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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적보다 무서운 것이 무능한 지휘관이다(잠9:7~9)

1344호 · 2026-02-08

2026년 예수중심교단 목회자 세미나에서 전국과 해외에서 온 목회자들에게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적보다 무서운 것이 무능한 지휘관이다.”

이는 지휘관의 능력은 한 나라의 국운을, 한 단체의 존폐를 좌우할진대, 리더의 잘못된 판단과 역량 부족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이 이끄는 사자 부대보다 사자가 이끄는 양의 부대가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역량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무능한 지휘관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우(愚)가 있습니다. 바로 용인술(用人術)에 어둡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 사람을 제대로 기용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저 학벌이나 보고, 혈연이나 지연, 학연에 치우쳐 사람을 쓰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사람을 잘못 쓰면 짐이요, 낭패일진대, 그래서 성공한 농사꾼은 씨앗부터 고르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딤전5:22). 사람을 아무나 쓰지 말라는 경고의 말입니다.

아무나 쓰면 안 됩니다. 써야 할 사람인지, 도와줄 사람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제가 해외집회 초창기 때는 일행이 거의 열 명 가까이 됐습니다. 그런데 다니다 보니 힘이 되는 게 아니라 짐이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딱 두 명 데리고 다닙니다. 차별이 아니라 구분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시니 아무나, 누구나 쓰셨을까요? 아니요, 철저히 골라 쓰셨습니다. 제자를 택할 때 감정적으로 아무나 택한 것이 아니라 기도 후에 제자를 고르셨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3:13~15).

마태복음 13장에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13:47~48)는 말씀이 있지요? 쓸 만한 사람을 골라 쓰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써야 할까요? 유능한 지휘관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골라 쓸까요? 출애굽기 18장에 나오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참고해보겠습니다. 이드로는 말합니다.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출18:21~22).

첫째, 유능한 지도자는 재덕을 겸비한 자를 씁니다. 재덕(才德)이란, 재주와 덕을 갖춘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재를 찾아 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덕까지 갖춘 자면 금상첨화겠지요.

세상은 인재 제일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인재를 조금 경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겸손이란 틀로 그들을 가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인재를 써야 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 해야 능률적이지 않겠습니까?

둘째, 유능한 지도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절대 악을 행치 않고, 죄를 짓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쓴다면 그로 인해 단체가 공멸할 수 있습니다.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 때문에 배가 침몰했고요, 아간 하나로 인해 전쟁에서 대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요셉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게 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 단체에 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요셉으로 인해 애굽이 복을 받은 것처럼.

그리고 저는 여기에 덧붙입니다. 셋째, 유능한 지휘관은 좋은 사람보다 분명한 사람을 씁니다. 저는 좋은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사람, 법 없이도 산다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시아버지가 열둘이다’라는 말은 심한 욕입니다. 분명해야지요.

여호수아 24장은 여호수아가 자신의 최후가 이르렀음을 알고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마지막으로 유언하는 장면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호한 어조로 결단을 촉구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24:15). 양다리 걸치지 말고 신앙에 분명하라는 말입니다.

요즘 교회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압니까? 지도자인 목사의 신앙 노선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충만의 신앙, 타종교와 타협하고 손을 잡는 뜨뜻미지근한 신앙으로 가기 때문에 양떼들이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법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넷째, 유능한 지휘관은 게으른 자를 쓰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6). 이에다 식초를 들이부으면 어찌 될까요? 눈에 연기를 피워대면 눈을 뜰 수나 있을까요?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게으름은 인생의 암입니다. 암은 얼른 잘라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한 달란트를 그대로 방치한 종을 주인이 잘라내지 않습니까? 그건 매몰찬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사과박스에서 사과 하나가 썩으면 다른 사과까지 다 썩게 됩니다. 그러니 얼른 끄집어내야 나머지 사과를 살릴 수 있습니다.

다섯째, 부정적인 자를 쓰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도 안 했는데 안 된다고 하는 사람 있지요? 저는 그런 자와 절연합니다. 생선 가게에 오래 앉아 있으면 몸에 생선 냄새가 배는 법, 부정적인 자와 함께 있으면 매사 부정적으로 되어 ‘안 된다’,

‘못한다’가 나도 모르게 몸에 뱁니다.

생각이 썩은 자에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긍정적인 사람, 의욕적인 사람을 채용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사고에서 창의력이 발동되고, 상상력이 발휘되어 꿈같은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섯째, 조급한 자를 쓰지 않습니다. 제가 70년이 넘도록 조급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조급한 자의 결말이 어떠한지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잠20:21),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잠19:2). ‘빨리빨리’와 ‘조급’은 다릅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5). 빨리빨리 하는 것은 사전계획과 준비가 치밀할 때 가능합니다. 준비와 계획도 없이 무대포로 후다닥 하는 것은 조급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지도자는 사람을 분별하여 적재적소에 앉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일하는 것입니다. 곧은 뿌리가 나무를 지탱하나 영양분을 빨아들여 나무를 성장시키는 것은 잔뿌리가 하는 것처럼. 예수중심교단이라는 나무를 강력하게 지탱하고 있는 곧은 뿌리는 총회장 목사인 저입니다. 그리고 교단의 모든 교역자, 재직, 직원들이 잔뿌리입니다. 그들이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수행할 때 예수중심교단이라는 나무가 창대해지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7:28). 사람을 얻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더욱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곧 경쟁력이요, 힘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경영은 관리요

관리는 점검이다

무능한 지휘관에게서

지휘봉을 뺏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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