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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소망

1325호 · 2025-09-28
빛과 소금

천국 소망

성경은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라고 표현하며 이 세상이 삶의 최종 목적지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짧은 인생 속에서도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한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고, 크고 작은 산들을 넘으며 때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도전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지 묻게 된다.

얼마 전, 나는 심한 결막염으로 한쪽 눈이 심하게 부어 제대로 뜨지도, 보지도 못하고, 가려움과 통증으로 2주 넘게 고생했다. 덕분에 평소보다 기도를 더 하게 되고, 그동안 건강한 눈으로 살아온 것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제 다 나았구나 싶을 때쯤 남편이 또 장염에 걸려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일하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이런 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정, 직장, 교회, 인간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게 되고, 때론 마음이 상하고 낙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해결된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바라보고 더 의지하게 되고, 겸손해지며, 경험해본 일들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생기고,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문제들을 허락하신 이유는 이 땅이 아닌 천국을 소망하게 하기 위함임을 깨닫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아무 문제 없이 늘 평안하고, 건강하고, 부유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가게 된다면 과연 이 땅에서의 삶보다 저 천국을 사모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생길까?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지라도 나보다 더 크고 깊으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덧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한 우리 모습을 아버지께서 기뻐하시지 않을까.

목사님께서도 항상 ‘문제를 친구 삼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디딤돌이며, 우리 믿음을 정결하게 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도구이다. 오늘도 우리의 시선을 하늘에 두고 천국 소망 안에서 하루하루 믿음으로 걸어가자!

송지혜 집사

영생에 이르는 길

하나님이 좋으시면 그걸로 됐습니다

몇 해 전, 하나님은 나를 철저한 훈련의 길로 내모신 적이 있다. 오래 교제한 연인과의 이별, 그로 인한 부모님과의 갈등, 이직으로 인한 스트레스,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끝없는 오해와 다툼 등, 도저히 내 힘으로는 해결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들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알 길도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그저 기도만 계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하면 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너무 달랐다. 내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께 순종되지 않고 계속 사람의 뜻이 옳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지리한 대치가 계속되었고, 결국 두 팔 들고 내 의지가 꺾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길로 인도해주세요’라는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쌓여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합력해 선을 이루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고난의 끝에 받은 축복을 알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간증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 내가 걷던 그 길은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땐 광야였고,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광야가 하나님 보시기엔 보석밭이고, 나에겐 가시밭길을 걷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천국으로 가는 길이었음을 감사함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100%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삶의 과정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 만나는 그날까지 승리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결국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시면’ 그걸로 되었음을 믿음으로 선포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23:10).

김경현

낮은 울타리

하나님이 쓰시기 좋은 사람

학창시절에 운동회나 축제에 가면 간간이 나눠주던 팔찌가 있습니다. ‘슬랩팔찌’라고 부르는 이 팔찌는 원래 형태는 꼿꼿하게 펼쳐져 있지만, 손목에 툭 치면 착하고 감기는 금속 스프링이 들어간 팔찌입니다.

이 팔찌의 좋은 점은 펼친 상태로 보관하기도 쉽고, 휴대도 간편한데, 손목에 툭 치면 사용하는 사람의 손목 크기에 맞춰서 착 감기니 성별이나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손목에도, 어른들의 손목에도 잘 맞게 조정되어 착용되니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행사에서 단체 용품으로 자주 쓰입니다.

하나님은 하반기를 준비하는 저에게 이 슬랩팔찌를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주의 일의 형태도 참 다양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일들에 나의 형태를 바꿀 줄 아는,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기 좋은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꼿꼿하게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맡겨주신 상황과 영혼에 따라 모양을 바꿀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손목에 맞게 착 감기는 팔찌처럼 맡은 일에 따라, 만나는 영혼에 따라 나를 낮추고 맞추는 사람 말입니다.

예수님의 모습도 그러셨습니다. 잘못된 길을 걷는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 앞에서는 단호하시고 권위 있는 말씀으로 꾸짖으셨지만, 사회에서 외면받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가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낮아져 섬기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부족해서 기도하다 보면 저 스스로는 아직 슬랩팔찌가 아니라 그저 딱딱한 막대기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손을 탁 치면 착하고 감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딱딱해서 아프기만 한 그런 나무 막대기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마음처럼 저는 제가 슬랩팔찌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사랑하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제가 맡은 영혼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나의 꼿꼿한 자아를 단숨에 내려놓고 나의 형태를 바꿀 수 있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인생의 참된 복입니다.

장수정

내가 매일 기쁘게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빵

얼마 전 대전에 방문하여 유명 빵집 ‘성심당’에 들렀다. 길게 늘어선 줄 속에서 ‘임산부 프리패스’라는 배려를 보며 어떤 곳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긴 기다림 끝에 빵이 담긴 상자를 계산하러 가다 실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의 부주의였고, 빵도 상하지 않아 그대로 구매하려 했지만, 직원은 아무 말 없이 새로운 빵으로 바꿔주었다.

이윤을 넘어선 진심 어린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다. 성심당은 단순히 맛있는 빵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고객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성심당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는 말씀 위에 설립된 기업이다. 그날 만든 빵은 모두 소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남는 빵은 고아와 노숙인에게 나누며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이러한 정신은 1987년 6월 항쟁 때 빛을 발했다. 시위대에게 빵을 나누어주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으며 폐업 위기에 처했지만, ‘우리도 그 빵을 먹었다’는 전의경들의 증언 덕분에 성심당의 나눔이 모두에게 향했음이 밝혀지며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빵을 통해 섬김을 실천했던 창립자는 ‘본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당 옆에 짓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마음이 계신 집(聖心堂,성심당)’이라는 이름처럼, 하나님을 늘 가까이 모시고자 했던 창립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곳을 방문하며, 나 또한 하나님을 모시는 한 명의 교회로서 어떻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빛을 잃지 않도록, 나를 통해 그분의 마음이 세상에 선명히 드러날 수 있도록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다시 한번 결단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전호정 집사

치우치지 않는 저울

예민한 사람은 고성능 레이더와 같다

고성능 레이더일수록 발열이 심하다. 즉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어 열을 식히지 않으면 과열로 고장 나게 된다.

예민한 사람에게 무조건 ‘기도해라, 생각을 바꿔라, 귀신이야’라고 할 게 아니라 상담과 운동과 나에게 맞는 다양한 열을 식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예민하다’는 말은 종종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예민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성능 레이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레이더는 주변의 미묘한 신호들을 감지하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흐름까지 포착하게 돕는다.

1. 예민함은 영적 감수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하나님의 말씀이 예리하다는 것은, 그 말씀이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꿰뚫어 본다는 의미이다. 예민한 사람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 던지는 영적인 진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죄를 향한 경고, 은혜를 향한 부르심, 세상의 유혹 등, 영적인 신호들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잘 포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감수성은 세상의 거짓과 유혹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때로 상처나 고통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두신 영적인 레이더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레이더가 세상의 잡음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더 선명하게 듣게 하는 것이다.

2. 예민함은 이웃 사랑의 통로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예민한 사람의 고성능 레이더는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를 더욱 섬세하게 감지한다. 주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불안을 더 깊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동요를 넘어, 이웃을 향한 진정한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누군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예민한 사람은 그들의 눈빛이나 작은 한숨에서도 고통을 읽어내고 진정으로 함께 울어줄 수 있다. 또한, 다른 이의 작은 성공에도 크게 기뻐하며 함께 축하해줄 수 있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즉 약한 자와 함께하고 소외된 자를 품는 사랑을 실천하는 데 큰 강점이 된다. 예민함이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과 깊이 연결되고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예민함을 주님 안에서 더욱 다듬어가야 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우리 목사님은 힘겨운 목회 가운데 어떻게 세계 지교회들을 이끌어가실까, 불도저같이 밀어붙이시면서도 예민하고 섬세하게 교단을 치리해 나가시는데 그 많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가실까?

기도로만 풀어가시는 게 아니라 목사님에게 맞는 운동을 통해, 또 그림을 그리시고, 글을 쓰시고, 수석과 분재도 틈틈이 감상하시며, 목사님만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건강한 육체와 목회를 관리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고 계십니까?

어떤 이는 기도하고 귀신 쫓아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극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다면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통해서 진정시키는 방법도 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수많은 방법 중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영·혼·육이 병들기 전에 치유 받고 건강한 신앙생활 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최연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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