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소망
천국 소망
오래전, 하나님 품을 떠나있다가 돌아왔을 때였다. 꿈에 돌아온 탕자와 같은 나를 위해 천국 잔치가 열렸고, 예수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국진아, 앞으로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들을 겪을지라도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겠니?” 곧바로 “네, 예수님!”하고 대답하자 활짝 웃으시며 기뻐하시던 꿈이었다.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어렵고 답답할 때면 이 꿈이 떠오른다. 가끔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싶을 때는 ‘내가 할 것인데 왜 그러느냐’, ‘긍휼히 여겨라’고 하신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요나는 적국의 도시인 니느웨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게 된 것이 잔뜩 성이 났지만, 하나님은 그 도시에 있는 백성들, 심지어 육축까지도 아끼신다고 하셨다(욘3:10).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알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면서까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셨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그 사랑을 잊어버리면 마음이 딱딱해지고 만다.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며 복음을 전하시던 목사님께서 어느 날 중국 공안에 잡혀 모진 고문을 받으셨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각종 고문을 오로지 눈물의 기도와 찬송으로 견디고 나오신 목사님은, 인간적으로는 그들이 용서되지 않고 그 근처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일했단다.’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만 하셨다. 몇 년 후, 다시 방문하게 된 그 도시에서 목사님은 자신을 악독하게 고문했던 그 고문관들이 자신이 고문받으면서도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회심하여 목사와 신학생이 된 것을 직접 보고 들으며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혼 구원의 큰 그림을 그리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신실하게 일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주님 말씀대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던, 그러지 않던, 주님 만날 그 날은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온다. 그날 주님 얼굴 뵈올 때, 우리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그날 그 시 부끄러움 없기 위해서는 지금 눈물을 뿌리고 애통할지라도 주님 말씀에 힘써 순종해야 한다. 감정은 내려놓고 주님 말씀을 따라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주께서 주시는 큰 위로와 기쁨 또한 우리 삶에 충만할 줄로 믿는다. 할렐루야!
이국진 사모
King of Kings-왕 중의 왕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King of Kings)’를 최근에야 보았다. 과연 기독교 영화사에 신기록을 세운 작품다운 가치가 있었다.
“아버지, 이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저를 보내신 이유를 알게 하소서.” 이 기도대로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인간들이 구원자이신 당신을 하나님이 보내셨음을 믿게 하고, 잃어버린 영생을 회복시켜 주시고자 전 생애를 바치셨다. 비록 애니메이션일지라도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장면도 감동적이었다. “사탄이 너의 영혼을 앗아가려 할 것이나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기도했으니 네 형제들을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붙들어라”(눅22:31~32). 이 말씀을 하실 때 내가 믿음을 지켜갈 수 있도록 그분은 언제나 기도하고 계시며,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들어 주시는 분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고 감사했다.
또 다른 하나는 주인공 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수면 위로 올리시고, 대신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으시는 장면이었다. 양쪽으로 벌어진 팔, 점점 깊고 어두운 물속으로 사라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과 정확히 오버랩되어 나를 살리신 사랑에 대한 감동으로 절정을 맞게 했다.
King of Kings,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은 여전히 복음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음을. 나는 이 진리를 전하는 삶으로 또 한 걸음 나아간다.
김혜리 교육전도사
간증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
수요일 구역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리던 권사님 한 분이 갑자기 중심을 잃으면서 몸이 옆으로 기울어져 쓰러지셨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놀라 부축하는데 권사님 눈동자의 초점이 풀어지고 입에 침이 흘렀다. 나는 즉시 안수하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며 귀신을 쫓았다. 잠깐의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권사님은 금새 거짓말처럼 깨끗해지셨다. 그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던 성도들은 바로 눈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되었다.
지난주에는 다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시어머니께서 벌써 3주째 식사를 못하신다는 것이다. 연로한 시어머니께서 3주 가까이 곡기를 끊다시피 하니 너무 걱정되어 우리 권사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다. 권사님 댁으로 심방을 갔다. 기도해드리고 귀신을 쫓았다. 바로 그날 저녁에 밥을 차려오라고 하시며 식사를 하셨고, 며느리와 함께 이번 주 주일예배에도 나오셨다. 물론 예배 후에 점심식사도 잘하셨다. 할렐루야!
그리고 이건 어제 직접 들은 간증이다. 장로님 한 분이 권위 있고, 학식 있고, 재력과 권력 있는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마음이 뜨거워져 전도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알지 못하는 전문적인 얘기들로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하나님, 제가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속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장로님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단다. ‘부귀영화, 명예, 권력, 지식의 부요함도 영생에 이르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유력자들이 듣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성령의 음성이었고, 말씀 선포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나타내길 원하신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자랑하고 시인하길 바라신다. 무엇보다 전도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4:20). 귀신이 떠나고 병 고침을 받고, 성령이 임하고, 방언을 말하며,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간증하는 삶이 되기를 축복하고 기원한다.
장순천 목사
당신의 방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 당신의 방을 떠올려 보세요. 바닥이 깨끗한가요? 아니면 머리카락이 가득한가요?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있나요? 아니면 벗어놓은 옷가지가 무덤처럼 쌓여있나요? 거울이 반질반질한가요? 아니면 오래 눌어붙은 먼지로 뿌옇나요? 이불이 잘 개어져 있나요? 아니면 몸만 빠져나와 있나요? 서랍 속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나요? 아니면 뒤죽박죽 정신이 없나요? 당신의 방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나요? 아니면 보여주기 부끄럽나요?
책 의 저자 마쓰다 미쓰히로는 말합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방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의 마음 상태, 더 나아가 당신의 인생까지도 당신의 방이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고요. 오랫동안 하우스 클리닝을 해온 그가 수많은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내린 결론이래요. 방이 더러운 사람은 불행한 느낌이 강하고, 방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한 느낌이 강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방이 더러운 사람에겐 불행감이, 방이 깨끗한 사람에겐 행복감이 갈수록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대요. 우리 방과 우리 마음의 상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악순환 혹은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거죠.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청소의 힘을 저자가 몸소 경험했다죠. 사업이 잘되지 않자 나날이 초조해진 그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집을 방치하게 되었습니다. 음식물이 들러붙은 그릇들이 쌓이고, 더러운 빨래가 쌓이고, 집이 쓰레기 더미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죠. 일하고 들어와도 사방이 더러우니 충전되는 게 아니라 더더욱 초조하고 불행해져만 갔죠. 결국 사업도 실패하고 그로 인해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의 방처럼 육신도 점차 방치되었고, 얼굴은 깎지 않은 수염으로 꾀죄죄해지고 몸에선 고약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않게 고교 동창이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친구는 그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서, “이게 뭐냐?” 하고는 그냥 돌아가 버렸대요. 그러고는 다음 날 청소도구를 들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방은 내가 치울 테니까 변기는 네가 닦아.”라고 말하며 그에게 걸레를 건넸대요. 급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이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에 청소가 끝났고, 깨끗해진 방을 보며 처음으로 커다란 상쾌함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충격적일 정도로요. 이 일을 계기로 청소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지금은 다시 결혼도 하고 새로운 사업도 시작하고,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있죠. 단지, 청소를 했다는 것만으로 말이에요.
나라는 사람을 지탱하는 자존감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아는 나의 선행들, 나만 아는 나의 신앙심, 나만 아는 나의 양심적인 행동과 나만 아는 나의 방 같은. 깨끗한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방 청소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냉장고 청소를 해야겠습니다.
신은혜
우리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세월이 신속히 지나가는데 날아가듯이 지나간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하였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다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시종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노후를 준비하는 일보다 사후를 준비하는 일이 더 소중하고 지혜로운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영원합니다.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길어야 100년입니다. 그러나 죽은 뒤의 세상은 영원합니다. 유비무환이라고 미리 준비한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후를 준비하지 못했다가 갑자기 죽게 되면 심판대 앞에서 땅을 치며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오늘 살다가 내일 죽어도 한 점 후회함이 없도록 노후보다 사후를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죽은 뒤에 영원한 세상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복락의 천국이요, 믿지 않는 자는 영벌의 지옥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천국과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구원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 엄청난 선물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상화평 목사
용서해야 삽니다
지난달, 미국에서 서른한 살 청년이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아내는 장례식에서 남편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이 알려주는 증오에 대한 답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증오를 이기는 사랑,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옵시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기도문을 통해 용서의 중요성을 봅니다. 그러나 정작 남의 작은 잘못도 쉽게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같은 크리스천일 경우 용납하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의 형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을요. 형은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형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동생을 기꺼이 포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도 이와 같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은 화목하고 사랑하길 원하시는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했습니다.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한 마음은 쓴 뿌리가 됩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마귀가 쉽게 틈타는 통로가 되고 결국 자신을 병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를 명하신 것은 나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하고 살리려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다시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평안, 기쁨을 온전히 누리길 소망합니다!
전소희
시도하지 않으면
학창 시절, 연예인을 꿈꿔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길거리 캐스팅도 많아 ‘누군가 데려가 주겠지’, 은근슬쩍 기대도 하였는데, 기대만 하다 끝났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이후 아홉 살 어린 동생도 그러한 꿈을 꾸길래, ‘여러 기획사 오디션을 보며 시도해봐라’ 조언해주고, 같이 따라가도 주었다. 지금은 그 꿈을 이룬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첫째 아들이 한 친구를 전도하여 몇 차례 중고등부 예배에 데려갔다. 그 친구 아빠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못마땅했는지 중고등부 예배처에 찾아가 소위 깽판을 치고 갔단다. 다행히 현장에 아이들은 없고, 중고등부 목사님과 두 명의 교사만 있어 면담 후 돌아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괜히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 아이가 전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생각하며, 그 친구 가정이 하나님의 관심 속에 들어간 것을 감사하며 기도해주었다.
작년부터 청장년부 한 집사님의 추천으로 미국 주식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추천해준 책을 보고 따라하며 시도해보고, 또 공부도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주식 재테크를 하였다. 작년에 어느 정도 수익이 발생하였고, 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보았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작년에 평소처럼 아무런 재테크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수익도 결과도 없었겠구나.’
도전하고 시도해야 꿈도 이루어진다. 전도도 해야 마귀의 발악이든, 하나님의 기적이든 나타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눅19:23).
박찬영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