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인정하자
여기서 장성 기도원을 간다 하자. 목적지는 장성에 있는 우리 기도원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동차로 갈 수도 있고, 기차로 갈 수도 있고, 버스로 갈 수도 있고, 광주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수도 있고,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은 며칠에 걸쳐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이걸 두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할 수 있을까? 목적은 같으나 방법이 다를 뿐, 틀린 사람은 없다.
성경도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4~7)고 말씀하지 않나?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다. 무조건 나와 다르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적대시하고, 터부시하게 된다.
목적이 같으나 방법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40절에서 제자들이 누군가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니 하지 말라’ 했다고 말씀드리자, 예수님은 ‘우리를 해치지 않는 자는 우리 편’이라고 말씀하셨다. “얘들아, 방법이나 소속은 달라도 목적이 같다면 다 수용하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20~21).
바울은 각 대상의 배경과 특성에 맞게 전도 방식을 조절했다. 그의 목적은 하나, 최대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하나이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대상에 따라 달랐음을 보여준다.
다양성을 인정하자. 넓은 그릇이 되어 품을 수 있는 아량과 포용력을 키워보자.
