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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호 목차 › 객원컬럼

분수(噴水)가 되어라

1360호 · 2026-05-31

사랑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순리적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마치 거대한 폭포수가 낙하하듯, 혹은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듯 자연스럽고 강렬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보다 더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그분은 폭포수보다 깊고 힘차게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그 거대한 사랑의 물줄기가 정점에 달한 확증입니다.

그러나 반대 방향이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올리는 사랑입니다. 슬프게도 이 사랑은 가만히 있으면 아래로 가라앉고 맙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늘 내 일, 내 가정, 내 유익을앞에 두고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분수(噴水)’와 같아야 합니다. 분수가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을 향해 물을 뿜어 올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모터의 압력이 필요하듯, 우리의 사랑도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에는 지식, 감정, 의지의 요소가 공존합니다. 때로는 말씀을 아는 지식으로 즐겁고, 때로는 뜨거운 감동을 받아 감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시험대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 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에게 무슨 지적인 이해가 있겠고, 아들을 바쳐야 하는 극한의 고통 속에 무슨 기쁨의 감정이 남아 있었겠습니까? 지식도, 감정도 멈춰버린 절망의 순간에 아브라함을 움직인 것은 오직 ‘의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라는 사실만 붙들고 발을 내디뎠던 그 의지적 순종을 보시고서야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며 여호와 이레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창22:12).

시편 111편은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노래입니다. 나라도 잃고 성전도 파괴되었던 절망의 시간을 통과한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의지’였습니다. 시인은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4절)”라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현실의 급박함 때문에 수없이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지만 시편 111에서 노래합니다. 광야에서 양식을 주셨던 일(5절),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던 일(6절)을 기억해내라고 말합니다.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인 이유는 그 뿌리가 하나님의 생명수를 향해 뻗어 나가는 ‘의지적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폭포수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분수 같은 의지의 사랑으로 응답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내 삶의 의지의 모터를 다 돌려 순종의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늘을 향해 힘차게 사랑의 분수를 뿜어 올리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영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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