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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사춘기(思春期)를 잘 극복하자

1344호 · 2026-02-08
신앙논객

신앙의 사춘기(思春期)를 잘 극복하자

‘사춘기(思春期)’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어린이에서 성인, 즉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사춘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 즉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의 시기라고도 한다. 어릴 적에는 뭐든 재미있고 내 뜻대로 다 되는 것 같아서 마냥 좋았는데, 학교에 들어가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면서, 또 몸의 변화를 겪으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생기면 감정이 격해지고 가족이나 학교생활 등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들에 의심과 회의, 심하면 부정과 탈선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함께 동역하는 청년,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신앙에도 사춘기가 있음을 느낀다. 처음 신앙생활 할 때는 또래 친구들 만나 재미있고, 뭔가 크고 작은 소원들이 이루어지면서 마냥 행복한 줄 알았는데, 성인이 되고 학업과 취업(사업), 가정을 이루는 등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하나님과 교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 꼭 이렇게까지 자주 예배드리고 열심히 기도해야 하지?’,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지?’

보통 이런 청년들을 만나고 상담을 하게 되면 필자가 꼭 해 주는 얘기가 있다. “나도 그랬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도 청년 시절, 우리 교회와 목사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성경과 다수의 서적들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 검증을 시도했었고, 부서 활동 중 원치 않던 상황과 현실 앞에서 잠수를 탄 적도 있다. 스스로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괜히 주변 교역자분들이나 선배들에게 따지거나 언쟁하기도 했다. 감사한 것은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모난 부분들을 깎아내셨고, 무엇보다도 그 어떤 누군가의 하나님이 아닌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으로서 나를 만나 주신 것이다. 바람 불면 꺼질 촛불과 같던 나의 신앙을 하나님은 사춘기를 통해 질풍노도를 견뎌 내는 등불로 바꿔주셨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에도 그분을 의심했던, 그리고 부인하고 도망쳤던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위대한 순교자들이 되었다.

신앙의 사춘기는 때와 기간은 다를지언정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잘만 극복하면 요동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신앙에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어른이 되자.

신혁주 전도사

아름다운 인생

찾아내시는 사랑

우리 교회 한 청년의 말이다.

어느 날 대표님이 청년의 이름을 부르며 업무를 지시하셨는데, 많은 사원들 속에서 자신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처럼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은 삶에 커다란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는 성도를 기억하시고 각각의 형편을 세심히 살피시는 총회장 목사님의 사랑과도 결이 같다.

“나 길을 잃고 헤맬 때, 그 사랑 날 찾아내셨네.”

평소 즐겨 부르는 찬양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다. 특히 나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찾아내셨다’는 부분은, 우리를 분명한 목적으로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문득 혼자라는 생각에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고,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겠다는 확고한 사랑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그 사랑의 목적을 확실하게 밝히셨다.

행구 속에서 사울을,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죄를 짓고 스스로 숨었던 아담을 찾아내셨던 그 사랑이 오늘 우리를 찾아내셨다. 그리고 그 은혜는 성경의 한 장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과 살아 숨 쉬는 이 순간도 끝까지 나를 찾아내어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사랑이 여전히 나와 함께하시기에 오늘도 걸어갈 용기를 얻으며 감사의 고백을 드린다.

김혜리 교육 전도사

생명의 말씀

내가 서 있는 땅이 기름지려면!

사람들은 묻는다. “어떤 땅에 서야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어디에 서 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서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을 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진다. 성경은 두 사람을 소개할 때 공통된 표현을 사용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24:1),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므로”(창26:12). 문장의 주어는 언제나 하나님이다. 복은 사람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의 출발은 복을 주시는 분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복의 구조를 알고 있었다. ‘땅이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첫째, 조건 없이 순종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떠났고, 이삭은 흉년 속에서도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 앞에 머물렀다. 순종에 조건을 달지 않았다. 조건을 붙이는 순종은 거래(협상)이지만, 조건 없는 순종은 신뢰다. 자기중심의 신앙은 늘 계산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말씀 앞에서 “아멘”으로 멈춘다.

둘째, 그들은 다투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양보했고, 이삭은 파는 우물마다 빼앗겨도 물러섰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복은 빼앗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세상은 이삭을 향해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창26:28).

셋째, 그들은 예배를 놓치지 않았다. 예배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 중심 이동이다. 내 중심의 삶에서 내가 내려오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서는 사건이다. 예배가 무너지면 삶은 무너진다. 그러나 예배가 살아 있으면, 광야 같은 땅에서도 인생은 기름진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복을 만들려 애쓰지 않았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을 뿐이다. 반대로 야곱은 복을 만들려다 인생이 꼬였고, 다윗은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자체를 복이라 고백했다(시23:1). 결국 복은 관계의 문제다.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가?” 이 질문이 내가 서 있는 땅의 미래를 결정한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척박하게 느껴진다면, 땅을 바꾸기 전에 관계를 돌아봐라.

임택함 목사

내가 매일 기쁘게

사랑하면 들려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한 출연자가 ‘기도 제목’이라는 단어를 말하자, 화면에는 ‘기도 제목(?)’이라며 물음표 자막이 달렸다. 교회 안에서는 숨 쉬듯 당연하게 쓰이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해석이 필요한 낯선 단어였던 셈이다. 세상과 묘한 거리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또 다른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이다. 감독 특유의 웅얼거리는 발음 때문에 젊은 선수들이 이따금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함께한 제자들은 달랐다. 감독의 작은 중얼거림에도 작전과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의 깊이가 어눌한 발음조차 선명한 메시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유초등부 시절,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는 내게 높은 벽이었다. 특유의 쇳소리와 쉼표 없는 전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에 가까웠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음성 너머에 담긴 하나님의 열정과 진심이 들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속에서 큰 은혜를 누리고 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말씀에 자주 노출되어야 한다. 익숙해져야 들리기 마련이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자리에 나를 계속 머물게 할 때, 낯설었던 하늘의 언어는 비로소 나의 일상 언어가 된다.

둘째, 하나님과 친해져야 한다. 제자가 스승의 의중을 찰떡같이 알아듣듯, 우리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우정을 쌓아야 한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작은 숨소리에 담긴 의미까지 알게 되는 법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세상의 소음은 줄이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자. 서툴더라도 자꾸 듣다 보면, 어느덧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세밀한 속삭임이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들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전호정 집사

한국교회사

제주선교의 선구자 이기풍 목사

이기풍 목사님은 1868년 11월 21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치 있고 슬기로워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그는 사납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혈기가 왕성해지자 사나운 기운을 여지없이 발휘하기 시작하였고, 박치기와 돌팔매질의 명수로 이름을 날렸다.

1885년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평양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위정척사운동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서양인을 경계하였고, 청년 이기풍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집을 나서다 코 큰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분은 사무엘 마펫 선교사였는데, 이기풍은 친구들과 떼 지어 몰려가 그의 집에 돌을 던졌다. 또한 마펫 선교사가 장터에서 무슨 책을 들고 서툰 조선말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반사적으로 발밑의 돌을 찾아 힘껏 날렸다. 날아간 돌이 마펫 선교사의 턱에 정통으로 맞았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기풍은 쓰러진 그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시치미를 떼고 그 자리를 떠났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이기풍은 원산으로 갔다. 거기서 스왈론 선교사를 보았는데, 스왈론 선교사를 보고 이기풍은 자신이 돌로 쳐서 피 흘리게 했던 마펫 선교사가 떠오르면서 마음에 괴로워하였다. 하루는 마루에서 그 일을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방안이 환해지더니 머리에 가시관을 쓴 분이 나타났다. 너무도 환하게 빛나는 그분을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 너무나 놀라서 깨어보니 꿈이었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이기풍은 그 자리에 엎드렸다. 과거에 지은 수많은 죄가 자꾸만 머리에 맴돌면서 회개의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분의 증인으로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스왈른 선교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스왈른 선교사는 그의 체험을 듣더니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었다. 복음은 그를 감격시켰고 그의 내면에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는 즉시 복음을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부터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핍박자의 삶에서 전도자의 삶으로 바뀌었다.

이후 이기풍은 스왈론 선교사의 조사 역할을 하며,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고, 설교와 각종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1898년부터 약 4년간 성경을 판매하고 보급하는 매서인이 되어 복음을 전했다. 1903년 신학교에 입학하여 5년 후 목사안수를 받고 초대 한국인 목사 7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목사 안수 후, 총회에서 이기풍 목사님의 제주도 선교사 파송을 결정했다. 당시 제주도는 탐라국으로 불리는 외국과 같은 땅이었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더구나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제주도 사람들은 예수교를 굉장히 꺼렸다. 그러나 윤함애 사모와 마펫 선교사의 격려와 기도로 조선장로교회의 첫 번째 선교사로서 제주도에 파송되었다.

전도 초기에 너무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죽을 만큼 두들겨 맞기도 하고, 제주도 사람을 야만인 취급하였다고 하며 청년들이 목을 졸라 죽이려고도 하였다. 영육이 약해진 이기풍 목사님은 평양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마펫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기풍 목사, 당신이 때린 내 턱의 흉터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으니, 이 흉터가 아물 때까지는 분투 노력하시오.” 이 편지를 읽은 이기풍 목사님은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고, 그 후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영적 투쟁을 감당했다.

당시 제주도에는 처녀를 뱀에게 바치는 악한 풍습이 있었다. 이기풍 목사님은 처녀를 바치는 날, 처녀를 삼키러 내려온 커다란 구렁이를 단신으로 때려잡았다. 1909년 5월 큰 홍수 때, 물에 빠진 여인을 건져내는 사건으로 제주도 도민들 사이에 이기풍 목사님에 관한 좋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전도하였다.

그는 농사철에는 농사일을 돕고, 특히 장례를 치러주면 그 가정이 예수를 믿었으며, 사모는 여인들이 해산할 때 조산원으로 돕고 병자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한 청년이 정신이 이상하여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자 경찰들은 손쓸 방법이 없어 이기풍 목사님에게 보냈었다. 그의 기도에 귀신 들린 정신병자가 치료되면서 ‘목사가 병을 고쳤다’는 소문에 각색 병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성안교회가 설립되었고, 드디어 부흥이 시작되었다.

1934년부터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1938년 9월에 장로교까지도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는데, 이기풍 목사님은 신사참배에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그는 성도들에게 죽어도 절하지 말라며 순수한 신앙을 가질 것을 항상 강조했다. 70세 이상은 취조와 고문이 법률로 금지되었지만, 이기풍 목사님은 뼈와 가죽만 앙상하게 남을 때까지 심한 고문을 당했다. 초주검 상태가 된 이기풍 목사님에게 출감조치가 결정되었지만, 나머지 목사님들이 출감하기 전까지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이기풍 목사님은 여수 남면 우학리 섬에 있는 목사관으로 옮겨졌고, 마지막 성찬예식을 거행하고 일주일 뒤, 1942년 9월 20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죽음은 신사참배에 저항하다 순교한 많은 신앙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기풍 목사님의 생애는 회심의 감격과 복음을 향한 열정,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믿음, 그리고 시대적 아픔 속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킨 위대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의 헌신과 순교적 삶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김종춘 목사

빛이 되리라

작년은 어떠셨나요?

2026년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갑니다. 지난 한 해를 잘 점검하고 돌아보아야 새로운 한 해도 더 잘 시작할 수 있을 텐데요. 여러분의 지난 한 해는 어떠셨나요? 우리가 함께 외치며 달려온 표어처럼,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은 한 해가 되셨나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 하나라도 새롭게 성공했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은 거로 생각해도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저도 여러 가지 전대미문의 축복을 하나님이 주셨던 거 같아요. 예전의 저는 10분 정도의 달리기도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5km 마라톤을 두 번, 10km 마라톤을 한번 완주했고, 최대로는 2시간 가까이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근력과 체력을 얻었습니다. 꾸준히 주4~5회씩 러닝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또 과거에는 새벽에만 기도하다가, 저녁 노량진 기도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하루 2시간 이상씩 기도의 양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안 하던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할 기회가 있었고, 사업도 아직 작은 규모지만 두 배로 성장했고요. 안 하던 영어 공부도 다시 하고, 성경 암송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워했던 일기 쓰기도 감사 일기 형식으로 매일 쓰고 있고요. 작다면 작고 많다면 많은 일들이 새롭게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제 힘으로 한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요. 예전에 이시대 목사님 설교 중에, ‘내가 한 모든 것에 나의 공로는 없다. 다 하나님의 공로다. 하나님이 사지 멀쩡하게 지켜주시고 건강하게 하시고 마음도 주셔서, 우리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거다.’라고 하셨거든요. 결국 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한 해는 지나갔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혹시 작년에 만족할 만한 성취가 없었더라도 올해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우리가 서 있는 땅부터 기름지게 해보자는 각오로 함께 달려가면 좋겠습니다. 기도와 노력, 두 가지 양손에 꼭 쥐고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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