리하는 입지전적인 인생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항해에서 가장 무서운 암초는 외부의 풍랑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지만, 겸손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습니다.

유비가 잃어버렸던 그 겸손, 주역이 말하는 지산겸의 지혜를 넘어,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웁시다. 2026년, 낮은 곳에 머물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때가 되면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끝까지 완주하는 복된 항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여, 성공의 때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게 하소서. 내 감정과 고집이 앞설 때 멈춰 서서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겸손을 주소서. 2026년 한 해 동안 겸손의 허리띠를 매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6).

최연식 목사

136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선교지에서 보낸 편지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