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름은 ‘마패’와 같습니다
예수 이름은 ‘마패’와 같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왜 예수 이름의 권세를 매 순간 사용하지 않니?” 저는 예수 이름을
‘아플 때만 쓰는 것’으로 여겼기에, 그 권세를 스스로 제한해온 제 모습을 돌아보며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모든 문제에 예수 이름을 사용해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집 안에 모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포했습니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기는 내 눈앞에 나타날지어다!” 그러자 정말로, 그토록 성가시던 모기가 제 눈앞에 딱 나타났고, 곧바로 그것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귓속에서 귓밥이 떨어져 달그락거려 몹시 불편하던 순간, 예전 같으면 자연히 빠져나오기를 기다렸을 제가 “예수 이름으로 이 귓밥은 사라질지어다!” 선포하자 그 즉시 소리가 멎은 일. 평상시 주차장이 늘 붐비는 장소로 가는 길에, “예수 이름으로 주차 자리는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했더니 도착하는 순간 빈자리가 보였던 일. 노트북이 갑자기 작동되지 않았을 때 예수 이름을 선포하자 화면이 다시 켜졌던 일 등,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는 큰 문제나 아플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 작은 일들까지도 역사하시는 실제적인 능력임을 깨달았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좋지 않은 일의 원인은 결국 귀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의 경중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나는 교회도 다니는데 왜 그런 능력이 없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란 단순히 교회만 드나드는 이들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고요. 성령을 받은 자에게 주어진 권세가 바로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악한 영을 내쫓을 수 있는 권세가 생깁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1:8). 이 ‘권능’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자녀의 권세, 즉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합니다.
성령 충만함은 오직 기도에 있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늘 깨어 기도하여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마음껏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김진실 사모
하나님의 공평하심
어느 전도사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정하고 공평하게 봉사하려면 하지 마라. 봉사는 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봉사엔 공정과 공평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정함이 있어야 불만 없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저에게는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유사한 일화가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일행을 자기 집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마르다는 분주히 준비하는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를 자기와 함께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요구를 하였는데, 예수님은 같이 일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자기가 선택한 것에 충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일하든 안 하든 거기에 신경 쓰거나 불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얼핏 형평성에 어긋나 보입니다. 하지만 봉사의 초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고, 남들이 무엇을 하든 관계없이 내가 일한 만큼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법칙을 따르기에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공평하고 공정한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은 후, 기도원 집회 기간에 맡은 일은 많았지만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우리 일에만 집중했더니 기쁨과 은혜 가운데 적은 인원으로도 거뜬히 해내고, 심지어 다른 팀들도 도와줄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타인을 바라보지 않고 불평 없이 하면 주님을 위해 더 많은 일들을 하여, 금세와 내세에 축복과 면류관을 받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최성경 전도사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어느 추운 밤, 아라비아 사람이 천막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때 낙타가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주인님, 너무 추워서…, 머리만 잠깐 넣어도 될까요?” 안쓰러운 마음에 허락하자 낙타는 조금 뒤 앞다리까지 들이밀며 “이번엔 다리가 너무 아픕니다.”라고 했고, 주인은 또 허락했다. 결국 낙타는 온몸을 천막 안에 들여놓고 찬바람이 들어온다며 주인을 밖으로 내몰았다. 이제 천막엔 낙타만 남았다. 이 짧은 우화는 ‘작은 허용이 큰 패착을 낳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잘못된 것을 처음부터 단호히 거절하지 않으면 결국 삶 전체를 잠식해버린다.
죄는 처음엔 아주 작다. 사람이 처음부터 큰 죄를 계획하지는 않는다. 대개는 아주 작은 타협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죄를 합리화하고, 작은 틈을 허락하면서 서서히 죄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낙타가 머리를 들이미는 것처럼 죄는 조용히,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다가온다. 그러나 그 작은 틈이 결국 내 삶 전체를 차지하고 만다.
성경은 이렇게 경고한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아니하고”(히12:4). 죄와의 싸움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작은 유혹을 허용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바로 낙타의 머리를 들이는 순간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으면 결국 앞다리, 몸통까지 들어온다. 작은 거짓말, 작은 음란, 작은 분노…, 사소해 보이지만 그 틈을 통해 죄가 마음에 자리 잡는다. 습관이 형성되기 전에, 행동으로 굳어지기 전에 멈춰야 한다. 내 마음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작은 유혹부터 단호히 거절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잠4:23) 하셨다.
우리 마음과 삶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이 성전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처음부터 작은 죄를 거절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깨어 있으며,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 점검받을 때 우리 마음의 천막은 안전하다. 낙타가 처음부터 머리를 들이밀지 못하게 했다면 주인은 천막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죄의 작은 틈을 허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단호히 거절할 때, 하나님이 우리 삶과 마음을 지켜주신다.
임택함 목사
어른이 죽게 되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인생의 영혼은 위에서 왔기에 위로 돌아가고,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매한 자는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돌아갈 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부지불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지혜로운 자는 오늘 살다가 내일 죽어도 한 점 후회함이 없도록 돌아갈 날을 준비하고 살아갑니다.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 복락의 천국이요, 믿지 않는 자는 영벌의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영생을 위하여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 바쁜 일 끝나면 믿겠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바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생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자동차 보험은 사고가 나기 전에 가입해야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도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죽고 나면 땅을 치며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바깥세상을 준비하는 것처럼 이 땅에 살아가면서 죽은 뒤에 가게 될 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도 못 가고, 벼슬로도 못 가며, 마음 착해도 못 가고, 어여뻐도 못 갑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돌아갈 날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상화평 목사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올 11월 초, 추계산상집회에서 총회장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둘째 날 저녁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을 언급하셨습니다. 한나, 수로보니게 여인, 히스기야, 그리고 누가복음 11장에 등장하는 떡 세 덩이를 빌리기 위해 강청하는 사람까지요. 이들은 모두 절박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움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졌다는 겁니다. 한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성전에서 기도하는데 제사장인 엘리에게 주정뱅이 취급을 받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으로부터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줄 수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당신은 곧 죽고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11장에 등장하는 사람은 친구에게 빵 세 덩이를 간청했지만, 귀찮게 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말을 듣습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기도하고 두드리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합니다. 자존심을 긁거나 부탁을 거절합니다.
보통 이런 일을 겪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대다수는 상처받고 돌아서거나 낙담하고 좌절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달랐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거절하고 자존심을 건드려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목표와 목적을 바라보며 다시 문을 두드립니다. 이들은 모두 꺾이지 않고 두드림 끝에 원하는 것을 얻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 점은, 하나님은 한번 꺾었을 때 내 마음이 어떠한지를 보신다는 겁니다. 안된다고, 죽는다고, 끝났다고 거절하는 말 앞에서 진짜 꺾이는지 아니면 절박한 심정으로 그것을 뛰어넘는지요.
내가 어떤 목표를 설정하면 꼭 마음을 흔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누군가 부정의 말을 할 때 절대 동의하지 마세요. 나의 자존심을 건들 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이때 무엇보다 내 마음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믿음을 잘 지켜서, 반드시 전대미문의 축복을 받는 2025년이 되길 소망합니다!
전소희
우리, 감사를 습관화해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릴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도, 바쁜 일상에 치여 감사 자체를 잊을 때가 많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요? 먼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기쁨과 감사가 자동으로 흘러넘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우선이겠고, 그다음으로는 감사가 일상이 되도록 우리 삶의 습관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감사를 습관화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눈으로 자주 보는 것입니다. ‘지금 기뻐하고 지금 감사해^^’와 같은 문구를 집안 곳곳에 출력해 붙여 놓으면, 오고 가면서 자연스레 보게 되고, 한 번 더 감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냉장고 앞에 붙여 놓으면 음식을 꺼낼 때마다 웃으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고, 방문이나 화장실 문 앞에 붙여 놓아도 자주 보고 감사할 수 있어요.
감사를 습관화하는 또 다른 방법은 감사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일기 이야기만 나와도 부담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는 것 압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틀만 한번 잘 만들어 놓으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루에 30초, 1분만 투자하면 되고요. 저는 주로 PC 앞에 오래 있다 보니 엑셀로 감사 일기 양식을 하나 만들어 두었습니다. 아주 간단해요. 왼쪽엔 날짜, 오른쪽엔 감사 내용만 있고요. 감사할 일이 떠오를 때 잠깐 시간 내서 타이핑만 하면 됩니다. 파일은 항상 열어두고요. 각자의 상황과 환경이 다르니 나의 상황에 맞게 틀을 잘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핸드폰 메모 앱에 간단히 기록해도 좋고요.
감사 일기를 쓰니 하루가 정리도 되고, 하나님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불만스러운 일이나 안 풀리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 보시라고 감사 일기에 감사하며 적습니다. 오랜 시간 감사의 씨앗을 심어 나가면 더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거두리라 믿으면서 말이죠.
우리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감사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함께 노력해보면 좋겠습니다. 같이 도전해봐요.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